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일기] 뒤돌아본 지나온 길

[추억일기] 암호병과 서무계, 40년 전 833포병대대에서의 추억 (2020.10.07)

푸레택 2020. 10. 7. 18:59

 

 

 

 

 

 

■ 암호병과 서무계

며칠 전 추석에 관한 글을 검색하다가 '추효정답(秋孝情答)'이라는 제목의 블로그 글이 눈에 띄여 읽어 보았다. '참 재미있게도 글을 썼네' 생각하며 글쓴이를 보니 이름이 눈에 익숙하였다. 그는 놀랍게도 40년 전 강원도 양구 한 포병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전우였다. 글을 다 읽고 '40년 전 양구 포병부대에서 함께 근무한 전우인데 기억 나시느냐'는 댓글을 남겼다. 며칠 후 다시 블로그를 찾아 들어가보니 그가 답글로 '전화해 달라'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놓았다.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강원도 양구 원당리 산골짝 대암산 밑자락에 위치한 한 포병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 나는 대대 군수과 행정서기병으로 서무계 보직을 맡아 근무했고 나보다 몇 개월 늦게 자대에 전입 온 그는 통신과 암호병으로 암호실에서 근무했다. 암호병은 보초 근무는 물론이고 어떤 훈련도 받지 않는 이른바 군대 최고 특과병이었다. 내가 초저녁 암호실 보초를 설 때면 암호병인 김 전우와 나는 암호실 앞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곤 했었다.

김 전우는 웅변능력과 글솜씨가 뛰어난 영재 청년이었다. 포사와 군단뿐 아니라 군사령부 웅변대회에 출전하여 상을 휩쓸었다. 내가 전역할 때 내 추억록에 '기차보다도 긴 이야기들' 이라는 제목으로 길고도 재미난 글을 써 주었는데 지금도 그 글을 읽어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고 추억 속 젊은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리고 전역 후 그가 다니던 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나 군대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후 40년 동안 한 번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

글솜씨와 유머감각이 뛰어난 그는 젊은 시절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특히 mbc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 와요'의 방송작가로 이름을 날렸고, 스포츠신문이 인기를 끌던 시절 오랫동안 '에로비안나이트' 라는 칼럼을 신문에 연재하여 유명인으로 자리매김했었다. 40년 동안 그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실은 방송이나 신문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나는 늘 그를 만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에게 전화를 하려 하니 잠시 망설여졌다. 그가 유명한 연예인들과 교류하며 화려하게 살아온 터라 혹여 고생스럽던 기억으로 남아있을 옛 군대시절의 인연을 다 잊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杞憂)였다. 전화를 하니 그는 40년 전의 일을 엊그제 일인 듯 그때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의 안부도 묻고, 전역 이후 군대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얽힌 일화와 사연 등 이런저런 얘기도 들려준다.

세월이 흘러 그 옛날 꽃다운 젊은 시절 군대에서 만났던 청춘의 전우들은 이제 모두 이순(耳順)을 훌쩍 넘겨 종심(從心)을 바라보는 노년이 되었다. 군대시절 인간미 넘치고 인자하셨던 본부포대 포대장님은 나를 늘 '생물 선생!' 하며 농담조로 부르셨는데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하시다. 경상도 특유의 우렁찬 억양으로 업무를 지시하셨던 군수과장님의 여전히 활기찬 목소리도 젊은 시절과 조금도 변함이 없다. 유달리 정이 많으셨던 군수과 선임하사님은 지금도 여전히 다정다감하시며 인정이 넘치신다.

지난 달엔 우연하게도 나의 바로 위 군수과 선임 전우와 연락이 닿아 40년 만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어리바리하던 졸병 시절 나를 따뜻이 대해 주었던 잊지못할 고마운 선임이었다. 며칠 전엔 제천에서 농사일을 하는 군대동기 의무대 전우와 통화하며 옛 추억담을 나누었다. 세월은 흘러갔어도 이심전심으로 꽃다운 젊은 시절 군대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전우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잔잔한 행복이다.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 서로 힘이 되어 주었던 전우들과의 아름다운 기억도, 지워버리고 싶은 쓰린 기억도 이제는 모두 추억이 되었다. 지난 세월의 그 추억들이 이제 오늘 다시 마음 한 모퉁이에서 되살아나 삶의 한 작은 활력소가 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엔 그곳이 아무리 험난한 곳일지라도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 꼭 한번은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서로 살아온 삶이 조금씩 다르고 비록 지금은 서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도 젊은 시절의 그 순수했던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힘든 시절이지만 빠른 시일에 꼭 한 번 만나자는 유머스피치코디네이터 김 작가 아니 영원한 암호병 김 병장이 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2020.10.07 김영택 씀

