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일기] 뒤돌아본 지나온 길

[군대추억] '화려한 청춘의 축제' 김재화 방송작가 교수, 측지 남병덕 조달청 단장, 1679부대 833포병대대 전우 (2019.11.28)

푸레택 2019. 11. 28. 23:16

● 화려한 '청춘의 축제' / 김재화 (방송작가, 교수)

 

30대 이상의 대한민국 모든 남자가 자주 꾸는 꿈(夢)이 있다. 꿈은 때로는 그야말로 몽매에도 그리웠던 사람을 만나고,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호기이며, 황홀하기 그지없는 섹스도 하련만 이 땅의 중년 남자들이 꾸는 그 꿈은 나갈 곳을 다시 주저앉는 참담함뿐이다. 군대 꿈. 현실과 달리 제대가 되지 않는 이상한 엉킴.

 

병(病)을 미워하면 오히려 그 병이 빨리 떠나지 않고 친해지면 오히려 금방 떠난다고 하던가. 나는 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내게 군대가 무엇이었던가. 다시 그 옛날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 아, 대번에 놀라운 변화가 왔다. 처음 한동안 그토록 절망적이던 꿈이 이제는 다시 가고픈 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모습을 상영하는 것이다. 어젯밤에도 짜릿한 군대 꿈을 꾸었다.

 

그 단꿈이 된 곳의 설명이 필요하겠지. 강원도 양구 전방 중에서도 최전방. 1976년 늦게 들어간 대학 탓에 제 나이보다 3년 늦게 입대했기에 이미 제대한 친구들의 '서러운 눈물바람'을 맞고 입대한 나였다. 논산에서 기본훈련과 또다른 곳에서 특수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배치를 받은 곳은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하는 곳보다 더욱더 멀고 깊숙한, 지도상으로는 38도 위도의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암호병' 직책은 말단 병사도 전방이나 야전부대로 가지 않는다는데 나만 가장 멀고 험난한 부대로 '귀양'을 간 것이었다.

 

빠삐용처럼 나오기가 험난할 것 같은 그 자대생활은 하나하나가, 하루하루가 참담함의 연속이었다. 우선 그곳은 너무 추웠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근무한 강원도 양구에 불었던 그 칼바람 이상의 추위를 겪어보지도, 아니 숫제 들어보지도 못했다. 배치를 받아 간 다음날이 한창 따스한 봄바람 불고 꽃 흐드러지게 필 5월5일 어린이날이었음에도, 뒷산에는 지난 겨울에 내린 눈이 여태 하얗게 덮여 있었다. 선임병들은 5월이 다 가도록 야전 점퍼의 칼라 깃을 세우고 지냈고 자대에 가면 나아진다던 시설은 더욱 낙후해 있었다.

 

식사를 마치면 식기를 병아리 눈물만큼 흐르는 냇물에 씻어야 했고, 세탁할 물은 아예 없어 선임병들은 1년에 한 차례 휴가 가기 전날 논의 물을 이용해 일계장을 세탁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발·목욕? 무슨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같은 소리 마시라! 그런 건 애초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발은 휴가를 통해 해결해야 했고, 목욕은 부대 뒤로 한참을 가는 곳에 있는 개울물이 여름 장마로 넘치는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요즘 한 공익광고에 군대에 가려는 눈 나쁜 장정이 시력표를 사력을 다해 엉터리로 읽는 것이 나온다. 그런 애국청년도 내 군대생활을 듣고 나면 입대 의욕이 싹 가실까. 그러나, 그러나 진정코 아니다. 나는 지금 후배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을 아직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30여 년 전에 체험한 ‘지옥’이 요즘, 아니 나이가 먹어갈수록 왜 더욱 '천당'처럼 그리워지는 것이고, 그 꿈을 꾸고 나면 다시 힘이 불끈 솟는 이유는 뭘까. 그 생활, 어머니가 면회를 왔을 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궜던 군대, 그 어떤 세상의 방해에도 사랑은 영원하자던 J와의 완전 이별을 가져온 곳, 또 독서를 밥보다 즐기던 내가 책이 미치게 그리웠던 시절! 하지만 그 시기가 내 청춘 재가 되고 만 '제사'는 아니었다.

