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풀꽃이름] 처녀치마, 얼레지, 앉은부채, 미치광이풀, 쥐꼬리망초

푸레택 2022. 1. 29. 10:59

[풀꽃이름] 처녀치마 / 임소영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이곳 아가씨들은 추운 겨울에 왜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느냐고 자주 묻는다. 건강에도 나쁜데 왜 그러냐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을 때면 그럴듯한 답변을 하기가 어렵다. 이와 함께 아줌마들은 왜 짧은 머리만 하는가도 의문이다. '처녀치마'라는 풀꽃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사진을 보면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의 모양이 마치 처녀들이 입는 화려한 치마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녘에서는 '치마풀'이라고 부른다. 잎이 땅에 펼쳐진 모양이 일본 전통치마와 닮아서 '조조하카마'라고 했고, 이를 그대로 번역하여 '처녀치마'라 부르게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잎보다는 꽃 모양을 보고 '처녀치마'로 이름 붙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잎 모양이 정말 주름치마처럼 생긴 것은 '치마난초'(광릉요강꽃)다. 처녀치마는 생명력이 아주 세어 꽃은 여름에 피지만 잎은 겨울에도 땅바닥에 퍼져 추위와 눈보라를 견딘다니, 겨울에도 치마를 잘 입는 우리나라 처녀들과 맞아떨어진다고 할까.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

[풀꽃이름] 얼레지 / 임소영

'엘레지'가 아닌 '얼레지'는 예쁜 우리말이다. 얼레지는 꽃잎에도 무늬가 있고, 녹색 이파리에도 자줏빛 무늬가 여기저기 얼룩덜룩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봄에 산속에 많이 피어 강원도에서는 나물을 해 먹기도 하는데, 시큼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뿌리는 녹말가루가 많이 들어 있어 예전에는 구황식물로도 쓰였다. '가재무릇'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활짝 핀 꽃잎이 가재의 집게를 떠오르게 하고, 같은 백합과인 무릇과 뿌리가 비슷하여 그렇게 부르는 듯하다. 그러나 어떤 이는 백양꽃이나 석산을 가재무릇으로 부르기도 하니, 그냥 얼레지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 영어로는 '개이빨 바이올렛'(dog's tooth violet)이라고 하는데, 이는 분홍색 꽃잎이 활짝 젖혀졌을 때 보이는 진한 보라색 삐죽삐죽한 무늬가 마치 개이빨처럼 생겼다고 그렇게 붙였거나, 잎의 얼룩이 개가 이리저리 물어놓은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 붙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얼레지 꽃은 온몸을 뒤로 젖히고 한쪽 다리로 얼음을 지치는 피겨 선수를 닮았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산속의 매력덩어리 그 자체다.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

[풀꽃이름] 앉은부채 / 임소영

풀꽃이름을 들었을 때 금방 이해가 안 되는 이름이 있는데, '앉은부채'가 그렇다. 어떻게 부채가 앉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앉은부채'는 이른 봄에 겨울을 이겨내고 눈 속에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꽃을 감싸고 있는 포가 마치 당당하게 두른 여왕의 큰 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꽃이 부처님 머리를 닮았다. 어떤 이는 잎 모습이 커다란 부채를 떠오르게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나, 논리적으로도 '부채'가 앉아 있다고 하기보다는 '부처'가 앉아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꽃을 둘러싼 포를 부처의 후광인 불염포라 하기도 하며, 풀꽃 전체가 하나의 탱화를 보는 듯하다. 따라서 '부처'를 '부채'로 편하게 발음한 것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곧, 키를 낮추어 자라는 부처님 닮은 풀꽃이라서 '앉은부처>앉은부채'가 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듯 불교식 풀꽃이름은 '불두화/ 부처손'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영어로는 '스컹크 양배추'(skunk cabbage)라 하는데, 나쁜 냄새가 나고 양배추 꼴이라서 그렇게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기 썩는 듯한 냄새로 곤충을 끌어들여 번식하니, 무엇에나 그럴 만한 이유는 있는 법이다.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한겨레》 자료사진 / 한겨레

 

[풀꽃이름] 미치광이풀 / 임소영

풀꽃이름이라고 해서 다 아름답고 산뜻한 것만은 아니다. '개비름·노루궁뎅이·소경불알·며느리밑씻개' 등 입에 올리기 민망한 것들도 꽤 된다. '미치광이풀' 또한 고약한 이름인데, 독이 있어 사람이 잘못 먹으면 미친 것처럼 눈동자가 풀리고 발작이 일어나고 정신을 잃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봄에 천궁으로 잘못 알고 먹었다가 병원에 실려간 일이 이따금 뉴스에 나오기도 한다. '노랑미치광이풀'처럼 순하게 생긴 것도 있어 당하고 마는 것이다. 또한 이 풀에 신경흥분 성분이 있어 소가 먹으면 미친 듯이 날뛰기에 붙은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다. '미친풀·광대작약'이라고도 하고, 북녘에서는 '독뿌리풀'이라고도 한다. 종 모양의 진한 자주빛 꽃을 보면 예쁜 이름이면 좋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실물보다 이름이 영 못한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 이름은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한다. 또한 '예쁜 것은 독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다. 독은 개체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다. 다 살아남고자 하는 수단이다. 독을 잘 조절해서 쓰면 오히려 약이 된다. 미치광이풀은 통증이나 경련, 종기를 낫게 하는 데 쓴다.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

[풀꽃이름] 쥐꼬리망초 / 임소영


올해가 쥐해지만, 서울에서 쥐 구경은 고양이 보기보다 어렵다. 우리가 그렇게 잡자고 들던 쥐도 어느덧 절대악 자리에서 물러난 듯하다. 그 부지런함과 영리함을 기리며 보름날 쥐불놀이 풍경에 환호한다. 쥐는 속담과 관용어에도 많이 나오지만 풀꽃이름에도 꽤 있다. 열매가 방울처럼 달려서 '쥐방울덩굴', 꽃잎이 작은 손 같다고 '쥐손이풀', 뿌리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쥐오줌풀'이라고 한다. 산기슭이나 길가에 자라는 '쥐꼬리망초'는 열매가 쥐꼬리처럼 길어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녘말로 '무릎꼬리풀'이라 하는데, 무릎까지 오는 크기와 생긴 모양을 반영한 것이다. 영어이름 '호스위드'(horseweed)는 말이 다니는 곳에 자라는 풀이라고 그렇게 이름 붙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풀꽃이름은 대부분 여러 형태소가 합쳐지는데, '쥐+꼬리+망초', '자주+가는+오이+풀', '개+도둑+놈+의+갈고리' 등 긴 이름은 여러 정보가 들어 있거나 이름 붙이는 과정과 단계를 추적해 볼 수 있다. 쥐꼬리망초는 보잘 것 없는 이름과는 달리 감기·종기·간염·근육통·신경안정 등 만병통치약처럼 쓰인다. 쥐꼬리를 무시하지 마시라!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