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일기] 뒤돌아본 지나온 길

[추억일기] 성북동(城北洞) 골짜기의 추억, 간송미술관과 보성고(普成高) 천년바위의 추억 (2019.05.28)

푸레택 2019. 5. 28. 08:50

 

 

 

 

 

 

 

 

 

 

 

 

 

 

 

 

 

 

 

 

 

 

 

 

 

 

 

 

 

 

 

 

 

 

 

 

 

 

 

 

 

● 성북동(城北洞) 골짜기의 추억(追憶)

 

 

 

중학생 시절, 성북동(城北洞) 골짜기는 우리들의 놀이터이자 뒷동산이고 뒷동네였다. 쌍다리란 이름이 말해주듯 그땐 하천에 물이 콸콸 흘렀고 다리가 놓여 있었다. 한여름 더위를 피해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울창한 숲이 나타나고, 커다란 돌틈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다다른다. 그곳은 그야말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었다. 지금 다시 찾아가면 그곳은 흔적도 없다.

 

 

 

짙푸른 담쟁이덩굴 기어오르던 서울 성곽 아래쪽, 산꼭대기 산동네에 친구의 집이 있었다. 친구 집에 놀러가면 할머니처럼 늙으신 친구 어머니가 가난한 살림에도 밥을 해 주시곤 했는데 어찌 그리도 밥이 맛있던지.. 그 시절 그 친구는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때 그곳 무릉도원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때묻지 않은 그 때 그곳이, 철없이 뛰놀던 그때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 간송미술관과 보성고(普成高) 천년바위의 추억

 

 

 

심우장을 둘러본 후 서서히 비탈길을 내려와서 조금 더 걸어가면 소설가 이태준이 거주했던 수연산방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잠깐 쉬었다가 간송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린 시절 성북초등학교 옆 숲속에서 친구들과 도토리도 줍고 뛰놀기도 했었는데 그 아름드리 나무 빽빽하고 석탑이 서 있던 그곳이 간송미술관인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간송미술관을 설립하신 분은 문화재 수집가로 유명하신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선생이다. 그분은 나의 모교 보성중, 보성고의 이사장을 역임하셨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은 간송미술관에서 훈민정음(訓民正音) 원본(해례본)을 보았다고 자랑하셨다. 몇 년 전엔 고교 동문들과 함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간송 특별전'을 관람했다. 올해는 지난 1월부터 3월 말까지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코콜랙숀'을 개최했다. 올해는 3.1 독립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보성고의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3.1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간송미술관을 뒤로 하고 유년 시절 뛰놀던 혜화동과 명륜동 그리고 성북동에 접해 있는 서울 성곽길을 걸어 보았다. 혜화동 1번지 보성중학교와 보성고등학교는 청소년 시절의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추억이 깃든, 담쟁이덩굴 기어오르던 빠알간 벽돌 건물 보성고등학교(普成高等學校)는 이제 그곳에 없다. 서울과학고가 우뚝 서 있을 뿐이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점심 시간이면 친구들과 함께 교실 바로 앞에 있는 커다란 '천년바위'(千載岩)에 올라가서 놀곤 했는데 그 바위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자리잡고 있었고 알 수 없는 한문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 글씨는 今古一般(금고일반,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이며 당시 노론의 영수였던 성리학자 송시열(宋時烈, 당시 서인 노론의 영수로 붕당정치의 중심에 선 정치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인물임)이 쓴 글씨라고 한다.

 

 

 

수 년 전 서울과학고에서 과학 실험 연수를 받을 때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년바위'를 바라보며 철없던 중학교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옛 보성고 자리에 잡은 또하나의 건물인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 근처엔 '송시열 집터'라는 안내표지판이 있다. 또한 그 옆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선생이 전국 불교인과 학생들의 3.1 독립운동 계획을 논의한 기념터 안내판도 보인다.

 

 

 

우리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참 많은 것들을 너무 모르고 살아간다. 자랑스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우선 먼저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녹음 짙어가는 5월, 역사와 문화 향기 가득한 성북동 골목길을 거닐며 앞서간 선인(先人)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또한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겨본 오늘 하루는 더없이 뜻깊고 멋진 날이었다. (끌올 글)

 

 

 

●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廣場)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祝福)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採石場) 포성(砲聲)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九孔炭)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平和)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