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할 때를 아는 것도 쓸쓸한 행복이다
하늘이 높아지자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들판의 저녁 일곱 시는 황홀한 황혼 길이다. 주변에 나무와 풀꽃이 있는 방죽길을 걷는다. 아직은 아름다운가. 걸을 만한가. 가을이라는 무대를 그림처럼 걷다보니 순식간에 지나간다. 때로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엑스트라가 되기도 했던 무대 위에서 순식간에 내려온 느낌이다. 가을 저녁이 금방 으스스해진다. 다방에서 만난 왕년의 가수는 나를 보는 것 같다. 한 시절 화려한 무대에서 조명 받던 일들이 한물 간 이곳 시골까지 밀려와 초라하게 떨고 있다. 세월 지나가듯 모든 일이 지나간 것이다. 쓸쓸한 가을 무대에서 돌아보니 봄도 여름무대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만 확인된다. 왕년이라니… 이런 말은 벌써 과거에 묻힌 것이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아름다웠다는 말도 벌써 추억 속에서 행복할 뿐이다. 말없이 가야 하는 일만 남은 분위기에 휩싸인다. 가을이 실종되었다는 말이 혼자 입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배준석(시인ㆍ문학이후 주간)
/ 2022.03.16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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