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명시감상] '겨울 일기-함박눈' 목필균,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도종환​ (2020.12.18)

■ 겨울 일기-함박눈 / 목필균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은 온통 은빛 속에 있습니다 깃털로 내려앉은 하얀 세상 먼 하늘 전설을 물고 하염없이 눈이 내립니다 오늘 같은 날에는 같은 기억을 간직한 사람과 따끈한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다면 예쁜 추억 다 꺼내질 것 같습니다 하얀 눈 속에 돋아난 기억 위로 다시 수북히 눈 쌓이면 다시 길을 내며 나눌 이야기들 오늘 같은 날에는 가슴으로 녹아드는 눈 맞으며 보고싶은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

[명시감상] '나무들' 조이스 킬머, '나무의 꿈' 인디안 수니 노래 (2020.12.16)

■ 나무의 꿈 / 인디언 수니 초록별 뜬 푸른 언덕에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딱따구리 옆구리를 쪼아도 벌레들 잎사귀를 갉아도 바람이 긴 머리 크러놓아도 아랑곳없이 그저 묵묵히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아름드리 어엿한 나무가 만개한 꽃처럼 날개처럼 너를 품고 너희들 품고 여우비 그치고 눈썹달 뜬 밤 가지 끝 열어 어린 새에게 밤 하늘을 보여주고 북두칠성 고래별 자리 나무 끝에 쉬어 가곤 했지 새파란 별똥 누다 가곤 했지 찬찬히 숲이 되고 싶었지 다람쥐 굶지 않는 넉넉한 숲 기대고 싶었지 아껴주면서 함께 살고 싶었지 보석 같은 꿈 한 줌 꺼내어 소색거리며 일렁거리며 오래 오래 안개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youtu.be/U..

[사색의향기] '겨울나무를 보며' 백승훈 (2020.12.16)

♤ "'스테이 스트롱(Stay Strong)' 캠페인이 펼쳐진다는 뉴스를 보았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에서 '지치지 않고 함께 힘을 내자'는 캠페인이라고 한다. 한 자리에 붙박인 채 추운 겨울을 견디는 겨울나무처럼 우리 모두 이 힘든 계절을 건너가야겠다. 나무들이 겨울눈을 간직하고 봄을 기다리듯 가슴엔 희망을 품고." ■ 겨울나무를 보며 / 백승훈 시인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겨울'을 맞고 있다. 일찍 찾아든 추위와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덩달아 사람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붙고 있다. 거리두기 강화로 상점들은 일찍 문을 닫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른다.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접어들면서 휘황한 불빛 속에 한창 흥청거려야 할 도시의 밤거리에도 찬바람만 휑하니..

[사색의향기] '12월의 산길에서' 백승훈 (2020.12.16)

♤ "만약 새해의 희망이 없다면 12월은 암울한 절망의 끝일뿐이겠지만 추운 겨울이 따뜻한 봄을 품고 있듯이 12월은 언제나 새해로 향해 있다. 억수처럼 퍼붓던 여름날 소나기도,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 눈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치게 마련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꿈을 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겨울 숲은 얼핏 잠든 듯하지만, 우리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꿈꾸는 법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 12월의 산길에서 / 백승훈 시인 첫눈보다 먼저 12월이 왔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 되면 세월의 물살도 여울져 흐르며 마음엔 알 수 없는 조급증이 인다. 그래서일까. 해마다 12월이 되면 약속도 많고 모임도 많았다. 하지만 올겨울만큼은 유난히 춥고 고독한 겨울이 될 것 같다. 겨울로 접어들..

[사색의향기] '모과 한 알' 백승훈 (2020.12.16)

♤ "모과나 사람이나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그 존재에 대한 무례이자 본질을 보지 못하는 스스로의 우매함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모과 한 알이 익기까지에는 봄날의 햇빛과 바람, 비바람 몰아치던 천둥 번개의 날들이 들어 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못생겼다고 함부로 말하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을 터.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는 노랫말이 있다. 나도 모과처럼 향기롭게 익어가고 싶다." ■ 모과 한 알 / 백승훈 시인 겨울비 지나간 뒤 나무들이 단출해졌다. 황금빛으로 물든 이파리를 자랑하던 은행나무도, 울긋불긋 물든 이파리를 무시로 뿌려대던 벚나무도 모든 잎을 내려놓고 한결같이 묵언수행 하는 수도자처럼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많던 이파리들을 남김없이 떨쳐내고 묵상에 잠긴..

