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오면 생각나는 대암산 전우들에 부치는 편지
<코로나19>로 펑범한 일상이 멈추고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사회적 물리적 거리 유지'를 2주 더 실행하라 한다. 오늘도 마스크를 한채 동네를 한바퀴 걸었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새싹이 돋고 나무는 꽃을 피운다. 민들레와 제비꽃이 피어나면 봄이 온 것이다. 벚꽃 만발하면 봄이 무르익어 가는 것이다. 목련은 왜 그리도 곱게 피어나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가.
봄이 오면 그 옛날 연분홍 진달래 군락을 물든 대암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암산 언덕에는 무더기 무더기로 진달래꽃 피어나 집 떠나온 이등병의 마음에 고향 생각 떠오르게 하겠지. 취사장 앞 냇물에도 봄이 찾아와 겨우내 얼었던 얼음물 녹아 흐르고 있겠지.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이 내리던 강원도 양구의 겨울, 세 번의 시린 겨울을 보내고 나서야 그곳을 떠나올 수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그 모진 겨울 이겨내고 일생에 단 한번 있다는 전역을 하던 그날이, 석별의 정 나누었던 전우들이 불현듯 생각난다.
전역 전날 저녁, 취사반 일을 서둘러 끝낸 건우와 재수는 본부포대 후문 너머 번지없는 주막집으로 나를 잡아 이끌었다. 희미한 초롱불 아래 못 마시는 술 한 잔에 쌓인 설움 터뜨리며 석별의 정 나누었던 그날 밤을 전우야, 기억하느뇨?
전역동기들과 원당리에서 버스를 탔고 남면 어디선가 내렸지. 그러고는 양구선착장까지 걸어가면서 우리는 <삼팔선의 봄>, <전선야곡>, <낙동강 처녀>를 목놓아 불렀지. 군대에서는 군가만 불러야 했지만 우리들은 이 군가 아닌 이 유행가를 마음속으로 수백 번 수천 번 부르며 군생활의 서러움 달래지 않았던가?
'눈녹은 산골짝에 꽃은 피누나. 철조망은 녹슬고 총칼은 빛나.. ',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없이 나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적시면 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이 노랫소리 귓가에 쟁쟁한데, 이 순간을 우리 영원히 잊지말자고 다짐하던 전우의 목소리 생생한데, 전우야, 왜 소식 한 장 없느냐? 소식 한 장 전할 길이 없느냐? 정녕 그때 그 다짐을 잊었단 말인가? 전우야
유달리 키가 크고 맘씨 좋은 형 같이 느껴지던 정보측지과 전우 양태, 말년엔 본부취사반에 파견되어 봉사하던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 석달 고참이면서 전역 동기라 가깝게 지냈는데.. 몇 년 전, 당시 측지장교하셨던 분이 양태 자네 보고싶다며 함께 찾아보자고 연락이 왔었다네. 하지만 끝내 김형을 찾지 못했네.
세월은 흘러가고 인생도 흘러가네. 단 한번뿐인 우리네 인생. 이제 은퇴를 하고 보니 그때 그 시절,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보냈던 그 젊음의 시절이, 그때 우리들 모습이 더욱 그리워지네. 그때 그 젊음의 모습으로 그때 그 마음으로 딱 한번만 우리 만나 그 힘들고 서러웠던 추억담 나눌 수는 없을까?
봄이 오면 생각나는 대암산의 전우들, 군수과 식구들, 본부포대 전우들.. 몇 년 전 군수과장님, 선임하사님 연락되어 만나뵙고 있네. 그분들도 40년 세월 흘러갔어도 여전히 그때 그 시절 생생히 기억하시며 그때 고생했던 전우들 꼭 모두 보고 싶다고 하시네. 어찌 찾을 길 없냐고 안타까워 하시네. 아무리 고생했어도 젊은 날의 추억은 누구의 가슴에도 아련히 남아있나 보네. 전우야, 그대는 어느 하늘 아래에서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느
/ 2020.04.05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