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일기] 뒤돌아본 지나온 길

[추억일기] 가슴에 내리는 비, 왕십리의 추억.. 왕십리 김소월,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2020.07.12)

푸레택 2020. 7. 12. 19:41

 

 

 

 

 

 

 

☆ 가슴에 내리는 비, 왕십리(往十里)의 추억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장맛비가 내린다. 빗속 산책 길, 어느 집 처마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낙숫물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마냥 정겹다. 낙숫물은 어디론가 흘러간다. 낙숫물은 시냇물이 되고, 시냇물은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리라. 비가 내리지 않고 눈이 내리지 않는다면 그런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고 새가 울지 않는 그런 침묵의 세상은 또 얼마나 삭막할까? 코로나로 마스크를 끼고 살아가야 하는 지금 이 세상은 '침묵의 봄'과 무엇이 다를까?

어린 시절, 비가 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빗물받이 양철 홈통을 따라 콸콸 흘러 내려가는 물소리를 들었다. 나는 빗물 흘러가는 소리를 참 좋아했다. 여름비는 마당 한 구석 장독대 옆 어머니가 심어놓은 봉숭아와 사루비아(깨꽃, 샐비아)를 촉촉히 적셔 주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비가 내리는 날엔 나는 나의 애송시가 된 김소월의 '왕십리'를 읊조리며 이런 저런 상념에 젖는다.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山)마루에 걸려서 운다.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에 처음 배운 詩가 김소월의 '산유화'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라는 싯귀가 참 좋았다. 산에는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어나고 또 진다. 산 속에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꽃은 고독하고 외롭다. 외롭게 핀 꽃을 바라보는 나도 외롭다. 나는 너무 어린 시절 고독을 깨닫고 배웠다. 

그리고 전국민의 애송시 '진달래꽃'을 배웠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초혼'을 배웠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소월 시인의 걸작들 중에 '엄마야 누나야'라는 시가 있다. 우리집 둘째 딸은 아기 때, "무슨 노래 할까요?" 하고 물어보면 "엄마야 누나야" 하면서 꼭 이 동요를 불렀다. 그 후 이 노래는 우리 가족 모두의 애창곡이 되었다. 그래 이 노래 가사처럼 우리 가족들이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살아가자꾸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유행가 가사를 통해 김소월의 시 '부모(父母)'를 알았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 보리라(원작: 보랴?)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앉아 밤늦도록 도란거리는 정겨운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던 소월 시인은 1934년 서른 세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아내에게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라는 말을 남긴지 이틀 뒤였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그의 삶은 가난했고 말년은 쓸쓸했다고 한다.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詩는 아직도 살아서 우리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서울로 와서 혜화동에서 몇 년 살다가 명륜동으로 이사했다. 비록 가난했지만 사는 이들 정다웠던 산동네 그 시절, 육남매가 한방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잠시 가난과 슬픔을 잊고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웃음꽃 피웠던 한 순간이 떠오른다. 가난한 살림에 육남매 키우시느라 마음 고생 심하셨을 어머니는 가난한 삶의 응어리 늘 가슴 속에만 쌓아두신 채 불평의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노래를 아주 가끔 언제나 같은 노래를 그것도 몇 소절만 부르셨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어머니는 클레멘타인 노래를 어디서 듣고 배우셨을까?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바람 부는 하루 날에
아버지를 찾으러
바닷가에 나가더니
해가 져도 안 오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넓고 넓은 바닷가에
꿈을 잃은 조각배
철썩이던 파도마저
소리 없이 잠드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왕십리에 먼 친척 이모님이 사셨다. 친이모님들은 모두 멀고 먼 시골 팔공산 아래에서 살고 계시니 명절 때면 친이모님보다 더 자주 뵙는 먼 친척 왕십리 이모님 댁을 찾아가서 동생들과 놀곤 했다. 멀리 발전소가 보였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정이 많으신 이모님은 과일을 잔뜩 싸 주시고는 주머니 주머니에 또 먹을 것을 넣어 주셨다. 중학교 1학년 작문 시간, 왕십리 이모님 댁을 다녀온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썼다. 작문 선생님은 내가 쓴 글을 잘 썼다고 칭찬해 주시고 학생들에게 읽어주셨다.

어머니 돌아가신지 벌써 삼십 삼년, 그후로 왕십리 이모님 댁과의 왕래도 멀어졌고 지금은 소식마저 끊어졌으니.. 이모님도 하늘나라 가셨을 테고 동생들은 어디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때 그 추억만이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오늘처럼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날에는 김소월의 '왕십리'를 읊조리며 어린 시절 왕십리를, 그 옛날의 추억을 반추해 본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어머니의 노랫소리와 함께.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山)마루에 걸려서 운다

/ 2020.07.12 장맛비 내리는 저녁 김영택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