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일기] 뒤돌아본 지나온 길 26

[추억일기] '기차보다도 긴 이야기들' 김재화, 40년 전 833포병대대 나의 추억록 속 내 모습 (2020.10.08)

♤ 40년 전 나의 군대 추억록에 남긴 암호병 김 전우의 길고도 재미난 글 '기차보다도 긴 이야기들'을 이곳에 싣는다. 스무살 남짓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깊은 철학이 담긴 글을 쓸 수 있는지 그의 혜안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사십 년 전에 쓴 글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시대를 앞서간 그의 필력 또한 놀랍다. 나의 추억록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의 유머 감각 넘치는 이 글이 세월의 간극을 넘어 다시 세상에 나와 오늘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 기차보다도 긴 이야기들 / 김재화 열다섯 마디 정도를 해 볼 경우 ㅡ 1. 당신은 나무와 돌과 숫자와 냄새와 빛깔과 구름, 흙... 군인들이 웃고 사랑하고 있는 질서를 아는가? 그들이 아우성을 칠 때 혹 '슬프다' 라고 소리지르지 않던가. 2..

[추억일기] 암호병과 서무계, 40년 전 833포병대대에서의 추억 (2020.10.07)

■ 암호병과 서무계 며칠 전 추석에 관한 글을 검색하다가 '추효정답(秋孝情答)'이라는 제목의 블로그 글이 눈에 띄여 읽어 보았다. '참 재미있게도 글을 썼네' 생각하며 글쓴이를 보니 이름이 눈에 익숙하였다. 그는 놀랍게도 40년 전 강원도 양구 한 포병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전우였다. 글을 다 읽고 '40년 전 양구 포병부대에서 함께 근무한 전우인데 기억 나시느냐'는 댓글을 남겼다. 며칠 후 다시 블로그를 찾아 들어가보니 그가 답글로 '전화해 달라'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놓았다.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강원도 양구 원당리 산골짝 대암산 밑자락에 위치한 한 포병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 나는 대대 군수과 행정서기병으로 서무계 보직을 맡아 근무했고 나보다 몇 개월 늦게 자대에 전입 온 그는 통..

[추억일기] 가슴에 내리는 비, 왕십리의 추억.. 왕십리 김소월,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2020.07.12)

☆ 가슴에 내리는 비, 왕십리(往十里)의 추억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장맛비가 내린다. 빗속 산책 길, 어느 집 처마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낙숫물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마냥 정겹다. 낙숫물은 어디론가 흘러간다. 낙숫물은 시냇물이 되고, 시냇물은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리라. 비가 내리지 않고 눈이 내리지 않는다면 그런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고 새가 울지 않는 그런 침묵의 세상은 또 얼마나 삭막할까? 코로나로 마스크를 끼고 살아가야 하는 지금 이 세상은 '침묵의 봄'과 무엇이 다를까? 어린 시절, 비가 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빗물받이 양철 홈통을 따라 콸콸 흘러 내려가는 물소리를 들었다. 나는 빗물 흘러가는 소리를 참 좋아했다. 여름비는 마당 한 구석 ..

[추억일기] 내 인생의 나무들, 한 그루 보리수나무에 스쳐가는 단상(斷想) (2020.04.29)

● 뜰보리수와 산뽕나무에 스쳐가는 단상 안타깝고 지루한 Covid19 사태가 잠잠해질 줄 모르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멀리 꽃 산행을 가서 나무와 풀꽃을 만나는 즐거움이 사라졌다. 동네를 한바퀴 산책하며 나무와 풀꽃을 관찰하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다. 오늘 산책길에서 뜰보리수와 산뽕나무를 만났다. 뜰보리수 은빛 이파리엔 내 유년시절의 꿈이 숨어있고 산뽕나무 열매엔 청년시절의 설움이 맺혀있기에 나는 이 두 나무를 나의 인생 나무로 삼아 늘 내 마음 속에서 키워왔다. 유년 시절 뛰어놀던 뒷동산에는 보리수나무가 참 많았다. 어느 날의 가을이었던가, 학교를 파하고 뒷동산 언덕에 올라 빨갛게 익은 보리수 열매를 맛보며 뛰놀던 그 때가. 성터 언덕배기 산동네엔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아이들은 산에 오..

[군대추억] 봄이 오면 생각나는 대암산 전우들 (2020.04.05)

♤ 봄이 오면 생각나는 대암산 전우들에 부치는 편지 로 펑범한 일상이 멈추고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사회적 물리적 거리 유지'를 2주 더 실행하라 한다. 오늘도 마스크를 한채 동네를 한바퀴 걸었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새싹이 돋고 나무는 꽃을 피운다. 민들레와 제비꽃이 피어나면 봄이 온 것이다. 벚꽃 만발하면 봄이 무르익어 가는 것이다. 목련은 왜 그리도 곱게 피어나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가. 봄이 오면 그 옛날 연분홍 진달래 군락을 물든 대암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암산 언덕에는 무더기 무더기로 진달래꽃 피어나 집 떠나온 이등병의 마음에 고향 생각 떠오르게 하겠지. 취사장 앞 냇물에도 봄이 찾아와 겨우내 얼었던 얼음물 녹아 흐르고 있겠지.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이 내리던 ..

