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란/ 이문재
앞뜰이 생기면
두어평 앞뜰이 생기면
옮겨 심으리라
마음 속 피고 지던 모란
모란이 피면
마당에 나가서 보리라
엄동설한에도 피고 지던
그 마음속
백모란
- 월간 《시인동네》 (2020년 3월호)
[감상]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흙의 기운을 느끼며 채소를 가꾸는 텃밭 체험의 보람은 친환경 먹거리를 얻는다는 실리적 측면보다 삭막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마음의 위로를 받는 심리적 측면에 있다 할 수 있다. 텃밭만이 아니라 정원을 가꾸는 일도 그렇다. 아파트를 비롯한 현대 도시의 거주공간은 대부분 마당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공동의 마당이어서 자신만의 정원을 가꿀 처지가 못된다. 마당이나 뜰이 없는 집은 영혼이 없는 몸과 같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Herman Hesse)는 정원을 가꾸는 일은 영혼이 쉴 곳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뜰이나 정원을 마련하는 것은 곧 마음의 안식처를 만드는 것일 터이다.
이문재 시인의 시 〈모란〉은 읽을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담백하다. 군소리가 없어 마음이 깨끗해진다. 담백하다 해서 아무 맛도 없이 싱겁다는 것은 아니다. 마음 안쪽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간절함이 있다. “앞뜰이 생기면/두어평 앞뜰이 생기면”이라는 반복과 점층이 ‘뜰’을 마련하고픈 절실함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시인이 원하는 자그마한 ‘두어평’의 뜰은 영혼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마음 속에서 홀로 수없이 피고 졌던 ‘모란’은 심중에 묻어두었던 어떤 열망이나 사랑 혹은 아픔일 것이다. 생활이라는 핑계로 혹은 용기 없음으로 인해 말하지 못했던 마음 속의 사연. 그런 은밀의 사연을 담은 모란꽃은 시인만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에 하나씩은 심겨져 있을 것이다. 엄동설한에도 피고 지며 자신에게 위안을 준 ‘백모란’을 두어평 앞뜰에 옮겨 심어 눈으로 보고자 하는 시인의 염원은 영혼의 위로와 안식을 바라는 간절함으로 읽혀진다. “두어평 앞뜰”이라는 소박한 장소에 담겨진 시인의 조용한 동경이 시를 읽는 내 마음에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간절함이 없는 삶은 간을 하지 않은 음식처럼 맛이 없다. 간절함이 있기에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간은 백모란 피는 뜨락의 봄처럼 아름답고 생생하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는 바로 지금이 앞으로 다가올 봄에 해야 할 많은 일 중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할 시기다.”(《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이 마음에 깊게 드리운다. ‘지금’의 시간을 가꾸는 사람만이 미래의 정원에 꽃을 피울 수 있다.
글=신종호 시인
/ 2021.09.2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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