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이기호의 미니픽션] (10) 병원에서

[이기호의 미니픽션]병원에서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병원에서 [경향신문] 함께 자취하는 진만이 앓아누운 것은 지난주 목요일의 일이었다. 휴게소 아르바이트 출근 시간이 다 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진만을 툭툭 건드려 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병원에서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함께 자취하는 진만이 앓아누운 것은 지난주 목요일의 일이었다. 휴게소 아르바이트 출근 시간이 다 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진만을 툭툭 건드려 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깨까지 벌벌 떨면서 애벌레 모양으로 이불을 제 몸에 감았다. “너무 추워. 보일러 좀 올리면 안 될까?” 11월이었지만, 아직도 낮에는 20도까지 기온이 올라갔다. 정용은..

[이기호의 미니픽션] (9) 휴게소 해후

[이기호의 미니픽션]휴게소 해후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휴게소 해후 [경향신문] “정용이…? 너, 정용이 맞지?” 그녀가 얼굴을 좀 더 앞쪽으로 내밀면서 물었다. 정용은 어떡하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고개를 숙여보았지만, 더는 피하긴 어려워 보였다.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휴게소 해후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정용이…? 너, 정용이 맞지?” 그녀가 얼굴을 좀 더 앞쪽으로 내밀면서 물었다. 정용은 어떡하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고개를 숙여보았지만, 더는 피하긴 어려워 보였다. 손님들이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그녀 주위로 중년 여자 두 명이 다가와 참견했다. 그녀는 그녀들을 이모라고 불렀다. “응. 대학 동..

[이기호의 미니픽션] (8) 너는 누구냥?

[이기호의 미니픽션]너는 누구냥?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너는 누구냥? [경향신문]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진만이 전봇대를 가리키며 정용을 불렀다. “이것 좀 봐봐.” 정용은 힐끔 전봇대를 바라보았다. 싼 이자, 신축 빌라 분양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너는 누구냥?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진만이 전봇대를 가리키며 정용을 불렀다. “이것 좀 봐봐.” 정용은 힐끔 전봇대를 바라보았다. 싼 이자, 신축 빌라 분양 같은 광고지 사이에 누군가 방금 붙이고 간 것 같은 깨끗한 전단지 한 장이 나부끼고 있었다. - 집 나간 고양이를 찾습니다. 이름: 미나(2살) 노랑둥이. 눈은 호..

[이기호의 미니픽션] (7) 한여름 밤의 노래

[이기호의 미니픽션]한여름 밤의 노래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한여름 밤의 노래 [경향신문] 부자들은 겨울을 좋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여름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채 부치고 장작 때던 시절의 이야기일 뿐. 요즈음 가난한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한여름 밤의 노래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부자들은 겨울을 좋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여름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채 부치고 장작 때던 시절의 이야기일 뿐. 요즈음 가난한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한 곳 마음 줄 계절이 없다. 계절에 마음을 주지 않으면 어찌 되는가? 같이 사는 사람에게도 인색해지고 예민해지는 법. 그러니까 근래 들어 진만을 바라..

[이기호의 미니픽션] (6) 옆방 남자 최철곤

[이기호의 미니픽션]옆방 남자 최철곤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옆방 남자 최철곤 [경향신문] 벽은 얇고 소리를 막아내지 못했다. 나는 왜 늘 그런 벽 뒤에서만 살았을까? 정용은 가만히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바람보다 소리가 먼저 도착하는 방, 소리만으로도 한기가 느껴지는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옆방 남자 최철곤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벽은 얇고 소리를 막아내지 못했다. 나는 왜 늘 그런 벽 뒤에서만 살았을까? 정용은 가만히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바람보다 소리가 먼저 도착하는 방, 소리만으로도 한기가 느껴지는 집, 벽을 만나면 더 커지는 소리들…. 진만과 함께 구한 광역시 반지하 자취방 역시 그랬다. 밤마다 웅웅웅 어디선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

[이기호의 미니픽션] (5) 빠져든다

[이기호의 미니픽션]빠져든다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빠져든다 [경향신문] 진만의 할아버지는 올해 일흔여덟인데, 이 분의 특기는 ‘사기를 당하는 것’이었고, 취미는 ‘사기꾼과 사귀는 것’이었다. 이건 진만이 한 말은 아니고, 진만의 아버지가 술만 취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빠져든다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진만의 할아버지는 올해 일흔여덟인데, 이 분의 특기는 ‘사기를 당하는 것’이었고, 취미는 ‘사기꾼과 사귀는 것’이었다. 이건 진만이 한 말은 아니고, 진만의 아버지가 술만 취하면 내뱉는 혼잣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스무 살 이후 매번 그 사기의 뒷감당을 해야만 했다. 진만이 목격한 일도 몇 번 있었다. 첫 번째는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일어났는데, ..