[사색의향기] '용문산 은행나무길을 걷다' 백승훈 (2020.12.16)

♤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 자연은 아름답다. 두 다리가 성한 이상 나는 또 걸을 것이다. 때로는 나무를 만나기 위해, 때로는 숲을 찾아 걸으며 새로운 풍경들을 만날 것이다. 절집보다 유명한 용문사 은행나무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해마다 새잎을 피우고 열매를 내어달듯이 나는 두 다리가 성한 이상 걷고 또 걸으며 자연을 오감으로 오롯이 느낄 것이다. 꽃을 보고도 기뻐할 줄 모르고, 숲속을 걸으면서도 맑은 생각을 할 수 없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인생인가." ■ 용문산 은행나무길을 걷다 / 백승훈 시인 마침내 그 나무 아래 도착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며 시 한 편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반칠환 시인의 시 ‘새해 첫날’이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

[시조감상] '묏버들 갈해 것거' 홍랑,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이화우 흩뿌릴 제' 계랑 (2020.12.16)

■ 묏버들 갈해 것거 / 홍랑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디 자시는 창(窓)밧긔 심거 두고 보쇼서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서 [현대어 풀이] 산의 버들가지 골라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이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이해와 감상] 1 홍랑의 시조에서 묏 버들은 님을 향한 화자(홍랑)의 마음, 그리움의 사랑이다. 따라서 해가 바뀌고 봄이 되어 새로 잎이 나거든 그 새로 돋은 버들잎을 보면서 나라고 생각해 달라고 소망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닙'의 의미는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새록새록 돋아나는 님을 향한 화자의 마음을 의미한다. 님을 잊지 못하고 그리는 절절한 여심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2 홍랑이 친하게 연분을 나눈 고죽(孤竹) 최경창이 ..

[명시감상] '사평역에서', '들쑥에게', '받들어 꽃' 곽재구 (2020.12.15)

● 사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속에서 샤륵샤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

[사색의향기] '단풍나무 숲길에서' 백승훈 (2020.12.15)

♤ "가을 산을 가장 곱게 수놓는 단풍나무는 세계적으로 약 110여 종에 이를 만큼 매우 다양하다. 우리나라에도 15종의 단풍나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신나무, 고로쇠나무, 시닥나무, 단풍나무, 홍단풍, 당단풍, 복자기, 중국단풍, 섬단풍 등이다. 그 중에도 가을 산을 아름답게 수놓는 단풍의 주역은 진짜 단풍나무와 당단풍이다. 진짜 단풍나무는 잎이 5~7개로 깊게 갈라져 있고 당단풍은 잎이 좀 더 크고 가장자리가 덜 깊게 갈라지며 그 수도 9~11개로 더 많다. 애기단풍은 잎의 크기가 작게는 어른 엄지 손톱만한 것부터 크게는 아이 손바닥만 한 것까지 작고 귀여워 붙여진 이름으로 단풍나무의 종류가 아닌 별칭이다." ■ 단풍나무 숲길에서 / 백승훈 시인 목하 가을이 상영 중이다. 사각의 창 너머로 보이는 초..

[사색의향기] '잎이 진다고 바람을 탓하랴' 백승훈 (2020.12.15)

♤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그 때가 좋은 때다/ 그 때가 때 묻지 않은 때다/낙엽은 울고 싶어 하는 것을/ 울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편지에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엽을 간직하는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새로운 낙엽을 집을 줄 아는 사람은/기억을 새롭게 갖고 싶은 사람이다” ㅡ 이생진의 ‘낙엽’ ■ 잎이 진다고 바람을 탓하랴 / 백승훈 시인 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변의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든 이파리들을 뭉턱뭉턱 내려놓는다. 거리에 색종이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낙엽들을 보면 마치 축제가 끝난 행사장 같아 가슴 한편이 휑하다. 물든 잎을 내려놓고 허룩해진 나무들을 바라볼 때면 마치 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