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2317

[이정모칼럼] 중성자와 인권상 (2020.12.04)

■ 중성자와 인권상 / 이정모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진다. 원자는 한 가지가 아니다. 각 원자의 종류를 원소라고 한다. 원자는 원래 ‘쪼개지지 않는다’라는 뜻을 품고 있지만 20세기 물리학자들은 원자가 핵과 전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원자핵의 정체성은 오로지 양성자에 의해 결정된다. 원소의 정체는 핵 안에 몇 개의 양성자가 들어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양성자가 하나면 수소, 두 개면 헬륨, 여섯 개면 탄소, 여덟 개면 산소라는 식이다. 원소의 정체성에 중성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중성자는 말 그대로 전하가 없는 입자다. 양성자처럼 양(+)전하를 띠거나 전자처럼 음(-)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적 존재다. 우리는 중성적 존재에게..

[이정모칼럼] 낙동강과 갠지스강 (2020.12.04)

■ 낙동강과 갠지스강 / 이정모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토요일 새벽입니다. 최윤필 기자가 한국일보에 연재하는 ‘가만한 당신’과 정희진 선생님이 한겨레신문에 연재하는 ‘정희진의 어떤 메모’를 읽는 시간이거든요. 저는 딸만 둘 있는 아빠로서 또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는 남편으로서 기본적으로 여인의 삶과 시각에 관심이 많지요. 그래서인지 두 선생님의 글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최윤필 기자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배신감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죠. 어떻게 남자가 이런 평화로운 시각에서 비롯된 고운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저는 여태 최윤필 기자가 당연히 여성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정희진 선생님 글을 읽을 때면 내 딸들이 지금보다는 더 좋은 세상에서 건강한 여인으로, 명랑한 시민으로 살 수 있을..

[이정모칼럼] 나는 병사(病死)하고 싶다 (2020.12.04)

■ 나는 병사(病死)하고 싶다 / 이정모 대한민국 박물관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자연사(自然史)가 익숙한 말이 아닌지라 많은 사람들이 “자연사박물관은 뭘 전시하는 곳이에요?”라고 묻는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자연사박물관은 사고사 또는 돌연사가 아닌 자연사(自然死)한 생명체를 전시하는 곳입니다”라고 농담처럼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는 “저도 자연사하고 싶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자연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공감미료를 극단적으로 기피하고 천연의 소재로 만든 것을 선호한다. 화학적으로 합성한 약보다는 얼마나 투여되는지 확인할 수 없는 천연약재를 비싼 값에 구입한다. 심지어 의료보..

[이정모 칼럼] 남자가 존재하는 이유 (2020.12.02)

■ 남자는 왜 존재하는가? 동물에게는 암컷과 수컷이 있고 사람에게는 여자와 남자가 있다. 수컷은 암컷과 짝짓기 하기 위해 공작처럼 과도한 장식 날개를 가지고서 매일 목숨을 건 생활을 하거나 박치기라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 봤자 지구에 살고 있는 수컷 가운데 96%는 암컷 옆에 가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선택은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인간은 대부분 짝짓기에 성공하는 운을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짝짓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갈등과 번민의 나날을 보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왜 복잡하게 암컷과 수컷이 존재하는 것일까? ‘수컷들의 육아분투기’를 쓴 일본 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암컷과 수컷이 같이 있으면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재미야말로 자연사에서 암컷과 수컷이 ..

[이정모칼럼]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 (2020.12.02)

■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 / 이정모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이 뭘까요?" 이 질문에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대답은 다양하다. 사자, 곰, 뱀, 악어처럼 포유류 아니면 파충류 이름을 댄다. 가끔가다가 살아있는 모습을 결코 본 적이 없는 공룡을 말하다가 친구들의 핀잔을 듣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중학생 이상의 청중들에게 물으면 답은 하나다. ‘사람’이 바로 그것. 어찌나 단호한지 정말 사람이 제일 위험한 동물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나쁘게 보면 되겠는가.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은 따로 있다. 날씬한 몸매에 투명한 날개와 털이 덥수룩한 다리, 털이 보송보송한 더듬이, 바늘처럼 기다란 주둥이가 특징인 이것. 몸무게는 기껏해야 2㎎. 우리 머리카락 네 가닥 무게쯤 된다. 너무도 작고 연..

