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미니픽션] 어떤 졸업식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오후의 편의점은 초등학생들의 차지다. 다른 편의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정용이 일하는 편의점은 늘 그랬다.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가 두 곳이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편의점은 가깝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편의점 내 테이블에 앉아 삼각김밥을 불닭볶음면이나 국물떡볶이에 찍어 먹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정용은 속으로 그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아이들은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학원 숙제를 하기도 했고, 연예인들의 뒷담화에 열을 올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봤다. 중2병이 일찍 찾아온 6학년 아이들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블루레몬에이드를 두 시간에 걸쳐 천천히 마시기도 했고, 연애를 하는 아이들은 하리보 한 봉을 사이에 둔 채 ‘여보’ ‘자기’ 해 가며 말랑말랑한 서로의 볼을 꼬집어대기도 했다.
정용이 일부러 밤 9시 근무로 옮긴 것은 그 꼴을 보기 싫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쓰레기가 지나치게 많이 나와서 그랬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무언가가 묻어 있거나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이들 옆에서 계속계속 그걸 치우다 보면 어쩐지 어떤 수치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아이를 만난 것은 밤의 편의점에서였다. 6학년이었고, 남자아이였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밤 10시15분 정확하게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안경을 쓰고 롱패딩에 무거운 백팩을 멘 아이. 아이는 늘 혼자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컵밥을 먹었다. 그게 저녁인 듯싶었다. 아이는 밥을 먹으면서도 영어 단어장을 보았고, 중간중간 필통을 꺼내 어떤 대목에 밑줄을 긋기도 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무언가를 흘리지도 않았고, 밥을 먹고 나면 물티슈로 테이블을 깨끗이 훔치기도 했다. 편의점을 나갈 때면 정용을 바라보며 깍듯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꼭 그런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정용은 그 아이에게 자주 눈길이 갔다. 밤에 혼자 다니는 아이들은 그 모습만으로도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니까.
정용은 아이에게 슬쩍 사이다를 내밀기도 했고, 츄파춥스 사탕 하나를 건네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이는 두 손으로 예의 바르게 받았다. 한 달 넘게 아이는 꾸준히 편의점에 왔지만, 정용은 그 이상 다가가진 않았다. 부모님은 뭐 하시니? 집은 어디니? 왜 혼자 밥을 먹니? 그딴 건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정용은 무언가 다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정용에게 먼저 말을 건 것은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 날이었다.
“형…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아이는 고개를 숙이진 않았지만 정용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말했다. 말인즉슨 일월 첫째 주 금요일에 있는 졸업식에 자신과 함께 가달라는 것이었다. 졸업식? 졸업식은 이월이 아닌가? 알고 보니 요즘 초등학교 졸업식은 대부분 일월에 열린다고 했다.
아이의 학교는 특이하게 졸업식장에 부모나 형제 중 한 명과 함께 입장한다고 했다. 함께 단상에 올라 한 명은 졸업장을 받고, 또 한 명은 학교에서 준비한 선물을 받는 것, 그게 전통이라고 했다.
“한 시간이면 되거든요. 오전 열 시부터 열한 시까지만….”
정용은 그 말을 하는 아이에게 또다시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그것 역시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생각해 볼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용은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한 시간, 단지 한 시간일 뿐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내내 어떤 은근한 자부 같은 것이 느껴져 귓불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졸업생은 모두 백십명이었다. 정용은 학교 강당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아이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른 아이들은 의자에 앉은 채 계속 떠들고 부모와 함께 셀카를 찍어댔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곧은 자세로 앉아 단상을 쳐다보다가 이따금 안경을 닦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아이가 불러도 말없이 웃어주기만 했다. 괜히 어색하고 긴장한 것은 정용이었다. 아이에게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저도 모르게 허벅지에 계속 힘을 주기도 했다. 식이 모두 끝나면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같이 먹어야지.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정용은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식은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졸업생이 한 명 한 명 단상에 올라올 때마다 강당 뒤편 대형화면에 아이의 사진과 함께 장래희망이 적힌 글귀가 떠올랐다. 정용은 그제야 아이의 이름이 ‘김호창’이라는 것과 아이의 꿈이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그래, 의사도 되고, 병원도 차리렴. 그래서 나중엔 오늘 같은 날은 아예 기억도 하지 마렴. 정용은 그렇게 아이를 응원해 주었다. 정용은 아이의 진짜 친형처럼 손을 잡고 단상에 올랐고, 정중하게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식이 모두 끝나고 정용은 아이와 함께 운동장으로 걸어 나왔다. 아이는 꽃다발도 없이 졸업장만 든 상태였다.
“어디, 짜장면이라도 먹으러 갈까?”
정용이 묻자,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에요.”
아이는 그렇게 말한 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편지봉투였다.
“형,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아빠가 많이 넣지는 못했대요.”
아이는 그러면서 다시 한번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편지봉투에는 삼만원이 들어 있었다. 정용은 그 봉투를 든 채 잠깐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뒤돌아 교문 쪽으로 걸어갔다. 정용은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수치심과는 또 다른, 어떤 무섬증 때문이었다. 교문에 내걸린 ‘축 졸업’ 플래카드가 바람에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ㅣ경향신문 2020.01.16
/ 2022.05.0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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