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시인] 이천에서 봄비가 보내온 詩

[나도詩人] 회상, 작은 여유 김동인 (2020.05.16)

푸레택 2020. 5. 16. 16:07

 

 

 

 

 

● 회상 / 김동인

 

한 장의 빛바랜 사진 속에서

그 시절 그 때의 냄새가 난다

누군가의 파스텔색 옷감에서

달리는 23번 버스 안에서

버리지 못한 낡은 카세트 테이프에서

그 시절 그 때의 냄새가 난다

마음이 아려오고 눈가는 촉촉해 온다

이른 봄 아지랑이 피어오르 듯

가슴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옛 기억들이 한 장 한 장 피어오른다

진한 그리움은 옛 향수를 불러오고

짧은 순간 나는 타임머신을 탄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내 눈 앞에 만질 수 없는 회상들이

돌아갈 수 없는 그 곳 그 기억 속으로

나를 잠시 데려다 놓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

타임머신은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현실이 나를 툭툭 건드려 깨운다

오래도록 맡고 싶었던 그 향기가

눈 앞에서 사라진다 그리운 기억들

나의 세포 어딘가에 깊숙히 인 박힌

그 향기 그 기억 그리고 그리움들

우연히 보다가 걷다가 지금처럼

나와 다시 만나 주길

오래도록 향기로 남아주길

 

● 작은 여유 / 김동인

 

터벅터벅 퇴근길 무거운 발걸음

저 멀리 우리 집이 보인다

나는 걸음을 좀 더 재촉해 본다

숨이 차오르고 등에 땀이 맺힌다

우연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고데마리 꽃나무에 꽃이 피어있다

초록잎 사이로 작은 꽃들이 보인다

여기에 꽃나무가 있었구나

초록 담쟁이 넝쿨도 보인다

멋스럽고 울창한 잎들이 엉켜

담벼락을 가득 감싸고 있다

며칠 전 내린 봄비에 훌쩍 컸나

퇴근길 발걸음은 느려지고

나에게 잠시 여유를 허락한다

이 길이 어제와 변한 건 없지만

오늘이 어제와 다른 건

내 마음에 작은 여유가 찾아온 것이다

발걸음이 힘겨울 땐 잠시 옆을 보자

나에게 작은 여유를 허락할 때

고데마리 꽃은 내 마음에 들어왔다

 

/ 2020.05.16 이천에서 봄비 김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