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일기] 뒤돌아본 지나온 길

[소설읽기] 「어느 이등병의 편지」 문형렬 장편소설, 군에 입대하는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2019.08.23)

푸레택 2019. 8. 23. 19:10

 

 

 

 

 

 

● '어느 이등병의 편지'를 읽고

소설 책 한 권을 단숨에 읽었다. 문형렬의 장편소설 '어느 이등병의 편지'. 1982년에 쓰기 시작하여 30년 만에 완성된 소설이며 안타깝게 너무도 일찍 우리 곁을 떠나간 가수 김광석이 책이 나오면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주겠다고 했던 소설이라고 한다. '어느 이등병의 편지'는 철책선 전방에서 근무했던 문형렬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병사들의 일기이며, 이 땅의 모든 병사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군대 체험 소설인 '어느 이등병의 편지'는 공교롭게도 내가 군복무를 했던 강원도 양구와 인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양구 해안면과 방산면, 남면, 동면 원당리와 후곡리, 임당리, 월운리, 팔랑리 그리고 인제 서화리와 천도리에서 군복무를 했던 사람들은 이 소설이 자신의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또한 시대적 배경도 1970년대 후반으로 내가 군복무했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여 더욱 흥미를 갖고 읽으며 소설에 빠져들었다. '작가의 말'에 나오는 펀치볼 해안마을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를 비롯하여 도솔산과 두타연, 대암산 용늪은 전역 후에 가 본 적이 있다.

다시 옛 근무지를 찾은 작가는 농구를 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스물 몇 살 때의 옛 우리들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문득 그들의 얼굴 속에서 아직 그곳에 그대로 서있는 이십대 초반의 내 모습을 보았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작년과 재작년 두해 연속 부대창설기념 부대개방행사 때 내가 근무했던 부대를 방문했다. 전역 후 40년 만에 찾아간 부대에서 앳되어 보이는 이등병 병사를 보았다. 나도 그에게서 매서운 찬바람 몰아치던 한겨울 어느 날 자대에 배치되어 어리바리하던 이십대의 내 모습을 발견했다.

강원도 양구 대암산 기슭에 위치한 말단 포병대대, 그곳에서 보낸 3년의 세월, 내 젊음을 두고 온 그곳. 동고동락했던 전우들 그리워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들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1970년대 대암산 군대 시절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올린 동영상은 조회수가 2년 만에 8만을 훌쩍 넘었다. 이 소설의 해설 평론을 쓴 진형준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군대 시절은 지우고 싶고 잊고 싶은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록 힘들고 서럽던 시절이었지만 그때 그 시절을, 그때 만났던 전우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또한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유튜브에 올린 '군대시절의 추억' 동영상에는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그 시절이 고생스러웠지만 그때 전우들이 그립다는 내용이다. 추워 죽을 뻔했습니다. 이런 영상을 보면 특히 집에서 한 잔 할 때면 눈물이 납니다. 군생활할 때 무섭기도 하고 죽여버리고 싶던 선임들이 제대하니 왜 이리 보고 싶던지. 사는 게 삭막해질수록 군시절이 생각납니다. 일하다가 문득 아무 걱정 없던 때가 그리워 검색해 보았습니다. 저렇게 싱싱하고 푸르르게 젊었었는데 야속한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러갔습니다. 34개월 참 길었던 군대생활, 유난히도 힘들었던 시절. 그래도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으니까 그 시절이 애타게 그립습니다. 댓글로 소통하고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해설에서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군대란 우리의 꿈을 잃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가치를 되찾게 하고 그를 통해 더 크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만드는 곳이라는 것, 적어도 작가는 그런 군 생활을 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작가는 제대 후 곧바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다. 힘들고 고단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언제나 어느 곳에서든 꿈을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낸다면 오히려 그 힘들고 서럽던 다양한 경험들이 삶의 밑거름이 되지 않겠는가.

작가는 세상이 바뀌면서 나는 그때 병사들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썼는지 점점 알 수 없어졌다고 말한다. 다만 이런 무수한 변화가 있기까지 수많은 병사들이 젊음을 바쳤다는 것을 세상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작가는 소설책이 나오면 '이등병의 편지'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약속했던 가수 김광석이 세상에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사라지는 것들이 어디 사람과 그리움뿐이겠는가는 말이 가슴을 저린다.

