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일기] 뒤돌아본 지나온 길

[추억일기] 닭곰탕과 군대 퀴즈대회 이야기 그리고 40년 만의 만남 (2019.09.02)

푸레택 2019. 9. 2. 14:48

 

 

 

 

 

 

 

 

 

 

 

 

 

 

 

 

 

 

 

 

 

 

 

 

● 닭곰탕과 군대 퀴즈대회 이야기 그리고 40년 만의 만남

 

 

 

며칠 전 친구가 카톡으로 숫자 퀴즈 문제를 보내왔다. 계산을 잘못해서 세 번 틀리고 네 번째 만에 답을 맞혔다. 여주에 사는 동생은 어느 병원에서 뇌 건강을 위해 만든 것이라며 초성만 적혀 있는 속담 퀴즈 문제를 보내왔다. 속담 문제는 비교적 쉽게 풀었다. 퀴즈 문제들을 받고 보니 문득 퀴즈를 좋아했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퀴즈 문제 푸는 것을 좋아했다. 어려서는 이광재 아나운서와 임택근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퀴즈열차'와 '백만인의 퀴즈'를 즐겨 들었다. '스무고개'도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TV 인기 프로그램인 '장학퀴즈'를 빠짐없이 보았고 요즈음은 '도전 골든벨'이나 '우리 말 겨루기'를 즐겨 보곤 한다. 맞히는 문제보다 틀리는 문제가 훨씬 더 많지만 퀴즈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사고력도 증진되고 상식도 풍부해진다.

 

 

 

딸들도 나를 닮았는지 퀴즈 문제 내기와 풀기를 좋아하고 어떤 퀴즈 문제든 도전하여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또 그 덕에 여섯 살 손녀도 퀴즈 놀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온 식구들을 앉혀 놓고 한글카드에 적힌 낱말을 설명하며 무슨 글자인지 맞혀보란다. 그런 날에는 식구들의 환한 미소와 웃음의 향기가 온 방안에 가득 퍼진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즐겨 말한다. 그런데 나는 군대에서 축구를 해 본 적이 없다. 그 대신 나는 군대에서 포대별 대항 '대대 퀴즈대회'에 출전했던 멋진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군대에서 퀴즈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70년대 군대에서 그것도 전방부대에서 퀴즈대회를 다 하다니 정말이야 하면서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포대별 퀴즈대회가 당시 대대장님의 아이디어라고 기억되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대대장님이 아닐 수 없다.

 

 

 

퀴즈대회는 계급간 융합을 위해 계급이 다른 두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출전하도록 했다. 퀴즈대회는 각 포대에서 출전한 여러 팀들이 예선 대회를 먼저 치른 후 예선을 통과한 팀들이 최종 결승전을 펼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일등병인 나는 군수과의 선임 김 하사와 한 팀을 이루어 출전했다. 퀴즈문제는 군대 생활과 관련된 상식 문제들이었는데 김 하사와 나는 예선을 무사히 통과했다.

 

 

 

드디어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결승전 몇 번 째 문제였던가, 사회자가 뜻밖의 문제를 던졌다. "오늘 석식 메뉴는 무엇입니까?" 요즈음 군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는 어느 병사도 세끼 식사 메뉴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저 식당에서 취사병이 만들어 주는 대로 식사를 하면 그뿐이었다. 이 문제의 답은 사실 군수과 서무계인 나만 알고 있는 셈이었다.

 

 

 

퀴즈대회 날 아침 군수과장님이 "오늘 석식 메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셨다. 일일 메뉴를 담당하는 군수과 서무계인 나도 오늘 저녁 메뉴가 무엇인지 잊고 있어서 메뉴판을 보고서 대답했다. "네, 오늘 석식 메뉴는 닭곰탕입니다." 아침에 군수과장님이 오늘 석식 메뉴를 물어본 덕분에 내가 이 문제를 맞혔다. 그 한 문제로 우승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던 김 하사와 나는 본부포대에 우승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결승전은 부대 대대 참모들이 낸 문제로만 출제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군수과장님은 나와 김 하사가 퀴즈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전혀 모르셨다고 한다. 전역 후 어느 한 후배 전우가 고맙게도 대대 퀴즈대회 닭곰탕 얘기를 편지로 전하며 내게 그때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퀴즈대회 우승자에게 포상휴가가 주어졌다. 그러나 나는 나보다 더 고생하는 병사를 추천하여 내가 갈 수 있는 휴가를 양보했다.

 

 

 

내가 군대생활을 했던 70년대 말은 군인들의 열악한 식생활을 개선하고자 병사들에게 매끼니 일식삼찬 식사를 엄수하도록 강조하면서 높으신 분들이 하루하루 메뉴에 관심을 기울이던 때였다. 일식삼찬은 한끼 식사에 세 가지 반찬이라는 뜻이다. 내무반 행정실이나 사무실에는 매일 일일 메뉴판이 붙어 있었다. 군수과장님이 재치있게 석식 문제를 출제한 것이다.

 

 

 

재작년 초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낯익은 한 장의 사진이 내 눈을 번쩍 뜨게 했다.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그 사진은 군수과장님이 어느 신문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는 코너에 응모한 작품으로 군수과 식구들이 일과 후 사무실에서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속에서 나는 40년 전 스무 살 남짓 일등병 시절의 나를 만났다.

 

 

 

군수과 선임하사님도 정말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선임하사님의 지인이 내가 블로그에 쓴 군대 이야기를 읽고 댓글을 남겨준 덕분이다. 나는 군수과장님과 선임하사님의 해후를 주선했다. 선임하사님은 양구 대암산 자락에서 군대생활하던 젊은 시절이 생각나셨는지 목이 메셨다. 식사 자리에서 연락이 되는 전우들에게 전화를 해 두 분께 바꿔 드렸다. 실로 40년 세월이 흐른 후의 만남이다.

 

 

 

"과장님, 그때 군수과 과원들 기억나십니까?"

 

"생각나다 뿐인가? 그때 군수과 식구들 정말 모두 보고 싶네."

 

칠순이 넘으신 과장님의 눈가에 젊은 시절 함께 고생했던 옛 전우들 모습이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과장님께서 포대 대항 퀴즈대회의 결승전 문제로 석식 메뉴 닭곰탕을 출제하셨는데 기억나시나요?"

 

"아 그래? 그건 기억이 잘 안 나네."

 

나는 퀴즈대회에 직접 출전하여 그때 일들이 에피소드 기억으로 오롯이 남아있지만 문제를 출제하셨던 과장님은 당시 일들이 장기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는 듯하다.

 

 

 

70년대 중·후반기의 군대내 생활환경은 참으로 모든 것들이 열악했지만 끈끈한 전우애만큼는 한결 애뜻했다. 이렇듯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는 퀴즈대회도 있었고 모범사병 휴가 추천을 포대원 전원 투표로 결정하기도 했다. 포대별 10km 완전군장 구보 평가 때는 아름다운 전우애로 포대원 전원 시간 내 통과를 이루어냈다. 석식 후 노래자랑 시간에 목청껏 부르던 전우들의 구슬픈 노랫소리는 여전히 내 귓가를 맴돈다.

 

 

 

☆ 1970년대 후반 강원도 양구군 대암산 자락 833포병대대에서 스무 살 남짓 젊음을 함께 보낸 전우들을 그리며....

 

 

 

☆ 사진1 측지병 남병덕 전우에게서 온 편지

 

☆ 사진2 대대 퀴즈대회에서 인사하는 나의 모습

 

☆ 사진3 군수과장님이 '잊지 못할 순간'에 응모한 사진

 

 

 

/ 김영택 2019.09.0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