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일기] 뒤돌아본 지나온 길

[군대추억] 전선야곡.. 옛 노래에 얽힌 군대 시절의 단상, 1679부대 833포병대대, 대암산 아래에서 보낸 젊은 날의 추억을 그리며... (2019.11.22)

푸레택 2019. 11. 22. 14:38

 

 

 

 

 

 

 

 

 

 

 

 

 

 

 

 

 

 

● 옛 노래에 얽힌 군대 시절의 단상(斷想)

 

며칠 전 스물한 살 청년 조명섭 군이 KBS 경연 프로그램인 '트로트가 좋아'에서 부른 '신라의 달밤' 노래를 들은 이후로 명섭 군 목소리가 내 삶을 사로잡아 늪에 빠진 듯 헤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천상의 소리가 있다면 바로 이런 소리일까, 스물 한살 청년 조명섭 군의 노래를 들으니 문득 명섭 군과 같은 그 젊음의 시절, 내 젊음을 두고온 곳 그곳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노래부르던 푸른 제복의 전우들 모습이 떠오른다. 그 서럽고 고된 나날, 내게 힘이 되어주었던 전우들의 노랫소리가 기억의 저편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듯하다. 그리운 목소리는 아침 구보때마다 우렁차게 불렀던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이런 군가가 아니다. 저녁 식사 후 교육 시간, 내무반에 모여 부르던 전우들의 유행가 노랫소리다. 부대를 떠나오면서 소리쳐 불렀던 노랫소리다.

 

그 옛날 자대 배치 될 때 하던 말.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가겠다. 그래도 양구보단 나으리 했다던 그 양구! 1970년대 말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원당리. 첩첩산중 대암산 아래 한 작은 독립포병대대에서 군대생활할 때 겨울이면 왜 그리도 춥고 눈은 또 왜 그리도 많이 내리던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던 제설작업. 어느 날이었던가, 저녁 식사 후 내무반에 모여 노래자랑하던 시간, 나는 나의 애창곡을 불렀지. '과거를 묻지 마세요' 가사를 잊어버려 끝까지 다 부르지도 못 했지.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아~ 꿈에도 잊지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많고 설움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구름은 흘러가고 설움은 풀려

애달픈 가슴마다 햇빛이 솟아

고요한 저 성당에 종이 울린다

아~ 흘러간 추억마다 그립던 내 사랑아

얄궂은 운명이여 과거를 묻지 마세요

 

누군가는 '전선야곡'을 불렀고, 또 누군가는 '돌아가는 삼각지'를 불렀지. 그래 본부 행정실 김태준 전우가 '전선야곡'을 불렀었지. 지금도 너의 목소리 귀에 쟁쟁하구나. 너의 목소리 그립구나.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그 목소리 그리워

 

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에는

정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비는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오

아~ 쓸어안고 싶었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타리를 헤매도는 이 발길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 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이 노랜 병기과 박수천 전우가 불렀었지. 재수 건우 태진 혜남 상소 하영 용원 춘구 종찬 양태 김준 병덕 창근 주용 원경 춘성 광영 이성교 하사님 김대규 하사님 김창술 중사님 얼굴 모습은 또렷한데 이름은 가물가물한 본부포대 전우들 그 목소리 모두 그립구나.

 

전역 전날,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던 취사반 강재수와 이건우 전우의 손에 이끌려 우린 부대 후문 너머 번지 없는 주막 호롱불 밑에서 막걸리 한 잔에 석별의 정을, 이별주를 나누었지. 할 말은 많은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어. 오직 삼년의 세월을 침묵이 말해 주었지. 그런데 재수야, 넌 무엇이 그리 급해 먼저 갔느냐? 내게 그리움만 남겨 두고서. 그곳은 슬픔

아픔도 없는 곳이겠지? 우리가 이별주를 나누던 그 번지 없는 주막. '번지 없는 주막' 노랫소리에 너를 향한 그리움을 달래본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은 비 나리든 그 밤이 애절쿠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든 사람아

 

아주까리 초롱밑에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애절쿠려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는 길어도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

 

깨무는 이빨에는 피가 터졌소

풍지를 악물며 밤비도 우는구려

흘러가는 타관길이 여기만 아닌데

번지없는 그 술집을 왜 못잊느냐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안녕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자릴피고 청해 봐도 오지 않는 잠이여

닿지 않을 사랑이면 이 늙은이 마음 못해

잊을 수 있을까 잊을 수 없어라

검은 장갑 어울리는 마음의 사람아

 

대암산에 잔설(殘雪)이 남아있던 3월 어느 날, 세번의 겨울을 보내고 30개월 넘는 그 서럽던 군대생활을 마치던 날, 내무반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정든 전우들과 기약없는 이별을 나누고 부대 정문을 빠져 나와 버스를 탔었지. 양구선착장 가는 길에서 우린 노래를 불렀었지. 전역 동기 측지반 꺽다리 김양태 전우야, 우리가 그 길에서 눈물로 불렀던 그 노래 '삼팔선의 봄'을 기억하는가?