평론가는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어찌 '서화리 검문소 앞에서 군복을 입은 사내가 눈앞에 불쑥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연인, 그리고 지금도 휴전선 앞에 우뚝 서 있는 수많은 병사와 선임하사, 장교들'뿐이리오. 옛날이 되었건 지금이건, 그리고 양구가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건 푸른 군복을 입고 군 생활을 했던 모든 사람들, 지금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친들 무슨 손색이 있으리오, 그의 이 젊음의 편지, 삼십 년 전에 시작해서 이제 끝을 본 이 젊음의 편지를 내가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저녁 강원도 양구 대암산 기슭 833포병대대에서 젊음을 함께 했던 전우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어느 이등병의 편지'를 마음에 담는다.

/ 2019.08.23(금) 저녁에 김영택 씀

 

☆ 만일 네가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

하지만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 - 아프리카 격언

● 가수 김광석이 노래로 불러주고 싶어 했던 소설

방송국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가수 김광석이 심야 생방송을 마치고 나면 같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곤 한 적이 많았다. 그때 나는 어느 이등병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고, 김광석은 소설책이 나오면 기념으로 자신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약속했던 그도 세상에 없다. 사라지는 것들이 사람과 그리움뿐이겠는가.「자가의 말」 중에서

● 작가의 말 / 문형렬

사라지는 것들이 사람과 그리움뿐이겠는가.

스물세 살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동부전선에 있었다. 그곳을 떠나온 뒤 한 세대가 거의 지난 어느 해 겨울, 다시 가보았다. 풍문으로는 들었는데 가보니 정말 민간인 통제선이 없어지고, 해안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서화와 돌산령의 검문소도 사라졌다. 해안 마을은 제4땅굴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그 땅굴은 우리가 근무하던 때 이미 그 징후를 발견해 상부로 정보 보고를 했지만 묵살되었던 곳이다. 휴전선에 붙은 205GP (경계초소)는 민간인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을지전망대로 바뀌었다.

나는 을지전망대에 서서 내려다보았지만 어디가 1026고지이고, 기드온 교회가 있었던 자리이며, 소주를 사기 위해 해안마을로 가던 내리막길이 있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세찬 바람과 칼날능선과 비무장지대, 긴 방책선만이 예전 그대로였다. 205GP 앞에서는 병사 셋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스물 몇 살 때의 옛 우리들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문득 나는 그들의 얼굴 속에서 아직 그곳에 그대로 서있는 이십대 초반의 내 모습을 보았다.

세상은 달라졌다고 한다. 남쪽 사람들이 금강산도 가고, 개성공단도 만들어졌다. 남북 정상회담도 두 번 있었다. 군대에 간 아들의 씩씩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듯 군대는 너무 세련돼 있었다. 과거와 달라진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도 있었다. 1, 2차 서해교전이며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은 분단의 현실을 여전히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내가 동부전선에서 하루 70원의 생명수당을 받으며 이십대 초반을 고스란히 보낸 데 비해 아들은 중부전선에서 하루 400원의 생명수당을 받으며 이십대 초반을 보냈다. 생명수당의 차이도 변화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런 변화 속에서 나는 우리가 경계 근무를 맡았던 휴전선 지역으로 월북한 소령이 북한의 사상범 교화소에 수용돼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 분홍빛 꿈으로 아롱져야 할 청춘을 소리 없이 떠나보냈던 그 시절은 이제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 남아 있다. 그러니 시간이 갈수록 많은 이들은 한국전쟁마저 추억으로 기억할지 모른다. 세상이 바뀌면서 나는 그때 병사들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썼는지 점점 알 수 없어졌다. 다만 이런 무수한 변화가 있기까지 수많은 병사들이 젊음을 바쳤다는 것을 세상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

처음 이 소설을 시작했을 때가 신군부 정권 시절인 1982년이었다. 한 편씩 쓰며 잊혀진 얼굴을 떠올리다 보니 내내 손이 시렸다. 게으름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30년이 되어서야 그 시절 병사들의 일기를 끝마쳤다. 스물다섯 살 청춘에서 너무 많은 날들이 멀어지고 떠나갔다.