 

사람에게 성장의 원동력은 따로 있다고 본다. 일정 기간 누구랑 헤어져 있으면서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연모의 시간을 가져야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내가 먹는 것이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그 맛이 더욱 고귀하고 달게 느껴지는 법이다. 때로는 한밤중에 깨어 있으면서 하늘의 별을 봐야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깨닫는 철학자가 된다. 나보다 나이 어린 상관에게 고개를 숙여보기도 해야만 인생사의 미묘한 구조를 안다.

 

나는 비록 3년을 늦게 가서 처음 약간은 불편했지만 그 화려한 '청춘의 축제' 시기를 통해 실로 많은 것을 얻었다. 어디 한두 가지랴! 작가라는 삶을 사는 내 인생의 8할, 아니 10할 모두를 채워 준 자양분을 누리고 있다는.

 

난 지금 늦게 본 아들 녀석에게 말하고 있다. "이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와 네 엄마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부질없는 첫사랑을 떼어준 군대 덕이란다. 세월이 가면 너도 군대라는 축제를 통해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고 또 남자가 얼마나 즐거워질 수 있는가를 깨달을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신문에 실린 글을 옮겨 적음)

 

<작가교수 김재화>

 

▲ 1953년 전남 구례 출생

▲ 중앙대학교 졸업·동 대학원 언론학 수료

▲ 육군1679부대/833포병대대(3포병 여단 예하) 근무(1976년 2월~78년 4월)

▲ TBC-TV '살짜기 웃어예', MBC '웃으면 복이 와요', KBS '유머1번지'등 TV 코미디 프로그램 및 라디오 프로그램 500여 편 집필

▲ 스포츠조선에 일일 칼럼 '에로비안나이트' 8년간 연재

 

● 김재화 전우님과의 추억

 

40년 전 강원도 양구 대암산 밑자락 833포병대대에서 군복무할 때 암호실 보초를 설 때면 암호병인 김재화 전우와 이런 저런 얘기 많이 나누었는데... 내가 전역할 때 내 추억록에 재미난 글 써 주며 전역을 축하해 주기도 했었는데... 전역 후 중앙대 캠퍼스에서 만나 군대에서 못 다한 이야기 나누기도 했었는데... 김재화 전우! 그때 일들이 꿈만 같구려.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갔네요. 군수과 서무계 '영감' 김 병장입니다. 기억나시는지요? 안부를 전해 봅니다.

 

● 측지 정보과 남병덕 전우님!

 

대암산 떠나오고 강산이 네번이나 변했습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군수과 서무계로 근무했던 김영택 전우입니다. 전우님 소식이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조달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시다 은퇴하신 걸로 나오네요. 연락드릴 방법이 없어 제 블로그에서나마 안부를 전해 봅니다. 사진을 보니 대암산 그 젊던 시절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 낯설지 않더군요. 전역 후 편지도 많이 나누었고 한 두번 만난 기억도 납니다만 연락 끊긴 세월이 너무도 길었습니다. 대암산의 작은 거인 김준 전우와는 소식 나누는지요? 제 전역 동기 김양태 전우도 측지반이었지요? 6년 전쯤 당시 측지장교 이복수 중위님이 제 블로그에 글을 남기셔서 통화도 나누었답니다. 몇 년 전에는 병기과 박수천 전우도 만났고 신현탁 군수과장님과 박남종 군수과 선임하사님과도 연락이 되어 몇 차례 만남을 가졌습니다. 최동호 본부포대장님과도 통화하였 습니다. 그리고 의무대와 인사과, 작전과, 수송부, 본부 행정반, 취사반 몇몇 전우들과도 연락이 되어 몇 차례 통화도 했습니다. 다들 부산과 대구, 진주, 광주, 수원 멀리들 사시네요. 혹 이 글 보시면 댓글이나 방명록 남겨주세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리운 벗들이 아른거리는 젊은 날 함께 추억해 보자구요.

 

/ 1679부대 833포병대대 전우 김영택 (2019.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