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미니픽션] 나를 뽑아줘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진만은 대기실 의자에 앉아 통유리 너머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바로 옆 정수기에 붙어 있는 ‘사용 시 주의사항’ 항목들을 한 자 한 자 읽어나갔지만, 저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사무실 안에는 모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두 명은 평상복 차림이었고, 한 명은 정장 재킷에 넥타이 차림이었다. 넥타이를 한 사람은 바로 좀 전까지 진만의 옆에 앉아 있던 남자였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사무실 안에서는 종종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진만은 양 손바닥을 바지에 쓱쓱 문질러보았다. 이제 곧 진만의 차례였다. 안 떨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귓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허벅지 뒤편도 자꾸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진만은 눈을 감은 채 숨 호흡을 길게 한 번 내쉬었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바지 위에 계속 자신의 이름을 써 보았다. 그래도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질 않았다.
이윽고 사무실 통유리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넥타이를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진만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피했다.
“다음, 전진만씨!”
안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진만은 ‘네!’ 하고 오른쪽 손을 번쩍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만이 학교 선배의 연락을 받은 것은 지난주의 일이었다. 이거 원래 이번 졸업생들한테만 소개해주는 건데, 특별히 너한테도 연락해주는 거야. 모교의 학생 취업 담당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는, 정부 지원을 받는 ‘지역 기업 프로젝트’ 사업의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지역 기업이면 그게 좀….”
“왜? 그게 지금 걸린다는 거? 네가?”
선배의 목소리가 대번에 굳어졌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여기서 출퇴근하기가 어떤지….”
“당연히 멀지. 근데 그게 뭐?”
진만은 주눅 든 목소리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선배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바로 다음날까지 보내라고 했다. 자체 개발한 치즈와 유가공 제품을 판매 유통하는 회사이며, 연봉은 2,400만원, 4대 보험이 적용된다고 했다.
“치즈라면 아주 환장한다고 쓰고, 농촌에서 아예 뼈를 묻겠다고 써.”
“정말 그렇게 써요…?”
“비유적으로 그러라는 거지. 비유적으로… 비유적인 게 뭔지 몰라?”
선배는 그러면서 잠깐 침묵을 지켰다. 그러곤 뜬금없이 ‘우리 잘하자’라고 말했다. 너, 다른 스펙도, 영어 성적도 없잖아? 진만은 가만히 선배의 말을 듣기만 했다.
회사는 군청에서 가까운 신축 건물 이삼층을 통째로 임대해 쓰고 있었다. 이층은 영업부와 관리부였고, 삼층은 사장실과 임원실, 회의실이 위치해 있었다. 면접은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전진만씨는 뭐 다른 자격증이나 경력은 없으시고?”
진만의 맞은편에 앉은 두 명 중 머리가 약간 벗어진 남자가 물었다. 그가 사장이라고 했다.
“네, 뭐… 대신 아르바이트를 좀 많이 했습니다.”
진만은 처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쓸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선배 얼굴을 봐서 서류까지는 제출했지만, 최종 면접까지는 이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력서엔 대학 졸업 외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거기에 삼계탕집 설거지 아르바이트와 택배 아르바이트를 써넣을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최종 면접 대상자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게 그제 오후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진만의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뭐, 우리 회사도 이렇다 할 경력은 없으니까.”
사장이 바로 옆 폴라티를 입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 그러곤 혼자 우하하하, 큰소리로 웃어댔다.
“주소를 보니까… 저쪽 광역시 쪽이네요. 그럼 만약 입사하게 되면 거처를?”
폴라티 남자가 묻자, 사장이 대신 대답했다.
“거처가 뭔 상관이야? 그런 거 상관하지 않고 지원한 게 훌륭한 거지.”
사장은 진만을 보며 “안 그래요?” 하고 물었다. 그러곤 또 우하하하, 웃어댔다. 저 양반이 뭔 오래된 치즈를 드셨나, 왜 저렇게 웃어대지? 진만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덕분에 긴장은 좀 잦아들었다.
“자, 우선 먼저 하나 말씀드릴 것은…”
폴라 티 남자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무조건 3개월은 영업을 뛰어야 해요. 그다음에 실무 배치예요. 그게 우리 원칙이죠.”
말인즉슨 3개월 동안 전국 아파트 단지를 돌며 우유와 요구르트를 팔고 배달 계약을 올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실적을 본 후 다시 부서 배치를 한다고 했다. 물론 그 기간에도 정해진 급여는 보장한다고 했다.
“난 있잖아, 오히려 그게 더 나은 거 같아. 여기 사무실에 매일 앉아 있으면 갑갑하잖아. 군산도 가고, 여수도 가고, 거제도도 가고, 얼마나 좋아? 매일매일 엠티 가는 기분이지 뭐?”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 또 웃었다.
“괜찮겠어요?”
폴라티 남자가 재차 물었다. 진만은 잠깐 침묵했다. 에이 씨, 그러면 그렇다고 미리 말을 해주던가… 꼭 면접장에서 그런 걸 묻고… 진만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대답은 전혀 다른 식으로 나왔다.
“네. 뽑아만 주시면 뼈를 묻도록 하겠습니다.”
진만은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말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정작 계속 억울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물으면, 내가 뭐라고 얘기할 수 있겠어요…. 진만은 다시 손가락으로 바지 위에 자신의 이름을 조용히 썼다. 그런 진만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사장은 “그거 봐, 다 한다니까. 요즘 애들이 이렇게 훌륭해” 하면서 우하하하, 웃어댔다. 진만은 잠자코 사장의 웃음소리를 듣고만 앉아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ㅣ경향신문 2019.11.21
/ 2022.05.0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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