[군대추억] '화려한 청춘의 축제' 김재화 방송작가 교수, 측지 남병덕 조달청 단장, 1679부대 833포병대대 전우 (2019.11.28)

● 화려한 '청춘의 축제' / 김재화 (방송작가, 교수) 30대 이상의 대한민국 모든 남자가 자주 꾸는 꿈(夢)이 있다. 꿈은 때로는 그야말로 몽매에도 그리웠던 사람을 만나고,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호기이며, 황홀하기 그지없는 섹스도 하련만 이 땅의 중년 남자들이 꾸는 그 꿈은 나갈 곳을 다시 주저앉는 참담함뿐이다. 군대 꿈. 현실과 달리 제대가 되지 않는 이상한 엉킴. 병(病)을 미워하면 오히려 그 병이 빨리 떠나지 않고 친해지면 오히려 금방 떠난다고 하던가. 나는 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내게 군대가 무엇이었던가. 다시 그 옛날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 아, 대번에 놀라운 변화가 왔다. 처음 한동안 그토록 절망적이던 꿈이 이제는 다시 가고픈 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모습을 상영하는 것이다. ..

[군대추억] 전선야곡.. 옛 노래에 얽힌 군대 시절의 단상, 1679부대 833포병대대, 대암산 아래에서 보낸 젊은 날의 추억을 그리며... (2019.11.22)

● 옛 노래에 얽힌 군대 시절의 단상(斷想) 며칠 전 스물한 살 청년 조명섭 군이 KBS 경연 프로그램인 '트로트가 좋아'에서 부른 '신라의 달밤' 노래를 들은 이후로 명섭 군 목소리가 내 삶을 사로잡아 늪에 빠진 듯 헤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천상의 소리가 있다면 바로 이런 소리일까, 스물 한살 청년 조명섭 군의 노래를 들으니 문득 명섭 군과 같은 그 젊음의 시절, 내 젊음을 두고온 곳 그곳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노래부르던 푸른 제복의 전우들 모습이 떠오른다. 그 서럽고 고된 나날, 내게 힘이 되어주었던 전우들의 노랫소리가 기억의 저편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듯하다. 그리운 목소리는 아침 구보때마다 우렁차게 불렀던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이런 군가가 아니다. 저녁 ..

[추억일기] 닭곰탕과 군대 퀴즈대회 이야기 그리고 40년 만의 만남 (2019.09.02)

● 닭곰탕과 군대 퀴즈대회 이야기 그리고 40년 만의 만남 며칠 전 친구가 카톡으로 숫자 퀴즈 문제를 보내왔다. 계산을 잘못해서 세 번 틀리고 네 번째 만에 답을 맞혔다. 여주에 사는 동생은 어느 병원에서 뇌 건강을 위해 만든 것이라며 초성만 적혀 있는 속담 퀴즈 문제를 보내왔다. 속담 문제는 비교적 쉽게 풀었다. 퀴즈 문제들을 받고 보니 문득 퀴즈를 좋아했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퀴즈 문제 푸는 것을 좋아했다. 어려서는 이광재 아나운서와 임택근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퀴즈열차'와 '백만인의 퀴즈'를 즐겨 들었다. '스무고개'도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TV 인기 프로그램인 '장학퀴즈'를 빠짐없이 보았고 요즈음은 '도전 골든벨'이나 '우리 말 겨루기'를 즐..

[소설읽기] 「어느 이등병의 편지」 문형렬 장편소설, 군에 입대하는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2019.08.23)

● '어느 이등병의 편지'를 읽고 소설 책 한 권을 단숨에 읽었다. 문형렬의 장편소설 '어느 이등병의 편지'. 1982년에 쓰기 시작하여 30년 만에 완성된 소설이며 안타깝게 너무도 일찍 우리 곁을 떠나간 가수 김광석이 책이 나오면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주겠다고 했던 소설이라고 한다. '어느 이등병의 편지'는 철책선 전방에서 근무했던 문형렬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병사들의 일기이며, 이 땅의 모든 병사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군대 체험 소설인 '어느 이등병의 편지'는 공교롭게도 내가 군복무를 했던 강원도 양구와 인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양구 해안면과 방산면, 남면, 동면 원당리와 후곡리, 임당리, 월운리, 팔랑리 그리고 인제 서화리와 천도리에서 군복무를 했던 사람들은 이 소설이 자신의 이..

[추억일기] 귀공자 백송과 바다수세미 해로동혈 이야기 (2019.07.22)

● 귀공지 백송과 바다수세미 해로동혈(偕老同穴) 이야기 백송(白松)은 수피(樹皮)가 하얗고 얼룩얼룩하여 한 번 본 사람은 쉽게 잊지 못한다. 고고함과 엄숙함이 느껴지는 고상한 귀공자 나무다. 오래 전 한창 생태 탐사에 심취(心醉)되어 있을 때 옛 창덕여고 자리인 헌법재판소에서 백송(白松)을 보며 나무도 이렇게 잘 생기고 멋있을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가끔씩 찾아가는 홍릉 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에도 몇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갈 적마다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백송은 중국이 고향인 나무인데 원산지에서도 자연 상태로 만나기가 어려운 희귀(稀貴) 수종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백송의 멋지고 특이한 모습에 반해서 가로수나 정원수로 많이 심어 지금은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환경 적응력(適應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