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2317

[이정모칼럼] 기생충의 자세 (2020.12.05)

■ 기생충의 자세 / 이정모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무능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한 가지 재주는 있는 법이라는 뜻이다. 내 재주는 화장실에 잘 가는 것이다. 그게 무슨 재주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이것은 큰 장점이다. 마다가스카르의 허름한 재래시장 공중화장실이든, 사방이 뻥 뚫려 몸 하나 감출 수 없는 고비사막이든, 실크로드 위에 있는 중국 지방도로 휴게소의 문 없는 화장실이든 가리지 않는다. 아무 데서나 편하게 배설한다는 것은 아무 것이나 잘 먹고 아무 데서나 잘 자는 것만큼이나 여행과 탐험에 있어서 뛰어난 장점이자 재주다. 화장실 잘 가는 재주는 내 본성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화장실에 잘 가지 못 했다. 냄새나 깊이 때문은 아니었다. 재래식 화장실 저..

[이정모칼럼] 우성과 열성은 없다 (2020.12.05)

■ 우성과 열성은 없다 / 이정모 나는 우성 인간인가 아니면 열성 인간인가? 자세히 따져보기도 전에 스스로를 우성 인간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과학적인 기준으로 열성 인간이라고 판정 받고 싶지는 않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이나 생명의 우열을 가리는 판단에 따라 으쓱한 마음을 갖거나 움츠러든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고 옳지도 않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을 지나면서 우리는 우성과 열성이라는 표현을 감히 입 밖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레고어 멘델의 유전법칙을 배웠기 때문이다. 멘델은 19세기에 오스트리아에 살았던 신부이자 과학교사였다. 그는 자그마치 7년 동안이나 교배하면서 얻은 2만 9,000여 개의 완두콩에 대한 형질을 조사하여 그 유명한 멘델의 유전법칙을 정리하였..

[이정모칼럼] 펭귄의 고향은 남극이 아니라 북극이다 (2020.12.05)

■ 펭귄의 고향은 남극이 아니라 북극이다 / 이정모 펭귄은 참 별난 새다. 짝짓기 철이 되면 여러 마리의 암컷이 한 마리의 수컷을 두고 경쟁하는 지상에서 몇 안 되는 생물 가운데 하나다. 추위와 도둑 갈매기의 공격으로 새끼를 잃으면 다른 어미의 새끼를 도둑질하려 든다. 새지만 몸은 무겁고 날개는 작아서 날지 못한다. 발목이 몸 안에 잠겨 있어서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다행히 헤엄은 잘 친다. 물속에 들어가면 순간 시속 48km의 속력을 낼 수 있다. 덕분에 크릴새우, 물고기, 오징어 같은 물에 사는 동물들을 잡아먹을 수 있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날쌔게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백상아리나 대왕고래(흰긴수염고래)와 마찬가지로 펭귄도 시속 8km의 속력을 유지하며 유영한다. 단거리에서 시속..

[이정모칼럼] 코끼리를 구하더니 고래를 잡는.. (2020.12.05)

■ 코끼리를 구하더니 고래를 잡는.. / 이정모 1867년 뉴욕타임스는 상아에 대한 인간들의 그칠 줄 모르는 탐욕으로 코끼리가 멸종위기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당시에는 단추, 상자, 피아노 건반에 이르기까지 코끼리 상아가 사용되었다. 가장 중요한 사용처는 당구공이었다. 당구공용 상아를 조달하다가 코끼리가 멸종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코끼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기 전에 적절한 대체재가 발견되어야 한다.” 1906년 오 헨리는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발표했다. 젊은 아내는 어느 상점에서 본 빗 세트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하지만 가난한 그녀에게는 그림의 떡.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내는 자신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팔아서 남편이 소중히 여기는 금시계에..

[이정모칼럼] 구달 박사와 덤블도어 교장 (2020.12.05)

■ 구달 박사와 덤블도어 교장 / 이정모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은은히 울리고 있는 병실. 의사는 넴뷰탈(펜토바르비탈나트륨)과 신경안정제를 혼합한 정맥주사를 혈관에 꽂힌 튜브에 주입했다. 정맥주사의 밸브는 잠긴 상태였다.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누워 있던 남자가 스스로 밸브를 열었다. 그리고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지난 5월10일 낮 12시30분 스위스 바젤의 라이프 사이클 클리닉에서 벌어진 광경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밸브를 연 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104세). 그는 안락사를 선택했다. 구달 박사가 안락사를 위해 고령에도 불구하고 호주에서 스위스까지 먼 여행을 해야 한 까닭은 호주에서는 안락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안락사는 우리나라에서..

