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이기호의 미니픽션] (40) 고사리

[이기호의 미니픽션]고사리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고사리 [경향신문] 그날, 진만은 PC방에 있었다. 게임을 하러 간 것은 아니었고, 이런저런 구인 사이트를 둘러보기 위해 간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론 그냥 게임만 하고 말았다. 일자리는 눈에 띄게 줄어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40) 고사리 / 이기호 소설가 광주대 교수 그날, 진만은 PC방에 있었다. 게임을 하러 간 것은 아니었고, 이런저런 구인 사이트를 둘러보기 위해 간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론 그냥 게임만 하고 말았다. 일자리는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고, 있다고 해도 대부분 영업직이나 경력직뿐이었다. 십 분이나 둘러봤을까, 진만은 그냥 롤에 접속하고 말았다. PC방엔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젊은 남자..

[이기호의 미니픽션] (39) 눈감지 마라

[이기호의 미니픽션]눈감지 마라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눈감지 마라 [경향신문] 남자는 흰 와이셔츠에 슈트 차림이었다. 넥타이를 매진 않았지만 가죽 재질로 된 백팩을 메고 있었고, 구두도 깨끗했다. 회사에서 막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았다. 머리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눈감지 마라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남자는 흰 와이셔츠에 슈트 차림이었다. 넥타이를 매진 않았지만 가죽 재질로 된 백팩을 메고 있었고, 구두도 깨끗했다. 회사에서 막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았다. 머리카락은 짧았고, 햇빛 한번 쐬지 못한 사람처럼 피부가 희멀겋다. 남자는 한참 동안 편의점 매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캔 커피 하나를 골라 카운터에 내밀었다. 정용은 남..

[이기호의 미니픽션] (38) 미래만 빼고

[이기호의 미니픽션]미래만 빼고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미래만 빼고 [경향신문] 진만은 며칠째 자취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빈둥거리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러다가 뭐 미래만 아니면 나쁠 것도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언제나 미래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38) 미래만 빼고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진만은 며칠째 자취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빈둥거리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러다가 뭐 미래만 아니면 나쁠 것도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언제나 미래가 문제였지, 미래라는 것들 때문에 열 받았지. 망할 미래 같으니라고. 곰곰이 따져보니, 진만은 ‘미래’라는 이름 자체와도 좋지 않은 기억뿐이었다. 그것이 사람이든 ..

[이기호의 미니픽션] (37) 자가격리

[이기호의 미니픽션]자가격리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자가격리 [경향신문] 우유 회사에 입사를 한 지 한 달 만에 진만은 사표를 내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뭐야, 잘린 거야?” 편의점에서 퇴근하고 돌아온 정용은 진만을 보자마자 바로 그 말부터 했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자가격리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우유 회사에 입사를 한 지 한 달 만에 진만은 사표를 내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뭐야, 잘린 거야?” 편의점에서 퇴근하고 돌아온 정용은 진만을 보자마자 바로 그 말부터 했다. 진만은 양말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어쩐지 몸이 조금 홀쭉해 보였다. 얼굴은 거무튀튀하게 변해 있었다. “아니야. 내가 스스로 관둔 거야.” 진만은 몸을 반..

[이기호의 미니픽션] (36) 어떤 졸업식

[이기호의 미니픽션]어떤 졸업식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어떤 졸업식 [경향신문] 오후의 편의점은 초등학생들의 차지다. 다른 편의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정용이 일하는 편의점은 늘 그랬다.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가 두 곳이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편의점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어떤 졸업식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오후의 편의점은 초등학생들의 차지다. 다른 편의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정용이 일하는 편의점은 늘 그랬다.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가 두 곳이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편의점은 가깝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편의점 내 테이블에 앉아 삼각김밥을 불닭볶음면이나 국물떡볶이에 찍어 먹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정용은 속으로 그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아이들은..

