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시조감상] '묏버들 갈해 것거' 홍랑,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이화우 흩뿌릴 제' 계랑 (2020.12.16)

푸레택 2020. 12. 16. 11:09








■ 묏버들 갈해 것거 / 홍랑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디 
자시는 창(窓)밧긔 심거 두고 보쇼서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서

[현대어 풀이]

산의 버들가지 골라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이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이해와 감상]

1
홍랑의 시조에서 묏 버들은 님을 향한 화자(홍랑)의 마음, 그리움의 사랑이다. 따라서 해가 바뀌고 봄이 되어 새로 잎이 나거든 그 새로 돋은 버들잎을 보면서 나라고 생각해 달라고 소망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닙'의 의미는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새록새록 돋아나는 님을 향한 화자의 마음을 의미한다. 님을 잊지 못하고 그리는 절절한 여심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2
홍랑이 친하게 연분을 나눈 고죽(孤竹) 최경창이 북해 평사(評事)로 경성에 상경하게 되자, 그를 영흥까지 배웅하고 함관령에 이르러 해 저문날 비를 맞으며 버들가지와 이 시조를 지어 건네주었다고 한다. 초장의 '묏버들'은 임에게로 향한 작자의 순수하고 청아한 마음의 표시이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버들가지에 새잎이 돋아나듯, 자신을 기억하며 그리워해 달라는 작자의 아쉬움이 애틋하게 나타나 있다. 임에게 바치는 지순한 사랑을 '묏버들'로 구상화시켜, 비록 몸은 서로 먼 거리로 떨어져 있지만, 임에게 바치는 순정은 저 '묏버들’처럼 항상 임의 곁에 있겠다는, 그러면서도 임은 나 이외의 여인에게 한눈을 팔지 말라는 부탁이 깃들어 있다. 즉 '묏버들'은 화자의 분신인 것이다.

3
당시 사회제도에서 이 둘의 사랑은 결코 지속되거나 발전적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시조 속 화자는 사랑하는 임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묏버들 가지를 꺾어 임이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밤비에 창 밖에 심은 버들가지에 새 잎이 나면 화자 자신으로 여기고 그리워해주길 염원한다. 따라서 이것은 그 사랑의 불변성에 대한 믿음과 애정의 탐닉에 몰입하는 여성의 서정적 탐미의 전형성을 제시한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중장에서 화자는 묏버들을 방 안이 아닌 창 밖에 두고 보라고 하고 있다. 기녀의 신분으로서 사대부인 임을 잡을 수도, 창 안으로 들어가 함께 할 수도 없는 현실적 비애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장을 보면 화자는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화자는 버들가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버들가지에서 새 잎이 나듯이 자신의 사랑도 새롭게 피어나길 소망한다. 임과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신분적 한계에 의한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비극적 서정을 화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임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는 절의정신을 지닌 여성상을 형상화함으로써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 동짓달 기나긴 밤을 / 황진이 (黃眞伊)

동지(冬至)ᄉ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현대어 풀이]

1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가운데를 베어 내여
봄바람처럼 향긋하고 따스한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사랑하는 임께서 오시는 밤이 되면 구비구비 펴리라

2
동짓달의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둘로 나누어서
따뜻한 이불 아래에 서리서리 간직해 두었다가
정든 임이 오시는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서 더디게 밤을 새리라.

[이해와 감상]

1
기녀 시조의 본격화를 이루었고, 시조 문학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황진이의 절창 중의 하나이다. 임이 오시지 않는 동짓달의 기나긴 밤을 외로이 홀로 지내는 여인의 마음이, 임이 오시는 짧은 봄밤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동짓달의 기나긴 밤을 보관해 두자는 기발한 착상을 하기에 이른다. 또한 중장과 종장에서는 ‘서리서리’, ‘구뷔구뷔’와 같은 의태어를 사용하여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을 매우 효과적을 나타낼 수가 있었다. 혼자 임을 기다리며 지내야 하는 긴 ‘겨울밤’과 낮이 길어 임과 함께 하는 밤이 짧은 ‘봄’이 서로 대조가 되어, 임과 오래 있고 싶은 화자의 심정이 잘 묘사되어 나타난다. 문학성을 띤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예술적 향취를 풍기는 작품으로, 기교적이면서도 애틋한 정념이 잘 나타나 있다.

2
뜬구름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 부운거사를 기다려도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가을에 떠나 동짓달이 되어도 무심하니 화무십일홍같은 생명일망정 낙엽처럼 쌓인 정을 잊지 못하고, 아랫목에 깔아 둔 이불 속에서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찾아주겠지 하는 수동적인 처지에서 사랑을 기다리는 한국적 토속성이 섬세한 여성의 감정에서 애절히 풍기고 있다. 버리고 가는 임이 한없이 밉기는 하지만 그래도 염려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 한국 여성만이 가지는 사랑이다. 은근하고 양보적이며 백의여성의 진실하고도 소박한 애정이 아주 잘 나타나 있는 노래이다.
 
■ 이화우 흩뿌릴 제 / 계랑(桂娘)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千里)에 외로온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이화우(梨花雨) : 비가 오는 것처럼 떨어지는 배꽃

[현대어 풀이]

배꽃이 흩날리던 때에 손 잡고 울며 불며 헤어진 임
가을 바람에 낙엽 지는 것을 보며 나를 생각하여 주실까?
천 리 길 머나먼 곳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이해와 감상]

1
이 시조는 전북 부안의 명기(名妓) 계랑이 한 번 떠난 후 소식이 없는 정든 임 유희경(劉希慶)을 그리워하여 지은 작품이다.

이화우(梨花雨)와 추풍낙엽(秋風落葉)을 대비시켜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고 임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심정을 고조시켰다. '천리에 외로운 꿈'은 끝내 잊을 수 없는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상한 것이다. 결국 작자는 이 작품을 지은 이후 수절(守節)했다고 한다.

2
임과 헤어진 뒤의 시간적 거리감과 임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공간적 거리감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으로 초장은 봄바람에 배꽃이 떨어지듯 이별한 임에 대해 직설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중장에서는 임과의 이별 뒤 무심하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가을이 되었고, 임을 그리워하는 자신처럼 임도 자신을 생각하고 있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드러나 있다. 초장의 '이화우(봄)'와 중장의 '추풍낙엽(가을)'은 서로 대비되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임과 헤어져 있는 시간적 거리뿐만 아니라, '이화우'와 '추풍 낙엽'의 이미지가 작품을 아름답고 슬프게 채색하고 있다. 화자의 슬픈 마음을 강하게 드러내 보이는 역할을 한다. 종장의 '천 리'는 공간적 거리감만이 아니라 이별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며, '외로운 꿈'은 임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배꽃이 비처럼 흩날릴 때의 이별의 안타까움, 낙엽 지는 가을날에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 멀리 떨어져 있는 임과의 재회에 대한 염원 등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냈다.

/ 2020.12.16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