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2317

[이정모칼럼] 혐오, 무식과 겁의 표현 (2020.12.06)

■ 혐오, 무식과 겁의 표현 / 이정모 ‘82년생 김지영’이 소설에 이어 영화로도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92년생과 01년생 두 딸을 둔 63년생 대한민국 남자로서 기쁜 일이다. 그 기쁨의 이면에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서려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 행동거지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적어도 내 딸은 엄마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분명히 커졌다. 세상 사람의 생각이 모두 같지는 않다. 영화가 개봉 5일 만에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앞이 캄캄해진다. (댓글을 본 내가 잘못이다. 도대체 뭘 기대했단 말인가. 이 칼럼에 대한 댓글도 보지 말아야 한다.) ‘혐오’ 그 이상의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혐오는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혐오가 생명을 ..

[이정모칼럼] 노오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2020.12.06)

■ 노오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 이정모 매년 이맘때쯤이면 짜증나는 요구와 피곤한 질문을 받는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초등학생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세요.”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만한 것에 누가 노벨상을 주겠는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업적을 잘 아는 물리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생리의학상과 화학상도 마찬가지다. 좁은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제대로 아는 것이고 전문분야가 조금만 달라져도 공부해야 설명할 수 있다. 노벨상 수상 내역을 초등학생도 알기 쉽게 설명할 방법은 없다. 성인에게도 어렵다. 첫 번째 요구를 어떻게든 들어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마지막에 피곤한 질문을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 노벨상을 받게 될까요?” 지난 15년간 단 한 번도 이 질문을 받지 않고 넘어간 해는 없다. 우리나라는..

[이정모칼럼] 스피노자의 거미 (2020.12.06)

■ 스피노자의 거미 / 이정모 나는 중고등학교와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국민윤리라는 과목을 배웠다. 도대체 윤리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고 무슨 명목으로 온 국민에게 강요했는지 모르겠지만 목표는 뚜렷했다. 반공정신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주입이다. 하지만 교육은 교과서가 아니라 교사가 하는 것인지라 선생님에 따라서는 윤리 수업이 훌륭한 철학 수업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교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학생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대부분의 고등학생에게 윤리란 가장 점수 따기 쉬운 암기과목에 불과했다. 정말이다. 공부 좀 하는 친구들은 윤리에서 한 문제라도 틀리면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비밀이 있다. ‘보기에 해당하는 철학자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에서 보기의 ㉠ ㉡ ㉢은 어떤 철학자의 사상을 나열했다. ..

[이정모칼럼] 카페인과 미국 독립전쟁 (2020.12.06)

■ 카페인과 미국 독립전쟁 / 이정모 “커피 마실래.” “카페인은 몸에 안 좋아. 그냥 홍차 마셔.” “홍차에도 카페인 있어. 녹차로 해.” 며칠 전 카페에서 목격한 대화 장면이다. 차례대로 딸-아빠-엄마의 이야기다. 카페인은 알칼로이드의 일종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염기성(알칼리)인 경우가 많다. 탄소, 수소, 산소뿐만 아니라 질소가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다. 화학물질이라면 일단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알칼로이드’란 말 자체가 무시무시하게 들릴 수 있다. 따라서 카페인도 왠지 먹으면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DNA, RNA의 주요 성분인 구아닌과 아데닌 염기와 비슷한 물질이다. 미리 얘기하자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카페인을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한다. 성인에게 독성이 일어나려면 하..

[이정모칼럼] 적도에서 방향을 잃다 (2020.12.06)

■ 적도에서 방향을 잃다 / 이정모 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자동차, 엘리베이터, 에어컨을 꼽곤 한다. 내 삶을 정말 편안하게 해 준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다들 좋지 않게 쳐다본다. 석유중독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인데. 하지만 나도 체면이 있는지라 가끔 가다가 딴 이야기를 한다. 바퀴, 종이, 나침반이라고 말이다. 나침반은 방향을 알려주는 너무나도 간단하면서도 편리한 장치다. 하지만 항해자가 아니고서야 나침반을 가지고 다닐 일은 없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라는 아주 편리한 장치가 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은 낯선 곳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낯선 곳으로 갈 때 자동차가 출발하는 순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나와 숙소로 향해야 하는데 왼쪽 ..