방송국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가수 김광석이 심야 생방송을 마치고 나면 같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곤 한 적이 많았다. 그때 나는 어느 이등병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고, 김광석은 소설책이 나오면 기념으로 자신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약속했던 그도 세상에 없다. 사라지는 것들이 사람과 그리움뿐이겠는가.

별로 내세울 것도 없지만 꽃분홍처럼 고왔던 병사들과 이름 없이 사라져간 얼굴들, 서화리 검문소 앞에서 군복을 입은 사내가 눈앞에 불쑥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연인, 그리고 지금도 휴전선 앞에 우뚝 서 있는 수많은 병사와 선임하사, 장교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 문형렬

 

● 해설 / 진형준(문학평론가)

 

작가의 자의식 '하길오', 작가의 어린 왕자 '황동수'

사라져가는 모든 그리운 청춘에게 바치는 노래

「작가의 말」에서 “처음 이 소설을 시작했을 때가 신군부 정권 시절인 1982년이었다"라는 구절을 읽는다. 아마 작가가 제대한 지 3년 정도 지난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구절을 읽으며 나는 군에서 제대했을 때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했는가?

나는 군 생활의 모든 것을 지우고, 잊고 싶었다. 내 삶에서 3년 동안의 군 생활을 잘라내고 접착제로 잇고 싶었다. 3년 동안 열심히 쓴 일기를 제대 6개월 후에 읽고 모두 태워버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신을 지킨답시고 쓴 일기에서 오히려 속물이 되어간 자신의 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 갔다 오더니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군대가 아니라 3년의 세월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우겼다.

나의 아이덴티티는 군대에는 없었다. 군대 생활 내내 제대만이 꿈이었다. 내 평생 그만큼 간절하게 그 무언가를 꿈꾸며 기다리는 일이 다시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며 지낸 세월이었다. 제대 후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다시 입영통지서를 받는 악몽에 시달렸던가? 그 악몽 속에서 이것이 제발 꿈이기를 얼마나 간절히 빌었던가? 내가 그 악몽에서 벗어난 것은 정말로 우연인지 모르지만, 작고하신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글을 읽은 뒤부터였다. 그분도 나와 똑같이 다시 입대하는 악몽에 수없이 시달렸다는 글이었다.

그런 내가 문형렬의 군대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에 빠져 다시 그 세월로 돌아간다. 그리고 정말 잘라버리고 싶었던, 잘라낼 수 있었다고 믿었던 그 3년이 결코 잘라낼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는 나의 3년이었음을 절감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청춘의 꿈, 바로 우리가 잊고 사는 청춘의 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3년 동안의 군 생활도 청춘의 꿈을 가진 내 삶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문형렬의 꿈같은 소설은 그런 요술을 부리는 힘을 갖고 있다. 작가는 "천도리 술집에서 소주라도 한잔하며 지난 시절을 꿈처럼 떠올리고 싶지 않았는가. 그 시절은 단순히 지나간 것도 아니고 청춘의 통과의식도 아니라 눈길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드는 미래의 어떤 근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산수유와 자동소총」 233쪽)라며 제대 직후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 시절 병사들의 일기'를 끝마친다.

그 일기에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향한 그리움이 넘친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힘으로 저 아득한 옛 우리의 청춘이, 우리의 청춘이 겪었던 일들이, 우리의 청춘이 만났던 사람들이 눈물겹게 되살아난다. 일기이면서 편지이기도 한 이 소설의 화자는 하길오이다. 그는 이 소설의 화자이면서 동시에 작가 문형렬 자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황동수다. 황동수라는 캐릭터는 실제 인물일 수도 있고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일 수도 있다. 혹은 작가의 또 다른 분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인물이어도 상관없다. 작가는 황동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의 행동과 그의 삶과 그의 죽음을 통해,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지금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모든 병사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황동수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모든 병사들의 생각, 행동, 꿈을 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황동수 개인이 아니라 모든 병사들이 된다. 그는 일종의 신화적인 존재가 된다. 황동수는 화자와 함께 산수유 꽃이 핀 계절에 입영통지서를 받는다. 소설 속의 산수유는 청춘의 꽃이다. 화자는 "나는 나를 아는 모든 이로부터 잠시나마 몸을 감추고 싶었고, 나 자신으로부터도 몸을 감추고 싶었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곳은 군대밖에 없었다. 입영통지서는 유배된 청춘을 위한 초대장이었다"(「금강산꽃구경」 100쪽)라고 쓴다.

