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일기] 뒤돌아본 지나온 길

[추억일기] 귀공자 백송과 바다수세미 해로동혈 이야기 (2019.07.22)

푸레택 2019. 7. 22. 20:25

 

 

 

 

 

 

 

 

 

 

 

 

 

 

 

 

 

 

 

 

 

● 귀공지 백송과 바다수세미 해로동혈(偕老同穴) 이야기

 

 

 

백송(白松)은 수피(樹皮)가 하얗고 얼룩얼룩하여 한 번 본 사람은 쉽게 잊지 못한다. 고고함과 엄숙함이 느껴지는 고상한 귀공자 나무다. 오래 전 한창 생태 탐사에 심취(心醉)되어 있을 때 옛 창덕여고 자리인 헌법재판소에서 백송(白松)을 보며 나무도 이렇게 잘 생기고 멋있을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가끔씩 찾아가는 홍릉 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에도 몇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갈 적마다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백송은 중국이 고향인 나무인데 원산지에서도 자연 상태로 만나기가 어려운 희귀(稀貴) 수종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백송의 멋지고 특이한 모습에 반해서 가로수나 정원수로 많이 심어 지금은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환경 적응력(適應力)이 떨어지고 번식(繁殖)이 어려워 쉽게 기를 수 있는 나무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백송은 오래 전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使臣)들이 처음 가져다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서울 재동과 조계사, 고양 송포, 예산 용궁리, 이천 신대리에 있는 다섯 그루의 백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백송은 잎이 침엽(針葉)으로 3개가 속생하는데 식물학적으로 잎이 두개인 소나무보다는 잎이 5엽인 잣나무를 닮았다.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다음해 10월에 익어서 달걀 모양의 솔방울이 된다.

 

 

 

백송의 꽃말은 백년해로(百年偕老)라고 한다. 예전엔 누가 결혼을 하면 '백년해로 하세요'라고 말하며 축하의 뜻을 전했다. 백년해로는 해로동혈이라고도 한다. 해로동혈(偕老同穴)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될 때까지 오래도록 함께 살고 함께 늙고(偕老) 같이 한 무덤에 들어간다(同穴)는 뜻이리라.

 

 

 

그런데 생물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해로동혈이라고 하면 백년해로의 뜻보다는 해면동물(海綿動物)인 해로동혈을 떠올린다. 우리가 그릇을 닦을 때 사용하는 수세미를 스펀지라고 하는데 해면동물이 천연 스펀지(Sponge)다. 해면동물은 진정한 조직과 기관이 형성되지 않는 포배기(胞胚期) 상태에 머문 무배엽성의 가장 원시적인 동물이다. 젊은 시절 무척추동물학(無脊椎動物)을 공부할 때 해로동혈을 처음 들었다. 해로동혈은 백년해로라는 말 덕분에 쉽게 기억된다. 대학 시절에 들은 해로동혈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새우 애벌레 한 쌍이 우연히 바다수세미 속으로 들어간다. 바다수세미가 바로 해면동물의 일종인 해로동혈이다. 자기 집인양 해로동혈 몸속에서 먹고 자라던 새우 애벌레 한 쌍이 어느 날 성체가 되고 몸집이 커져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평생을 함께 산다고 한다. 새우 한 쌍이 몸속에 들어와서 같은 구멍(同穴)에서 죽을 때까지 함께 산다(偕老)하여 해로동혈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해로동혈(偕老同穴)! 참 재미있는 이름이다. 가장 멋지고 의미있게 붙여진 동물 이름 대회가 있다면 나는 단연(斷然)코 '해로동혈'에게 베스트 1위 대상(大賞)을 주고 싶다. 해로동혈에 들어간 새우 이름은 동혈새우라고 한다니 이 또한 재미있기 그지 없다.

 

 

 

/ 김영택 졸작수필 2019.07.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