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힘 / 박승민 고구마를 걷어낸 밭에 상강 서리가 내리던 날 늙고 썩어 버려두었던 사과나무에 활짝, 하얀 꽃이 피었다 삼년 내내 풍으로 앓아 누운 주영광씨, 저녁나절 번쩍 눈떠 마누라 한번 쓱 보더니 “사과밭에 물!” 한마디 남기고 세상을 떴다 그 한마디 결구를 맺느라 혼자서 무던히도 아프고 눈감지 못했던 것이다 - 《끝은 끝으로 이어진》 (창비, 2020) [감상] 해가 떠서 지는 하루의 시간은 사람이 태어나 죽는 일생에 비유되곤 한다. 정오의 태양을 청춘에, 저물녘의 태양을 노년에 빗대는 것은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순리에 기반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삶은 참 덧없고 짧다. 일몰 직전 잠시 하늘이 밝아지는 순간을 일러 회광반조(回光返照)라 한다. 나아가 사람이 죽기 직전 잠시 기운이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