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을 뒤돌아 본다 - 시인 임영석:강원경제신문 (gwbiz.kr)
나의 생을 뒤돌아 본다 - 시인 임영석
전업 작가로 첫발을 뗀 시인 임영석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글
연분홍 표지에 화살을 들고 있는 나체의 여인, 그리고 달을 휘어 놓은 모습, 그 모습을 표지 그림으로 하여 1984년 가을 시림문학 동인지 창간호 『原始林』이 세상에 나왔다. 참여 동인은 임영봉, 임영석, 신배승, 이성룡 4인이었으며, 초대시인으로 조남익, 김환식, 라광일 시인이었다. 당시 나는 무슨 용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계간 『현대시조』 초회 추천을 받으며 본의 아닌 시림 문학 회장이라는 것을 떠안게 되었다. 20대 초반의 기세 좋은 젊은이들이 세상을 향해 시를 쓰겠노라고 출발을 알렸다.
사실 시림 문학은 1980년 금산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던 문학동아리 형태의 모임이었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던 나를 위해서 대폭 문호를 개방하고 금산이라는 지역에서 1984년 당시 파격적으로 동인지 발간이라는 무모한 행동을 하였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금산에서 그 명맥을 뿌리내리고 활동을 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함께 출발한 네 명의 동인의 활동을 살펴보면 임영석이 1985년 『현대시조』를 통하여 등단했고, 1990년 임영봉 형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신배승 동인이 2001년 시집 『그대 또한 한 개 섬이다』를 출간하여 시단에 이름을 올렸다. 1986년부터 2017년까지 안용산 김선주, 정선균, 길일기, 김종윤 등 14명의 동인이 33년의 역사를 함께해 왔다.
30년 넘게 금산을 떠나 살면서도 동인 활동을 함께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고향에 대한 끝없는 문학적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0년 좌도시 30주년 시선집은 그간 동인들의 대표 작품을 선하여 발간한 시선집 『참 잘 놀았지?』와 함께 나도 잘 놀았던 좌도시를 2013년 떠나왔다. 더는 고향을 떠나 살면서 문학적 열정을 고향에 다하지 못하는 반성과 함께 새로운 문학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선인장
내 발목의 뼈가 삐긋 어긋나
열 몇 대의 침(針)을 맞았는데
화분에 심어진 선인장을 보니
얼마나 뼈가 어긋나 있으면
온몸에 침을 칭칭 맞고 살아갈까
저 선인장 이 세상 고통을 짐지고 꽃이 피니
그 마음 하느님, 아니면 부처님 같다
1985년 이후 대전의 『오늘의 문학』과 『시도』라는 동인에 5~6년 참여를 하며 작품 활동을 함께 하였다. 1987년 안양에서 직장에 취직하고 안양지역의 동인지 『낙엽 문학』에서 배준석, 김기택 등의 시인과 함께 짧지만 함께 만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1990년 원주로 오기 전까지 문학적 열정을 불태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원주로 이사를 와 살면서 문학 활동에 있어 철저히 고립되었다. 함께 문학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할 친구며 지향하는 문학적 동지를 찾지 못했다. 또한, 1992년 시집을 발간하고 2006년 시집을 발간하기까지 개인적으로도 많은 시련을 겪으며 삶을 살았던 시간이었다. 14년의 공백을 깨고 나는 시집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를 고 김충규 시인이 출판을 담당했던 《문학의 전당》에서 출간했다. 이 시기에 원주 문협에 잠시 활동을 하였지만 내 취향의 활동은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홀로서기를 시도하였다. 나는 이 시기에 시를 쓰는 게 유일한 즐거움의 하나로 삶을 버텨 낸 것이었다.
지성찬 선생님께서 계간 『스토리 문학』 주간을 맡아 일하면서 선생님께서 나에게 부주간을 맡아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해와 1985년 이어졌던 문학적 인연이 복원되었다. 지성찬 선생님은 이우종 선생님께서 현대시조시인협회 회장을 맡았을 당시 사무국장 일을 하셨다. 이우종 선생님은 1987년 나의 결혼 주례까지 봐 주셨다. 나는 지금까지 스토리 문학 부주간을 맡아 좋은 작품을 쓰고자 하는 많은 시인에게 청탁하여 문학의 저변 확대 및 스토리 문학 발행인 김순진, 주간 지성찬, 부주간 임영석, 권순진, 편집장 전하라 시인 등과 함께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문학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1년 백이운 선생께서 발행하는 시조 전문지 『시조 세계』에서 주관하는 제1회 시조 세계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있었고, 2008년에는 한국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예지 발표 좋은 시에 시조 「풍경이 운다」가 선정이 되고, 시선사에서 시조집 『배경』을 발간하였다. 이때 광주의 이재창 교수가 시조집 해설을 써 주었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 부분에 창작기금을 지원받아 시집 『고래 발자국』을 발간한다. 이 시집에 원주에서 사시는 고진하 시인께서 해설을 써 주셨고, 2012년 강원문화재단 시조 부분 창작기금을 받게 되어 시조집 『초승달을 보며』를 발간한다. 이때 유종인 시인이 해설을 써 주었다. 스토리 문학에 10여 년 연재를 해왔던 시론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을 문학공원 계획 시리즈로 2016년 발간하였고, 2016년 강원문화재단 시 부분 창작기금을 지원받아 시집 『받아쓰기』를 발간하였다. 「받아쓰기」 시집으로 제6회 스토리 문학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작에 전념하고자 다니던 직장을 희망퇴직하고 글 쓰는 노동자로 첫발을 내딛게 된다. 아직 글 쓰는 노동자 생활이 서툴기만 하다.