♤ 40년 전 나의 군대 추억록에 남긴 암호병 김 전우의 길고도 재미난 글 '기차보다도 긴 이야기들'을 이곳에 싣는다. 스무살 남짓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깊은 철학이 담긴 글을 쓸 수 있는지 그의 혜안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사십 년 전에 쓴 글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시대를 앞서간 그의 필력 또한 놀랍다. 나의 추억록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의 유머 감각 넘치는 이 글이 세월의 간극을 넘어 다시 세상에 나와 오늘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 기차보다도 긴 이야기들 / 김재화

열다섯 마디 정도를 해 볼 경우 ㅡ

1. 당신은 나무와 돌과 숫자와 냄새와 빛깔과 구름, 흙... 군인들이 웃고 사랑하고 있는 질서를 아는가? 그들이 아우성을 칠 때 혹 '슬프다' 라고 소리지르지 않던가.

2. 바나나보다도 고무줄보다도 박찬숙이 키보다도 기차보다도 아! 예술보다도 훨씬 더 긴 것을 아시우? 大岩山 겨울 아니겠소. 아무리 달려가서 끝을 잡아보려 해도 그것은 잡히질 않았다오. 팔쌈쌈의 끝! 대한민국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원당리 산 1번지 그 땅에 영광 있어라!

3. 76년 6월 5일 햇빛 약간 더운 날씨
이 부대에 전입 온지 한 달이 겨우 넘었다. 어쨌건 시간은 자꾸 흘러서 내가 제대하는 날까지 흘러가야 할텐데... 난, 이 일기를 읽게 되는 사람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보다도 더 엄숙하고 확실하게 맹세하지만 그날 난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야. 내 참 더러워서! 김 이병인 난 우리 사수 ○ 병장한테 빳다를 30 여 대 맞았다.

4.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달 두달도 아니고 맨날 아주 매일처럼 스스로를 비웃고 스스로가 싱거워지고 마음 속에 어려운 對話를 되풀이 해대는 못났던 시간들이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줬으면...

5. 自由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해야 될 일을 하는 것.

6. 내가 몸이 약간 불편해서, 이제야 펜을 들어 적는구나. 네 동생들이랑 집안 모두가 화평하단다. 아무 걱정 말고 넌 군무에 충실해라. 사내 녀석이 사소한 일을 혼자 스스로 처리해 내지 못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장가만큼은 내가 보내주겠다. 군대 생활 몸 운동한다는 셈 쳐라.

네가 저번에 이 애비한테 보내왔던 편지 중에는 아직도 깨닫지 못한 내용이 있더구나. 피하기 어려운 난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너에게 분별과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1977.1.3 父書

7. 김 병장! 당신을 맨 첨 봤던 것은 물론 내가 이 부대 833포에 전입을 왔던 날였다오. 그땐 당신에게도 사수가 있었던 때였었으니까 쫄병 일등병에다가 걸음걸이는 양반式이었었다오.

8. "누가 날 지우개로 지워 버려라!" 이렇게 고함 질렀던 날도 있었다.

9. 김 병장! 영화관에 들어가면 첨엔 눈이 잘 뜨여지질 않아서 한참 만에야 윤곽을 더듬어내는 것 아닙니까? 아주 고급 극장에. 가야만 플래쉬를 들고 안내해 주는 안내원이 있는 법인데ㅡ. 내가 어리둥절해서 멍해 있던 신병 시절, 김 병장 당신은 따뜻한 목소리로 이곳 분위기를 잘 설명해 주셨다오. 새삼 고마웠다는 얘기라오.