[이정모칼럼] 151번째 네이처 생일에 조롱을 한탄한다 (2020.12.05)

■ 151번째 네이처 생일에 조롱을 한탄한다 / 이정모 “자연! 우리는 그녀를 포위하고 포옹합니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힘이 없고, 자연을 넘어서 뚫을 힘도 없습니다. 묻거나 경고하지 않은 채 자연은 우리를 빙글빙글 도는 춤에 끌어들이고는, 우리가 피곤하여 그녀의 팔에서 떨어질 때까지 우리를 돌립니다. 자연은 항상 새로운 형태를 형성합니다. 이전에는 결코 없었던 형태입니다. 모든 것은 새롭지만 또한 항상 오래된 것입니다.” 1859년 11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꼭 10년 만인 1869년 11월 4일 영국에서 창간된 주간지 ‘네이처’의 권두언 첫머리다. 그 주인공은 독일 시인 요하네스 볼프강 괴테. 1832년에 죽은 괴테가 직접 자신의 글을 잡지에 실을 수는 없다. 생물학..

[과학칼럼] '뻐꾸기와 뱁새의 진화경쟁' 조홍섭 (2020.12.05)

■ 뻐꾸기와 뱁새의 진화경쟁 / 조홍섭 숲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리면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됐음을 실감한다. 아동문학가 윤석중은 동요 '뻐꾸기'의 노랫말을 이렇게 적었다. 뻐꾹뻐꾹 봄이 가네 뻐꾸기 소리 잘 가란 인사 복사꽃이 떨어지네 뻐꾹뻐꾹 여름 오네 뻐꾸기 소리 첫 여름 인사 잎이 새로 돋아나네 하지만 갈대밭이나 덤불에 둥지를 튼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에게 이 소리는 ‘첫 여름 인사’가 아니라 전쟁 선포처럼 끔찍하게 들릴 것이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기생행동인 ‘탁란’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새다. 탁란은 그저 남의 새끼 하나 더 기르는 부담을 넘어선다. 뱁새는 시간과 힘이 남아서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게 아니다. 알을 낳은 뒤 비바람 가려 정성껏 품어 부화시킨 뒤 부리가 닳고 깃털이 ..

[과학칼럼] '당신 몸에 얹혀사는 2킬로그램의 정체' 조홍섭 (2020.12.05)

■ 당신 몸에 얹혀사는 2킬로그램의 정체 / 조홍섭 항균비누로 깨끗이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어 구강청정제로 입안을 말끔히 가셔낸다. 혀로 느껴지는 매끈한 이와 보송보송한 피부가 더없이 깔끔하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청결해진 내 몸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살까. 수천, 수만 마리?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수치는 까무러칠 정도로 크다. 100조 마리이다. 우리 몸의 세포가 10조 개이니 그보다 10배나 많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따위의 미생물이 우리 몸에 터 잡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무게를 다 합치면 1~2킬로그램에 이른다. 체중에 신경을 쓰는 사람에게는 조금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체중계의 눈금이 가리키는 것은 실제 내 몸무게와 수많은 작은 벌레들의 무게를 합친 것이..

[과학칼럼] '새들은 어떻게 남성을 잃어버렸나' 조홍섭 (2020.12.05)

■ 새들은 어떻게 남성을 잃어버렸나 / 조홍섭 새들의 짝짓기 행동은 허무할 정도로 짧다. 수컷은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껏 춤과 노래를 뽐내고 먹이까지 갖다 바치면서 정성을 다하기도 하지만, 정작 정자를 암컷에게 전달하는 행위는 순식간에 끝난다. 이것은 새들의 독특한 해부학적 구조 때문이다. 배설과 생식기능을 나누지 않고 총배설강에서 모두 담당하는데, 새들의 교미는 암수가 총배설강을 열어 서로 접촉하고 그 순간 수컷이 사정하는 것이 전부이다. 동물 진화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의 하나는 대부분의 새 수컷에게 생식기가 없거나 아주 작게 축소됐다는 사실이다. 돌출한 생식기는 정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조류의 97퍼센트인 약 1만 종의 수컷에게서 외부 생식기가 사실상 없어진 것은 무엇..

[과학칼럼] '인류 진화의 부실 설계' 조홍섭 (2020.12.05)

■ 인류 진화의 부실 설계 / 조홍섭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을 꼽는다면 당연히 인간이다. 하지만 우리 몸을 찬찬히 뜯어보면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세계 최대 과학모임인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2013년 연례학술대회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은 분과 중 하나가 ‘인간 진화의 흉터’였다. 만일 능숙한 엔지니어에게 인간의 설계를 맡겼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실수’들이 도마에 올랐다. 크고 발달한 두뇌와 직립은 인간의 진화를 성공으로 이끈 공신이지만 그 대가도 만만치 않다. 허리 통증은 대표적인 예이다. 네 발 대신 두 발로 체중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 인간의 척추를 컵과 접시 24개를 교대로 쌓아올려 들고 가는 일에 비유한다. 척추를 S자로 휘어 균형을 유지하는 고육책을 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