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시 읽어주는 남자] '하모니카 부는 참새' 함기석 (2021.09.21)

푸레택 2021. 9. 21. 09:48

■ 하모니카 부는 참새 / 함기석

무더운 여름 오후다
참새가 교무실 창가로 날아와 하모니카를 분다
유리창은 조용조용 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하모니카 속에서
아주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나온다
물고기들은 빛으로 짠 예쁜 남방을 입고
살랑살랑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교무실을 유영하다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선생들 귓속으로 들어간다
선생들이 간지러워 웃는다
책상도 의자도 책들도 간질간질 웃으며
소리 없이 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선생들도 흘러내린다
처음 들어보는 이상하고 시원한 물소리에
복도를 지나던 땀에 젖은 아이들이
뒤꿈치를 들고 목을 길게 빼고 들여다 본다
수학 선생도 사회 선생도 국사 선생도 보이지 않고
교무실은 온통 수영장이다

- 《뽈랑 공원》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감상]


학창시절의 추억에는 ‘체벌’ 이야기가 단골로 등장한다. 교탁에 걸터앉아 교과서를 읽는 선생님의 손에는 통통하고 작달막한 몽둥이가 ‘악몽’처럼 쥐어져 있었다. 그 몽둥이의 이름은 ‘훈육봉’이었다. 선생님은 그걸로 학생들의 까까머리를 목탁 치듯 연달아 두들겼다. 다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는 했지만 학생들에게는 꼭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품성이나 도덕을 가르쳐 기른다는 것이 ‘훈육’의 뜻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규율’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폭력을 가해서라도 ‘처벌’을 하겠다는 일종의 ‘협박’이 담겨있는 듯하다. 더군다나 ‘규율’이라는 것이 내가 동의하지 않은 일방적 강제에 의한 것이라면 맞는 이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맞는 게 싫어 ‘복종’하게 된다. 훈육하는 자의 ‘처벌’과 훈육당하는 자의 ‘복종’이 악순환을 이룰 때 학교는 ‘감옥’이 된다. 그곳의 생활은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 언급한 것처럼 “배제한다, 처벌한다, 억누른다, 검열한다, 고립시킨다, 은폐한다, 감춘다.” 등의 부정적 표현에 의해 유지된다.

함기석 시인의 시 〈하모니카 부는 참새〉에 묘사된 교실 풍경은 동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참새가 하모니카를 불고, 유리창이 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하모니카에서 나온 물고기들이 교실과 교무실을 헤엄치다 선생님의 귓속으로 들어가 웃음을 유발하고, 마침내 책과 책상과 선생님이 물이 되는 난리법석의 흥겨운 소동. 언뜻 보기에는 활달하고 유쾌해 보이지만 꼭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의 교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처벌하고, 검열하고, 억누르는 것이 교실을 지배하는 ‘동사(動詞)’들이다. 함기석 시인은 그런 동사들의 횡포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차 없이 녹여버린다. 유리창, 책상과 의자, 선생님으로 표상된 ‘딱딱한 것들’을 물처럼 녹여 하나로 흐르게 만든다. 그리하여 교실은 어떤 경계도 없는, 모두가 더위를 잊고 시원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자유의 쾌적한 장소가 된다. “처음 들어보는 이상하고 시원한 물소리”란 경직된 것들을 녹여버리는 ‘부드러운 혁명’의 소리일 것이다. 시인이란 그 소리를 이끌어내는 사람들, 즉 무더운 여름날 지친 일상의 창가로 날아와 하모니카를 불어주는 ‘참새’들은 아닐까.

글=신종호 시인

/ 2021.09.2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