산수유는 유배된 청춘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다른 청춘을 살고 싶은 갈망의 상징이다. 나는 화자의 그 말에서 입영 당시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 내가 꼭 그러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더 이상 학교에 다닐 힘이 없었다. 흥이 없었다. 나는 입대를 했다. 그때 군대는 내게 도피처면서 희망이었다. 감춤과 새로움의 이중 의미를 지닌 입대였다. 어찌 나만 그러했을 것이랴. 입대라는 도피처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사람이 어찌 소설 속의 화자와 나뿐이었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낭만적인 생각이었는지는 신병 훈련 첫날부터 단번에 알게 된다. 그런 낭만적인 생각은 저리 가고 관심사는 딱 두 가지로 집약된다. 허기를 메우는 일과 줄을 잘 서서 좋은 부대 배치받기. 훈련병 생활과 자대 생활 초기 황동수의 모습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 모습은 당시 군 생활을 하던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군생활을 하던 모든 청춘의 모습이었다.

산수유 꽃을 보고 “그래, 청춘의 꽃이란 말이지!"라고 말하던 낭만적 나는 사라지고 '군대'에서 편하게 지내려는, 편하게 살아남으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나만 남게 되는 것이 바로 군생활이었다. 황동수는 산수유 꽃이 피면서 시작한 또 다른 청춘이 그런 낭만적인 청춘이 아니라 전혀 다른 청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화자인 하길오와 황동수는 그 청춘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 과거의 나와 단절된 새로운 청춘의 길이다. 작가의 자의식의 상징인 하길오가 가는 그 길은 과거의 나에 비추면 한없이 초라한 새로운 내가 걸어가는 길이다. 그 청춘의 길은 세상 모르는 채 밝은 낭만적 꿈에 젖어 있던 지난 날 청춘의 길이 아니다.

화자가 직집 "갓 전반기 훈련을 마치고 군용 버스에 탄 신병들의 심정도 우리와 무어 다를 바 있었겠는가. 산길이 굽이쳐 오르고 내리는 것이며, 계곡 아래로 까마득히 구르는 명주 빛 물줄기, 허공을 가르는 낙락장송들의 장대함도 그들에게는 한갓 어두운 젊음의 배경일 뿐이었다"(「금강산 꽃구경」 120쪽)라고 묘사하고 있듯이 어두운 젊음의 길이다.

그 길을 제대로 걸어가려면 과거의 나와 단절해야 한다. 어렵게 면회를 온 현숙을 만나러 가지 않고 피한 것은 그 때문이다. 화자는 "내가 왜 그녀를 만나러 가지 않았는지 나 스스로도 그 이유를 모른다. 한순간에 달려나가고 싶었지만 왜 그러지 못했는지, 그녀가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알고 찾아왔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금강산 꽃구경」 142쪽)이라고 쓴다.

물론 “모두들 빠질 수 있다면 빠지고 싶은 그까짓 군 복무를 슬쩍 비켜가서 출세를 향해 자신의 미래와 희망을 가꾸는 이들에 비해 지방대학에 겨우 이름이나 걸어놓고 동부전선에 처박혀 있는 나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못해 형편없었다. 그녀는 수재였고, 이름 있는 집안의 외딸이었으며, 명문대학에 다니고 있었다"(「금강산 꽃구경」 142쪽)라고 슬쩍 현실적 이유를 밝히는 척한다. 칠이 들어서 피하는 것 같다. 그런 면이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내가 이미 다른 사람이 되었고 그 다른 사람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길오의 삶은 배경으로 사라지고 황동수의 삶이 전면으로 떠오른다. 작품의 중심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금강산 꽃구경」은 황동수의 이야기다. 「금강산 꽃구경」은 황동수 이야기면서 동시에 또 다른 청춘의 삶의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황동수를 하길오와 함께 작가 문형렬의 또 다른 자아라고 보는 것도 별 문제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황동수는 고문관 소리를 들으면서도 열심히 군대 생활을 한다. 하지만 결국은 가장 고독한 결별의 삶으로 귀결된다.