[이기호의 미니픽션] (4) 이 아버지를 보라

[이기호의 미니픽션]이 아버지를 보라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이 아버지를 보라 [경향신문] 네 아버지가 점점 개가 돼가는 거 같다. 지난달 중순 무렵, 정용의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와 대뜸 그렇게 말했다. 왜요? 또 두 분이 다투셨어요? 정용이 묻자,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면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이 아버지를 보라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네 아버지가 점점 개가 돼가는 거 같다. 지난달 중순 무렵, 정용의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와 대뜸 그렇게 말했다. 왜요? 또 두 분이 다투셨어요? 정용이 묻자,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싸우긴 뭘…. 말 상대가 돼야 싸우기라도 하지…. 이건 그냥 개라니까, 개. 원체 입이 건 어머니이긴 하지만, 사실 정용 또한 아..

[이기호의 미니픽션] (3) 죽이 이토록 무겁고 슬플 줄이야

[이기호의 미니픽션]죽이 이토록 무겁고 슬플 줄이야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죽이 이토록 무겁고 슬플 줄이야 [경향신문] 죽도록 무거우니까 죽이 아닐까. 트럭 위로 호박죽과 전복죽이 가득 담긴 들통을 나르면서 정용은 그런 생각을 했다. 된장국을 나르고, 접시 200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박스를 옮기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죽이 이토록 무겁고 슬플 줄이야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죽도록 무거우니까 죽이 아닐까. 트럭 위로 호박죽과 전복죽이 가득 담긴 들통을 나르면서 정용은 그런 생각을 했다. 된장국을 나르고, 접시 200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박스를 옮기고, 플라스틱 원형 테이블을 짐칸에 실을 때까지만 해도 그러지 않았는데, 죽을 나르고 나니 온몸이 흐물흐..

[이기호의 미니픽션] (2) 이사

[이기호의 미니픽션]이사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이사 [경향신문] 침대에 까는 얇은 요를 바닥에 펼쳤다. 요는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진만은 그 요 한가운데 차곡차곡 개킨 티셔츠와 바지 몇 벌, 양말 몇 켤레, 수건 네 장과 담요 한 장, 대학 1학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이사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침대에 까는 얇은 요를 바닥에 펼쳤다. 요는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진만은 그 요 한가운데 차곡차곡 개킨 티셔츠와 바지 몇 벌, 양말 몇 켤레, 수건 네 장과 담요 한 장, 대학 1학년 때 엠티 가서 찍은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러곤 다시 요의 네 귀퉁이를 가운데로 모아 신발 끈처럼 단단하게 묶었다. 커다란 북극곰 엉덩이만 한 보..

[이기호의 미니픽션] (1) 어둠 뒤를 조심하라

[이기호의 미니픽션]어둠 뒤를 조심하라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어둠 뒤를 조심하라 [경향신문] 이제 그만 들어갈까? 정용이 그렇게 말하자, 진만이 바닥에 놓여 있던 촛불을 들었다. 초는 이미 볼품없이 쪼그라들어 엄지손가락만 해져 있었다. 밤 11시였다. 꼬박 4시간 넘게 그들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어둠 뒤를 조심하라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이제 그만 들어갈까? 정용이 그렇게 말하자, 진만이 바닥에 놓여 있던 촛불을 들었다. 초는 이미 볼품없이 쪼그라들어 엄지손가락만 해져 있었다. 밤 11시였다. 꼬박 4시간 넘게 그들은 편의점 앞에 앉아 있었던 셈이다. 주변엔 여전히 지나다니는 사람 한 명,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1월 셋째 주 토요일이었다. 전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