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시인] 이천에서 봄비가 보내온 詩

[♤나도詩人] 못난이 인형, 어느 봄날, 라면 김동인 (2020.03.28)

푸레택 2020. 3. 28. 19:04

 

 

 

 

 

 

 

 

 

 

● 못난이 인형 / 김동인

 

나는 못난이 인형 입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 파도치는

나의 감정들이 인형을 꺼냅니다

즐거운 일이 생겼나요

노란 원피스의 웃는 못난이가

슬픈 일이 생겼어요

초록 원피스의 우는 못난이가

속상한 일이 생겼네요

빨간 원피스의 화난 못난이가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 나는

못난이 인형 입니다

빨간 원피스만은 안 입었으면

초록 원피스도 맘에 안들어요

노란 원피스만 좋아하는 나는

못난이 인형입니다

 

● 어느 봄 날 / 김동인

 

봄 햇살이 나의 이름을 부른다

나오라고 나오라고

팔랑팔랑 노랑나비는

봄이 온 걸 어찌 알고

아직 피지도 않은 꽃망울을

얄밉게 건드려 본다

작은 쑥이 발에 밟힐까

추운 겨울 땅 속에서 앓았던 감기가

이제야 나아가는구나

양지 바른 하우스 귀퉁이 작은 제비꽃

숨바꼭질 하는 너를 이제야 찿았다

하루살이 귀찮게 나만 따라다니고

따듯한 장독에는 벌써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 와 앉았다

밥상머리 그 손님 쫒으려 파리채를

들었다가 이내 나만 꾸지람을 들었다

페인트칠 한 대문이 여기저기 녹이 슬었다

태양 때문에 내리는 비 때문에

그래도 누구에게 잘못을 물을 순 없다

세월이 야속하던가

일곱 살 때 열고 닫던 양철 쪽문 기둥은

나무인 탓에 좀 먹고 썪었으니

고쳐야 하건만, 손 때 묻은 그리움은

그냥 두라고 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

또 십년이면 내 고향 못 알아 볼까

굽 낮은 신발을 찿는 걸 보니

장독대 파리가 덜 미워진다

고무줄 놀이 하던 흙은 그대로인데

내 인생은 떠도는 구름 같구나

 

● 라면 / 김동인

 

배가 고픈걸 어떻게 참아

과자 부스러기를 찿다가

라면물을 가스렌지에 올려놓는다

후루룩 후루룩 쩝쩝

서민 음식 라면 고맙다

친구같이 늘 옆에 나와

함께 살아온 착한 라면

주머니가 얇아도 부담없는

한끼 해결사 마법사

라면 안 먹어 본 사람 있을까?

지금까지 몇봉이나 먹었을까?

나는 지금 44살이다

나의 아들에게 착한 라면을

소개했다 맛있게 끓여서

당부했다 너무 좋아하진 마

파송송 계란 하나 영양가를 높이고

염분 섭취 줄여 고기도 한 점 얹고

하지만 너무 좋아하진 마

젓가락이 또 간다

배가 고프다 물을 얹는다

당부한 말

너무 좋아하진 마

라면은 그렇게 친구가 됐다

 

/ 봄비 김동인, 이천에서 보내온 詩 (202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