그 고독한 결별의 삶은 우선은 "쇳덩이를 삼킨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길이고, "후방에서 날아드는 편지가 우리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존재감 상실의 삶이다(「실명기」 75), 근무하는 곳이 군 내에서도 가장 오지인 철책선 전방이니 그 결별은 더욱 철저하다. 눈이라도 오면 그 단절과 결별은 완벽해진다. 그 단절과 결별의 삶은 “"벙커 주위로 쌓이는 눈발을 치우는 일과 편지 쓰기,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자동소총을 북으로 겨누는 일이 병사들의 모든 것"(「실명기」 78쪽)과 같은 무의미한 삶이다. 그 삶은 잠을 자며 자신의 존재조차 잃어버리는 삶이다.

병사들은 저마다의 잠자리로 돌아갔다. 잠 동네를 찾아 떠나며 그들은 누군가의 시처럼 중얼거렸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잠 길에서 산쥐를 만난다면 그들에게 닥쳐오는 이 잠이 산쥐들의 잠과 같은 오랜 잠인지, 아니면 어떤 하찮은 인간의 잠인지를 물어보리라고.(「실명기」 89쪽)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다. 황동수의 새로운 꿈이 그 철저한 고독과 결별 가운데 탄생한다. 정말로 느닷없이 "이보라우! 금강산 꽃구경 오라우! 어저께 봄눈이 내렸지 앙이요. 그러니께니 햇빛 좋고, 시계 극히 양호, 비로봉 보고 싶지비? 마하면 보고 싶지비? 왔다 갔다 육십 리 길, 돌사다리 처녀길 걷고 싶지비?"로 시작되는 「금강산 꽃구경」의 첫머리 사설은, 요령 있는 군대 생활을 꿈꾸며 그에 충실했던 황동수가 꾸게 된 새로운 꿈의 내용이다.

그 꿈은 철없던 시절 작품의 화자인 하길오가 가졌던 꿈과는 질이 다르다. 그 꿈은 철이 들어 꾸는 꿈이다. 입대를 하면 잃어버릴 수밖에 없던 그런 꿈이 아니다. 제대하면 다시 찾을 수 있는 그런 꿈이 아니다. 그 꿈은 옛 꿈을 잃은 존재가 그 옛 꿈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군대에서 열심히 생활하면서 새롭게 갖게 된 꿈이다. 그리하여 황동수는 꿈꾸는 존재가 된다. 금강산 꽃구경을 가는 꿈을 꾸는 존재가 된다.

힘이 세고 눈물도 많고 의협심도 강했던 황동수라는 존재가, 어머니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존재인 황동수가,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고 희망이었던 존재인 황동수가 꾸게 된 새로운 꿈이다. 작가는 황동수의 그런 꿈을 통해 군대란 우리의 꿈을 잃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가치를 되찾게 하고 그를 통해 더 크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만드는 곳이라는 것, 적어도 작가는 그런 군 생활을 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작가는 제대 후 곧바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작가는 황동수에 대해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 흩날려간,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영웅이었다"(「산수유와 자동소총」 221쪽)라고 쓴다. 그는 군대에서도 보기 드문 캐릭터다. 그가 근무하던 곳에서 벌어진 모든 사고들, 게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고 겪을 수 있는 사고들이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군대가 아니었다면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 살아간다. 황동수는 그 모든 사람들을 집약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황동수에 의해 군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된다.

 

나는 이쯤 해서 황동수가 화자와 함께 입대한 작가의 또 다른 '나'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문득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어린 왕자』의 '어린 왕자'는 누구인가? 그는 잃어버렸던, 작가의 또 다른 모습, 바로 그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꿈과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 또 다른 나이다. 「어린 왕자의 화자는 그 또다른 나를 잃어버린 채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살아간다. 사막에 불시착을 당해서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작품의 화자는 그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그 '또 다른 나'는 꿈을 가진 '나'이며 삶의 근본에 대해 질문하는 '나'이다. 생텍쥐페리는 그 '또 다른 나'를 어린 왕자라는 기막힌 캐릭터로 창조하여 불후의 명작을 남긴다.