[이정모칼럼] 웃음과 유머의 정치인 (2020.12.05)

■ 웃음과 유머의 정치인 / 이정모 내게 불타는 욕정의 눈빛을 보여준 여인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태 단 한 사람뿐이었다. 나는 그 여인을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내 육체는 여인들이 좋아할 타입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들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나처럼 작고 뚱뚱한 사람보다는 어깨가 넓고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 말이다. 잘 생긴 거야 그렇다고 쳐도 여전히 넓은 어깨와 큰 키를 선호하는 성향은 참으로 유감이고 안타깝다. 지금은 수렵채집 시대가 아니지 않는가. 여전히 구석기 시대 남성상을 갖고 있는 21세기 여성이라니… 이런 내 생각은 순전히 오해였다. 진화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단기적인 짝이 아니라 장기적인 배우자를 선택하려는 여인들에게 중요한 기준은 따로 있다. 여인들은 건장한 남..

[이정모칼럼] 참새와 비둘기 (2020.12.05)

■ 참새와 비둘기 / 이정모 몽골 민담 한 편. 초원에 살던 참새와 비둘기가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도시에 들어가기 전 숨을 고르기 위해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집 창가에 앉았다. 이때 창문 틈으로 신음하며 우는 여인의 소리가 들렸다. 비둘기가 말했다. “이 여인을 돌봐야겠어.” 그러자 참새가 대답했다. “그럴 틈이 어딨어? 나는 얼른 도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봐야겠어.” 비둘기는 병든 여인을 돌보느라 남았고 참새는 도시 건물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세상 사람이야기를 들었다. 한 달 뒤 비둘기와 참새는 다시 초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비둘기는 병든 여인의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를 잊지 못해 구구 하고 울고, 참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해하지도 못하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수..

[이정모칼럼] 세계 인구의 날에 출산율을 걱정하다니.. (2020.12.05)

■ 세계 인구의 날에 출산율을 걱정하다니 / 이정모 1987년은 뜨거웠다. 그 해 말 한국일보가 발표한 국내 10대 뉴스를 시간 순서대로 배열해 보자. 박종철 고문치사, 김만철 일가족 탈북, 6월 항쟁, 6·29선언, 노동자 대투쟁, 태풍 셀마, 오대양 집단자살, 김영삼·김대중 결별, KAL기 폭발 참사, 노태우 대통령 당선. 1987년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해서 노태우 당선으로 끝난 뜨겁고 허망한 해였다. 한국이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던 1987년 7월 11일, 지구 인구는 50억 명을 돌파했다. 풉! 50억이라니... 너무 적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는 이미 지구 인구 75억 명을 훌쩍 뛰어넘은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1987년 당시 세계인들에게 50억이라는 ..

[이정모칼럼] 피스메이커와 미세먼지 (2020.12.04)

■ 피스메이커와 미세먼지 / 이정모 1952년 12월 5일부터 엿새 동안 런던은 여느 때처럼 안개로 뒤덮였고 유난히 추웠다. 런던 사람들은 석탄을 더욱 많이 땠다. 때마침 런던의 대중교통을 전차에서 디젤 버스로 전환하는 사업도 완료됐다. 가정과 버스 그리고 화력발전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기오염물질은 안개 속에서 서서히 황산으로 변했다. 연기(smoke)와 안개(fog)가 결합하여 스모그(smog) 현상이 일어났다.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산업혁명 이후 런던에만 거대한 스모그 현상이 이미 열 번 이상 일어났다. 시민들은 산업 발전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스모그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서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도, 무대와 스크린이 보이지 않아서 연극과 영화 상영이 중단돼도..

[이정모칼럼] 에어컨 만세 (2020.12.04)

■ 에어컨 만세! / 이정모 스킨스쿠버를 처음 배울 때 가장 보고 싶은 동물이 뭐냐는 친구의 물음에 “상어”라고 대답하자 대뜸 “상어는 위험한 동물 아냐?”라는 물음이 되돌아왔다. 상어의 눈매와 몸매가 모두 무섭게 생기기는 했지만 사실 그다지 우리에게 위협적인 동물은 아니다. 1년에 상어에게 물려 죽는 사람은 채 열 명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열 명의 목숨을 가벼이 여겨서 하는 말이 아니다. 매년 초식동물인 코끼리에게 100명이 밟혀 죽고 귀엽게만 보이는 하마에게 500명이 물려 죽는 것을 생각하면, 또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개에게 물려 죽는 사람이 2만 5,000명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상어에게 희생되는 사람의 수는 얼마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상어를 겁내기보다는 상어가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