[이기호의 미니픽션] (35) 젖소의 운명

[이기호의 미니픽션]젖소의 운명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젖소의 운명 [경향신문] “방해만 하지 마.” 그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진만에게 말했다. 4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짧은 헤어스타일에 갈색 구두를 신은 남자였다. 그는 약속시간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젖소의 운명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방해만 하지 마.” 그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진만에게 말했다. 4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짧은 헤어스타일에 갈색 구두를 신은 남자였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15분 늦게 아파트 정문 입구에 도착했지만, 거기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진만을 한번 슬쩍 훑어보곤 인사 대신 방해 운운, 말부터 꺼낸 것이었다...

[이기호의 미니픽션] (34) 나를 뽑아줘

[이기호의 미니픽션]나를 뽑아줘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나를 뽑아줘 [경향신문] 진만은 대기실 의자에 앉아 통유리 너머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바로 옆 정수기에 붙어 있는 ‘사용 시 주의사항’ 항목들을 한 자 한 자 읽어나갔지만, 저도 모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나를 뽑아줘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진만은 대기실 의자에 앉아 통유리 너머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바로 옆 정수기에 붙어 있는 ‘사용 시 주의사항’ 항목들을 한 자 한 자 읽어나갔지만, 저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사무실 안에는 모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두 명은 평상복 차림이었고, 한 명은 정장 재킷에 넥타이 차림이었다. 넥타이를 한 사람은..

[이기호의 미니픽션] (33) 견디는 사람들

[이기호의 미니픽션]견디는 사람들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견디는 사람들 [경향신문] 정용이 일하는 편의점 바로 옆 상가는 한 은행의 자동화기기 창구였고, 다시 그 옆은 통닭 한 마리에 칠천원씩 파는 옛날통닭 전문점이었다. 옛날통닭 두 마리를 사면 만이천원. 오십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견디는 사람들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정용이 일하는 편의점 바로 옆 상가는 한 은행의 자동화기기 창구였고, 다시 그 옆은 통닭 한 마리에 칠천원씩 파는 옛날통닭 전문점이었다. 옛날통닭 두 마리를 사면 만이천원.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운영했는데, 따로 배달은 하지 않고 홀에 테이블 네 개를 두고 생맥주와 소주를 함께 팔았다. 정용은 퇴근할 때마다 옛날통닭 전문점 안을..

[이기호의 미니픽션] (32) 할아버지의 기억법

[이기호의 미니픽션]할아버지의 기억법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할아버지의 기억법 [경향신문] 진만은 집안 분위기가 어딘가 모르게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가구도, 벽지도 그대로였는데, 그런데도 그 느낌을 지울 길 없었다. 뭐지? 진만은 마치 마감 후 물품이 맞지 않은 알바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할아버지의 기억법 진만은 집안 분위기가 어딘가 모르게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가구도, 벽지도 그대로였는데, 그런데도 그 느낌을 지울 길 없었다. 뭐지? 진만은 마치 마감 후 물품이 맞지 않은 알바생처럼 다시 한번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변할 것도, 달라질 것도 없는, 지은 지 삼십 년 된 방 두 칸짜리 연립주택이었다. 군데군데 금이 간 마룻바닥과 누리끼리하게 변한 싱..

[이기호의 미니픽션] (31)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이기호의 미니픽션]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경향신문] 진만과 정용이 사는 원룸촌에서 십 분쯤 골목길을 내려가면 그제야 큰 도로가 나오는데, 한 달 전쯤 그곳 버스정류장 앞 상가에 새로 ‘아이스크림 할인점’이라는 곳이 생겼다. 편 news.v.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진만과 정용이 사는 원룸촌에서 십 분쯤 골목길을 내려가면 그제야 큰 도로가 나오는데, 한 달 전쯤 그곳 버스정류장 앞 상가에 새로 ‘아이스크림 할인점’이라는 곳이 생겼다. 편의점에서 1000원, 2000원 하는 아이스크림을 400원, 800원으로 50% 넘게 할인해 주는 집이었다. 24시간 영업을 했으며,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