문학은 철저하게 개인의 공간이다. 그 공간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은 작품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나는 그간 철저하게 내 삶에서 문학이라는 섬에 고립이 되어 살았다. 작품을 발표하는 방법 외에는 그 고립의 섬을 떠날 수 없었다. 인생에서도 이혼이라는 이별을 겪었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아들의 가슴 한편에 많은 것을 텅 비게 해준 아픔이 가장 미안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들도 결혼하였고 나도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향해 다시 걸어가고 있다.
문학이라는 외롭고 힘든 협곡을 걸어오면서 많은 부분을 잃었다. 창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친구와의 교류가 뜸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부분을 내 가슴속의 상처로 남겨야 했다. 하지만 그 상처들은 나를 내 안에서 썩어 문드러지지 않게 파도처럼 내 속을 뒤집어 놓는 역할이었다. 그렇다고 세상과 등질 수 없는 삶에서 세상을 향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사명도 있었다. 〈한결 추천 시 메일〉을 매일 써서 많은 독자와 시인에게 보내주었고 네이버 〈한결 더 좋은 세상〉 블로그에 3,600여 회 저장해 놓고 일반 인터넷 독자들이 찾아와 읽게 하고 있다.
희망퇴직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일하고 퇴직을 하신 분들이 취미활동과 여가 활동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시를 읽게 하여 시 속에서 살아온 삶을 함께 공감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원주 신문에 2017년 4월부터 〈세상의 자막들〉이란 칼럼을 기고하고 있고, 원주 교차로에는 주 1회 〈임영석 시인과 쉽게 읽는 시〉를 해설을 곁들여 인터넷 활용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시를 읽고 삶을 공감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8권의 시집과 1권의 시론집을 통해 33년 동안 세상을 향해 내 목소리를 내 왔다. 「참새」, 「파도」,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 「받아쓰기」 「초승달을 보며」 등의 작품은 고립된 내 몸에서 탈출을 시도한 작품들이다. 한 달에 한두 번 산을 오른다. 오를 때마다 정상에 있는 시간은 몇 분 되지 않았다. 우리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일반 독자들이 시를 쓰지는 못하더라도 좋은 시를 읽고 함께 공감하고 고립된 삶에서 시를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는 그런 노력을 해 주려고 한다. 나를 내 삶의 고립에서 즐거움을 주었던 몇 편 시를 읽으며 내가 살아온 시간을 뒤돌아보는 마음을 접는다.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
거미는 밤마다 어둠을 끌어다가
나뭇가지에 묶는다 하루 이틀
묶어 본 솜씨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어둠을 묶어 놓겠다고
거미줄을 풀어 나뭇가지에 묶는다
어둠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나뭇가지가 휘어져도
그 휘어진 나뭇가지에 어둠을 또 묶는다
묶인 어둠 속에서 별들이 떠오른다
거미가 어둠을 꽁꽁 묶어 놓아야
그 어둠 속으로 별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거미가 수천 년 동안 어둠을 묶어 온 사연만큼
나뭇가지가 남쪽으로 늘어져 있는 사연이
궁금해졌다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따뜻한 남쪽으로 별들이 떠오르게
너무 많은 어둠을 남쪽으로만 묶었던
거미의 습관 때문에 나무도 남쪽으로만
나뭇가지를 키워 왔는가보다 이젠 모든 것이
혼자서도 어둠을 묶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수천 년 동안 거미가 가르친
어둠을 묶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리라
거미는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뜨는 것을
가장 먼저 알고 있었나 보다
참새
참새는 제가 살 집은 짓지 않는다
집을 지어도 제 새끼를 키우기 위한 것으로
마지막 지붕은 제 몸을 얹어 완성한다
제 새끼에게 어미의 온기만 주겠다는 것이다
머리 위 은하수 별빛을 맘대로 바라보고
포롱 포로롱 하늘을 날아가는 꿈을 주고 있다
참새는 제 자식에게 다른 욕망은 가르치지 않는다
제 몸을 얹어 집을 완성하는 지극한 사랑
그 하나만 짹짹짹 가르치고 있다
받아쓰기
내가 아무리 받아쓰기를 잘해도
그것은 상식의 선을 넘지 않는다
백일홍을 받아쓴다고
백일홍 꽃을 다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받아쓴다고
사랑을 모두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받아쓴다는 것은
말을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일 뿐,
나는 말의 참뜻을 받아쓰지 못한다.
나무며 풀, 꽃들이 받아쓰는 햇빛의 말
각각 다르게 받아써도
저마다 똑같은 말만 받아쓰고 있다
만일, 선생님이 똑같은 말을 불러주고
아이들이 각각 다른 말을 받아쓴다면
선생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햇빛의 참말을 받아쓰는 나무며 풀, 꽃들을 보며
나이 오십에 나도 받아쓰기 공부를 다시 한다
환히 들여다보이는 말 말고
받침 하나 넣고 빼는 말 말고
모과나무가 받아 쓴 모과 향처럼
살구나무가 받아 쓴 살구 맛처럼
그런 말을 배워 받아쓰고 싶다
글=임영석ㅣ강원경제신문 2017.06.08
/ 2022.03.16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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