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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감상] 지상의 방 한칸 김사인, 자갈밭을 걸으며 유하, 구부러진 길을 걸으며 이준관 (2020.05.06)

● 지상의 방 한칸 / 김사인 시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

[명시감상] 가죽나무 도종환, 애국자 없는 세상 권정생,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 (2020.05.06)

● 가죽나무 / 도종환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것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

[명시감상] 안부 정병근,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기철, 너는 아느냐 채형복 (2020.05.06)

● 안부 / 정병근 언제 한번 만나자는 말 조만간 한잔하자는 말 믿지 말자 전화를 끊으면서 그것은 내가 한 말이기도 했으므로 약속은 아직 먼 곳에 있고 나는 여전히 동문서답의 헛바퀴를 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일이 어디 약속뿐이랴 뱉은 만큼 못다 한 말들 입속에 바글거리고..

[명시감상] 시레기 한 움큼 공굉규, 사라진 동화 마을 반칠환, 미친 교실 이봉환 (2020.05.06)

● 시래기 한 움큼 - 공광규 빌딩 숲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겨졌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나올 때 담벼락에 걸린 시래기 한 움큼 빼서 코에 부비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 반말로 호통치는 식당 주인에게 회사원은 미..

[명시감상] 얼굴 반찬 공광규, 사라진 것들의 목록 천양희, 스미다 이병률 (2020.05.05)

● 얼굴 반찬 /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

[명시감상] 길 박영근, 모습 오규원, 엑스트라 정해종 (2020.05.05)

● 길 / 박영근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

[명시감상] 책상을 치우며 도종환, 쓸모없는 친구 김광규, 저물어 그리워지는 것들 이기철 (2020.05.05)

● 책꽂이를 치우며 / 도종환 창 반쯤 가린 책꽂이를 치우니 방안이 환하다 눈앞을 막고 서 있는 지식들을 치우고 나니 마음이 환하다 어둔 길 헤쳐간다고 천만근 등불을 지고 가는 어리석음이여 창 하나 제대로 열어 놓아도 하늘 전부 쏟아져 오는 것을 ● 쓸모 없는 친구 / 김광규 거머..

[명시감상] 일수와 한수 김광규. 길 윤제림, 먼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 김재진 (2020.05.05)

● 일수와 한수 / 김광규 시인 삐뚤삐뚤 줄을 긋고 엉망으로 크레파스를 문질러 미술 시간에 야단맞던 일수는 국제 비엔날레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산뜻한 색감으로 인물과 풍경을 잘 그려서 미술 시간에 칭찬받던 한수는 국제극장의 영화 간판을 제작한다 환쟁이가 되면 살기 힘들다 걱..

[명시감상] 청보리 문무학, 삶이 나를 불렀다 김재진, 온다는 말없이 간다는 말없이 이병률 (2020.05.05)

● 청보리 / 문무학 시인 도라지꽃 입술로 봄을 씹던 누부야 앞들 논 서 마지기 보릿골 이랑마다 긴긴 해 허기를 물고 꿈을 캐고 있었제 꽃불타던 산허리 뻐꾸기 봄을 울면 아지랑이 아물아물 나른한 한 나절을 누부야 청보리같이 그래 살고 싶었제. ● 삶이 나를 불렀다 / 김재진 시인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