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노래 가득한 여름날에
텃밭에 호박 오이 토마토 콩 옥수수 등을 소꿉장난처럼 심었다. 생각으로는 주렁주렁 열린 호박을 따서 여기저기 자랑스럽게 땀 흘린 이야기 섞으며 나눠 주고 싶은데 얼치기 농부라는 것을 뻔히 안다는 듯 비실비실 자라는 모양새가 시원치 않다. 거기다 제초제나 농약을 뿌리지 않아 풀과 벌레들이 어느 틈에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명아주 쇠비름 바랭이 환삼덩굴, 이름도 다 꼽기 어려운 풀들은 뽑고 뒤돌아서면 어느새 또 끈질기게 자라 그만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한다. 농사는 풀과의 싸움이다. 전쟁이다. 그래도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것은 자연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풀들과 싸우다 가만 다시 보니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기 그지없다. 명아주는 지팡이 만드는 데 쓰이고 쇠비름은 오메가3가 많다고 하고 환삼덩굴은 당초 문양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문양이 없겠다 싶다. 그래서 쓸데없는 잡초라는 말 대신 시적인 풀잎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풀잎, 풀잎…, 풀잎으로 바꿔 부르자 풀잎들이 나에게 와서 시 한 구절이 되고 이렇게 풀잎이라는 시 한편도 떠오르게 해 준다.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호박잎 사이사이로 풀잎들이 흔들린다고 굳이 탓할 것인가. 힘들게 풀 뽑는 대신 호박 오이 옆에 거름 한 줌씩 더 보탰다.
배준석(시인ㆍ문학이후 주간)
/ 2022.03.12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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