[이정모칼럼] 손가락은 잊고 달만 보자 (2020.12.02)

■ 손가락은 잊고 달만 보자 / 이정모 "저 침팬지가 사람이 되려면 몇 년이나 있어야 할까요?" 동물원의 침팬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아이들은 대개 백 년, 이백 년, 천 년, 만 년, 백만 년으로 점점 커지는 숫자를 말하다가 누군가가 일억 년이라는 대답을 하면 곧 잠잠해진다. 아이들은 정말 놀랍다. 답을 맞혀서가 아니다. 침팬지는 영원히 사람이 될 수 없다. 침팬지가 진화해서 우리 인간이 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놀라운 까닭은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킬 때 손가락이 아니라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정말 놀라운 능력이다. ‘가리키기(pointing)’ 행동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급 기술이다. 다른 영장류들은 손가락질을 못 한다. 하..

[이정모칼럼] 벚꽃처럼 흐드러질 계절 (2020.12.02)

■ 벚꽃처럼 흐드러질 계절이다 / 이정모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고등학교 시절 손에서 놓지 못했던 ‘삼중당 문고’의 세 번째 책인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메밀꽃 필 무렵’의 첫 문단 마지막 구절로 기억한다. 아마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문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이 문장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며, 그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메밀꽃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저 풍경을 마음 속으로 그릴 수 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을 때 마치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아 더 읽지 못하고 한참이나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나고 지금도 숨이 막힐 듯하다. 이때 내가 생각한 형용사는 ‘흐드러..

[이정모 칼럼] 자본주의 체제 위협하는 인공지능 (2020.12.02)

■ 자본주의 체제 위협하는 인공지능 / 이정모 "이것 봐라! 기계가 사람을 이길 수는 없어. 컴퓨터가 아무리 똑똑해 봤자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지." 1996년 2월 18일 전세계 언론은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다. 그 해 2월 10일부터 17일까지 당대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와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와의 다섯 차례 체스 대국에서 3승 2무 1패로 인간이 승리했다. 나도 덩달아 두부처럼 연약한 인간의 두뇌가 반도체와 구리선으로 연결된 슈퍼컴퓨터에게 이긴 사실에 대해 자랑스러워 했으며 인체와 생명의 신비를 찬양했다. 그러나 우리의 우쭐함은 잠깐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이듬해인 1997년 5월 IBM은 딥블루를 개선한 디퍼블루(Deeper Blue)를 새로운 도전자로 내세웠..

[이정모칼럼] 인공지능 시대에 사는 법 (2020.12.02)

■ 인공지능 시대에 사는 법 / 이정모 "인간이 졌다." 지난 3월 9일 언론은 이렇게 대서특필했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연초에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우리는 코웃음을 쳤다. 적어도 올해는 이세돌이 완승한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앞으로 3월 9일은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았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편해지기 마련이다. 두 번째 판과 세 번째 판을 이세돌이 내리 지자 우리는 되레 충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나에게는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속도보다 오히려 분노와 좌절 대신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인류의 적응성이 더 놀라웠다. 여기에는 아마도 이세돌의 품성이 한몫했을 것이다. 5대 0 또는 4대 1..

[과학칼럼] 무서운 전염병, 천연두는 어떻게 정복했나? 심우 (2020.07.30)

● [KISTI과학향기] 무서운 전염병, 천연두는 어떻게 정복했나? / 심우 과학칼럼니스트 전염병은 국가적으로 큰 위기다. 현재 코로나19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가 방역에 힘쓰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전염병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조선시대 후기 한반도에는 전염성이 강하고 사망률도 높은 병이 창궐했다. 바로 천연두다. 전염병의 제왕이라고도 불리는 천연두는 19세기 후반까지 한반도에 남아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전염병의 제왕, 천연두 천연두(smallpox)는 두창, 포창이라고도 하고 속칭으로 마마 또는 손님이라고도 부른다. 천연두는 19세기 영국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접종법을 발견하기 전까지 대유행을 되풀이하며 많은 사망자를 냈다. 호흡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