 

문형렬의 「어느 이등병의 편지」속 황동수는 바로 작가의 어린 왕자이다. 그 황동수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작가가 겪은 군대 생활은 의미 없이 보낸 어두운 청춘의 삶이 아니게 된다. 황동수라는 존재를 통해 작가는 그'어두운 청춘의 시절'을 삶의 근본에 대해 질문하고 깨닫는 통과제의의 삶으로 바꾸어버린다. 작가의 마술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화자가 어린 왕자를 다시 자기 나라로 돌려보냈듯이 문형렬온 그 또 다른 나를 속세로 데려오지 않는다. 그래서 입영통지서를 황동수에게서 받던 그날 보았던 산수유를 향해 "정신이 타는 숯과 같았던 이는 황동수 바로 너다!"라고, "황동수,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구나! 꽃 같은 네 몸도! 타는 숯 같은 정신도 만날 수 없다" 라고 외치며 여섯 개의 탄창에 든 실탄 120발을 산수유를 향해 날려보낸다. 황동수는 군대 내내 함께했던 나의 분신이기에, 또 다른 나이기에 함께 돌아올 수가 없다. 「어린 왕자」의 화자가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극적으로 나타난 또 다른 나 '어린 왕자'를 다시 자기 별로 돌려보낸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쓴다.

내가 동부전선에서 가지고 나오고 싶었던 것은 해 질 녁. 하늘을 쏘아오르는 샛별과 동터오는 새벽하늘의 빛나는 꿈이었지만 결국 얼룩진 그리움처럼 흐려지는 눈빛만을 가져 나오고 말았다. 나는 그 시절로부터 소리없이 멀어져갔다. 아니, 그 시절을 하나의 장식처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되돌아보면 한갓 얼룩진 그리움으로밖에 간직하지 못한 지금이 오히려 내게는 진정한 실명기인지도 모른다. 거칠게 파고들었던 눈보라와 적막했던 체온의 편린들은 아직도 한순간이나마 가슴을 섬광처럼 타오르게 하지만, 정말 내가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가슴에 품어 안았다면 그것은 지금 내 몸속 어디에서 빛을 밝히고 있을까. (「실녕기」90쪽)

황동수는 화자의 꿈속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는 잊어버리면 안 되는 별 같은 존재다. 작품의 말미에 화자를 삶으로 인도하던 "푸르게 빛나는 샛별” 같은 존재다(「산수유와 자동소총」 238쪽), 그럼으로써 그는 작품 속에서 일종의 신화가 된다. 영원히 사라지면 안 되고 사라질 수도 없는 신화가 된다. 그가 신화가 됨으로써 그와 함께했던 작품 속의 모든 인물들, 화자인 하길오와 선임하사 지중삼, 군수장교 백중기, 포 영감, 금옥이, 금출이, 계순이, 그리고 그 외의 많은 병사도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된다. 그들은 모두 구체적인 삶을 살았던 개별 인물들이지만 그들은 또한 이 세상에 언제고 존재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철책선 전방에서 일정 기간 근무했던 작가 개인의 일기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병사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된다.

그러니 작가는 아주 자신 있게 "별로 내세울 것도 없지만 꽃분홍처럼 고왔던 병사들과 이름 없이 사라져간 얼굴들, 서화리 검문소 앞에서 군복을 입은 사내가 눈앞에 불쑥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연인, 그리고 지금도 휴전선 앞에 우뚝 서 있는 수많은 병사와 선임하사, 장교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라고 「작가의 말」에 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찌 '서화리 검문소 앞에서 군복을 입은 사내가 눈앞에 불쑥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연인, 그리고 지금도 휴전선 앞에 우뚝 서 있는 수많은 병사와 선임하사, 장교들'뿐이리오. 옛날이 되었건 지금이건, 그리고 양구가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건 푸른 군복을 입고 군 생활을 했던 모든 사람들, 지금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친들 무슨 손색이 있으리오, 그의 이 젊음의 편지, 삼십 년 전에 시작해서 이제 끝을 본 이 젊음의 편지를 내가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출처] <어느 이등병의 편지> 작가의 말과 해설 발췌

 

 / 2019.08.23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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