10. 어두운 때 / 날으는 새 / 계속 비공을 하다보면 / 태양을 돌아오겠지 ㅡ. 찬 비바람 몰아친다던가 뒷산에 진달래가 온통 붉게 피어났다던가 밤새도록 눈을 퍼 부어 대는 기후 변화라도 올 때 쯤엔 이곳에 놓여있던 나는 몸서리 쳐지도록 새가 되고 싶도록 황망하고 '허'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11. 김 병장! 제대를 하시거든 곧장 명동엘 한번 가 보시오. 명동 가는 길을 혹시 잊지는 않았는지요? 중앙극장에서 성당 언덕길을 가던지 결혼회관에서 육교를 건너 '늘봄' 다방 골목길로 들어가던지 미도파백화점 앞 지하도를 걸으시오.

아님, 헬리콥터를 타고 공중에서 낙하산 착륙을 해도 무방하겠소. 혹, 아는 얼굴을 만나서 와 명동엘 나왔느냐고 묻거든 군대 시절 김재화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 이야기 하길 제대를 하거든 곧장 여길 가 보라고 하더라고 대답하시오. 그냥.

12. 옛날에 어느 소녀는 날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르기를 바라면서 살았답니다.

13. 김 병장! 오늘 청소는 만점이오. 이젠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이젠 안 와도 좋소.

14. 컴컴한 움막에 숨어 있어도 푹! 모자를 눌러쓰고 땅만 보고 걸어도 많은 사람을. 알게 됐고, 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았을 게다. 똑같은 길이로 머리털을 깎고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혀 뒀지만 숨쉬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크레용 상자 속에 크레용이 일렬횡대로 가지각색의 색깔로 서 있는 모습이었소. 누구는 김가였고 누구는 최가였고, 누구는 집이 섬이었고 누구는 집이 서울이었고, 누구는 대학원을 졸업했고 누구는 국민학교만 졸업했고, 누구는 자기 아버지가 국회의원이고 누구는 자기 아버지가 지게꾼이고, 누구는 자기 집에 1억의 돈이 항시 있고 누구는 집에 천원의 돈이 없을 때가 더 많고,

누구는 아주 건강하고 누구는 심장판막증이 있는 몸으로 군생활을 해 나가고 있고, 누구는 아랑드롱처럼 잘 생겼고 누구는 조○○이 처럼 못생겼고, 누구는 중령이고 누구는 이등병이고, 누구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애인이 면회를 오고 누구는 3년 내내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고, 누구는 PX에 가서 과자 사 먹기를 즐기고 누구는 짬밥 외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구는 술담배를 아주 잘 하고 누구는 전혀 못하고, 누구는 쫄병들을 잘 때리고 누구는 토옹 안 때리고, 누구는 교회나가서 기도하고 누구는 교회 나가지 않고, 누구는 본부포대에서 근무하고 누구는 C포대에서 근무하고,

누구는 군수과 서무계이고 누구는 암호병이고, 누구는 겨울을 좋아하고 누구는 여름이 오면 신나해 하고, 누구는 유격훈련에 제1호로 나갔고 누구는 때를 맞춰 휴가나 출장을 가 버렸고, 누구는 야간 보초근무 시간에 잘 졸고 누구는 그렇지 않고, 누구는 욕을 잘 하고 누구는 욕을 안 하고, 누구는 군대생활 34 개월을 하고 누구는 3개월 단축 제대를 하고, 누구는 걸핏하면 잘 울고 누구는 아무리 신경질나도 울지 않고, 누구는 대학교수를 할 예정이고 누구는 엿장수를 할 예정이고, 누구는 키가 아주 크고 누구(PX 윤○○, 3과 유○○)는 라이타돌만하고...

누구는 아니 4과 서무계 병장 김영택은 크레용의 일렬 집합 중에서 빨간색의 모습을 했다. 누구는 그 색깔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그는 그토록 정열이 있었다. 실로 조용한 아우성였었다.

15. 이 열다섯 마디의 얘기는 어느 누구의 고정관념이 될 수도 있을 것.

축하합니다. 축하. 축하합니다. 당신의 전역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ㅡ 1978.03.07 김재화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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