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감나무가 있는 동네 이오덕, 오월이 돌아오면 신석정, 오월의 그늘 김현승 (2019.04.03)

푸레택 2019. 4. 3. 05:44

 

 

 

 

 

 

 

 

 

 

 

 

 

 

● 감나무 있는 동네 / 이오덕

 

어머니,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연둣빛 잎사귀

눈부신 뜰마다

햇빛이 샘물처럼

고여 넘치면

 

철쭉꽃 지는 언덕

진종일 뻐꾸기 소리

들려오고

 

마을 한쪽 조그만 초가

먼 하늘 바라뵈는 우리 집

뜰에 앉아

 

어디서 풍겨 오는

찔레꽃 향기 마시며

어머니는 나물을 다듬고

나는 앞밭에서 김을 매다가

돌아와 흰 염소의 젖을

짜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짙푸른 그늘에서 땀을 닦고

싱싱한 열매를 쳐다보며 살아갈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가지마다 주홍빛으로 물든 감들이

들려줄 먼 날의 이야기와

단풍 든 잎을 주우며, 그 아름다운 잎을 주우며

불러야 할 노래가 저 푸른 하늘에

남아 있을 것을

어머니, 아직은 잊어버려도 즐겁습니다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어머니!

 

(이오덕·아동문학가, 1925-2003)

 

● 오월이 돌아오면 / 신석정

 

오월이 돌아오면

내게서는 제법 식물 내음새가 난다

 

그대로 흙에다 내버리면

푸른 싹이 사지에서 금시 돋을 법도 하구나

 

오월이 돌아오면

제발 식물성으로 변질을 하여라

 

아무리 그늘이 음산하여도

모가지서부터 푸른 싹은 밝은 방향으로 햇볕을 찾으리라

 

오월이 돌아오면

혈맥은 그대로 푸른 엽맥(葉脈)이 되어라

 

심장에는 흥건한 엽록소(葉綠素)를 지니고

하늘을 우러러 한 그루 푸른 나무로 하고 살자

 

(신석정·시인, 1907-1974, 1939년 작품)

 

● 오월의 그늘 / 김현승

 

그늘,

밝음을 너는 이렇게도 말하는구나

나도 기쁠 때는 눈물에 젖는다.

 

그늘,

밝음에 너는 옷을 입혔구나

우리도 일일이 형상을 들어

때로는 진리를 이야기한다.

 

이 밝음, 이 빛은

채울 대로 가득히 채우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구나

그늘―너에게서…

 

내 아버지의 집

풍성한 대지의 원탁마다

그늘,

오월의 새 술들 가득 부어라!

 

이팝나무―네 이름 아래

나의 고단한 꿈을 한때나마 쉬어 가리니

 

(김현승·시인, 1913-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