 

눈 녹인 산골짝에 꽃이 피누나

철조망은 녹슬고 총칼은 빛나

세월을 한탄하랴 삼팔선의 봄

싸워서 공을 세워 대장도 싫소

이등병 목숨 바쳐 고향 찾으리

 

'전선야곡'과 '처녀 뱃사공'도 함께 불렀지. "우리 이날을 잊지 말자"고 "우리 영원히 이날을 기억하자"고 했던

말, 전우는 잊지 않고 있는가? 그런데 전우야, 어느 하늘 아래 살아가는지 왜 그토록 삶의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가?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에 앙가슴을 헤치면

고요한 처녀 가슴 물결이 이네.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 보내마

어머님 그 말씀에 수줍어질 때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동병상련하던 수송부 서무계 김창근! 전역 후 우리 집에서 전역 기념 녹음을 하며 함께 불렀던 '꿈꾸는 백마강' 그 노래, 그 목소리 다시 듣고 싶소. 지금은 부산 어느 곳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가? 왜 그땐 그토록 업무가 많았던지 같은 직책 서무계 동병상련을 늘 함께 느끼며 그 힘든 와중에도 웃으며 견뎌왔건만 서울 생활 지쳐 부산 내려 간 후엔 소식 한장 없구나. 아무렴 사회생활이 군대보다 더 힘드랴?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닲으고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아래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모치는데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

그 누가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낙화암 달빛만 옛날 같구나

 

야속한 세월이 이렇게 흘러흘러만 가니 그 젊음의 시절, 청춘의 시절 생사고락 함께 했던 전우들이 그립다. 오늘처럼 함박눈이라도 내릴듯한 날이면 대암산 기슭에서 밤새 내린 눈을 치우며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시린 세월 함께 보낸 얼굴들 그 젊음의 전우들, 그 젊음의 얼굴들이 더욱더 보고 싶어진다. 지금 어느 길목에서 스쳐지나간다 한들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세월이 이렇게 흘러갔는데... 그리운 전우여~! 그대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그 때를 추억하고 있느뇨?

 

샤갈의 마을에도 눈이 내리고 이제 곧 양구 대암산에도 눈이 내리겠구나. 뜨끈뜨끈한 내무반 뻬치카에서는 살을 에는 혹한에 보초를 서고 돌아온 어느 병사가 언 손을 녹이고 있을까? 내무반도 사라지고 뻬치카도 사라졌지만 내 마음 속에는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그 젊은 날을 추억한다.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 군대시절 잊지 못할 순간들을 담은 몇 장의 사진들

 

1 일과 후 군수과 사무실에서 화기애애한 회식 모임... 신현탁 군수괴장님, 박남종 선임하사님, 김대규 하사님, 이성교 하사님, 김한수 상병님, 대대장 관사병, 서무계 일병 김영택(나)

 

2 본부포대 취사반 앞에서... 취사병 강재수, 이건우, 박존희, 김양태, 수송부 서무계 김창근 그리고 수송부 선임들과 함께. 앞줄 가운데 김영택(나)

 

3 폭설이 내린 어느 날 본부포대 연병장 제설 작업을 하며 한 장의 사진을 남기다.

 

4 본부포대 내무반에서 군수과원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위문품을 나눠 먹으며... 어느새 내가 군수과 최고참이 되었네. 이사종계 김용원, 일종계 박춘구, 부식계 안하영, 서무계 김영택(나), 공병계 남상소

 

5 전역을 앞둔 어느 날 작은 거인으로 불린 대학교 후배인 정보측지병 김준 상병과 함께... 행정실 옆에서 왼쪽 김준, 오른쪽 김영택(나)

 

6 제설 작업을 하면서 행정사무실 앞에서. 오른쪽 세번째(나)

 

7 드디어 전역하는 날이 밝았다. 기약없는 이별을 아쉬워하며... 인사과 박영근, 측지병 오기봉, 본부서무계 박영균, 군수과 서무계 김영택(나), 측지병 김양태, 병기과 서무계 송성한

 

8. 전역하는 날 군수과 식구들과 함께... 뒷줄 공병계 남상소, 선임하사님, 이성교 하사님, 서무계 김영택(나), 김용철 군수과장님, 최동호 인사과장님(전 본부포대장), 앞줄 일종계 박춘구, 이사종계 김용원, 서무계 후임 원종찬

 

9 전역 후 39년이 지난 어느 날 젊은 날의 추억을 나누고, 청계천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다. 군수과 김영택(나), 병기과 박수천, 인사과 김명수 선배님

 

 / 2019.11.22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