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풀꽃이름] 무궁화, 너도밤나무, 이팝나무, 다정큼나무, 꽝꽝나무

푸레택 2022. 1. 29. 11:48

[풀꽃이름] 무궁화 / 임소영

지난 7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높이 7.5미터나 나가는 무궁화나무가 강원도 홍천에서 발견되었다. 국립산림과학원 쪽은 나무 나이를 100년 정도로 추정한다. '무궁화'는 '목근화'(木槿花)라고도 한다. 한자 어휘집 《역어유해》(1690)에는 '木槿花 무긴화/뭏긴화 ○ 무궁화'로 올렸는데, 목근화의 당시 중국음 [무긴화](현재는 무진화)와 비슷한 소리인 '무궁'(無窮)이란 한자를 만나면서 '무궁화'로 명명된 것으로 본다. 먼저 핀 꽃이 떨어지면 새로운 꽃이 이어 100일쯤이나 거듭 피고 지는 성질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고조선 때도 이 땅에 무궁화나무가 무척 많았다는 역사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오랜 옛적부터 우리나라에 자생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영원무궁이라는 겨레의 바람과도 잘 맞는 까닭에 국기가 제정되면서 국기봉을 무궁화 꽃봉오리로 정했고, 나라꽃이 됐으며, 정부의 표장으로도 삼는다. 기차 이름에서 새마을·무궁화·통일호란 등급이 거꾸로 된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고속철도가 나오면서 통일호는 사라졌다. 좋은 호텔이 무궁화 개수로 표시되고, 그 꽃이 장교 계급장 바탕으로 쓰이는 등 그 상징성이 곳곳에 살아 있다.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

[풀꽃이름] 너도밤나무 / 임소영

요새는 비슷한 동식물을 알기 쉽게 설명할 때 흔히 '사촌'을 끌어다 쓴다. 예컨대 문어와 낙지는 사촌이고, 가자미는 넙치와 사촌쯤 된다는 식으로 …. 그런데 풀꽃이름에서는 이 '사촌' 대신 '아재비'가 쓰이거나 '너도/ 나도'가 쓰였다. '아재비'는 '아저씨'처럼 아버지와 같은 항렬의 형제를 일컫는 오래 된 말로, 풀꽃이름에서는 대충 비슷한 모습일 때 붙인다. '미나리아재비, 둥굴레아재비, 골풀아재비, 억새아재비 …'들이 있다. '너도밤나무'는 울릉도 바닷가가 원산지이며, 성인봉 근처 숲을 이룬 군락이 천연기념물 50호로 지정되었다. 잎과 열매가 전체적으로 밤나무와 닮아 먼 친척뻘 정도 되는데, 그래서 '너도 밤나무다'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너도바람꽃, 너도양지꽃, 너도방동사니, 너도고랭이 …'들도 마찬가지다. 이에 견줘 '나도밤나무'는 언뜻 보아 잎이 밤나무와 닮았을 뿐,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나도 밤나무요'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나도'가 붙은 이름으로는 '나도송이풀, 나도냉이, 나도박달, 나도잔디 …'들이 있다. '너도'는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것이고, '나도'는 제 스스로 나서는 것이라고 볼 때, 객관적으로는 '너도'가 원형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너도/ 나도'가 붙은 것은 '주어+술어' 짜임으로서, 이런 얼개로는 낱말을 만들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이를 깨뜨린 이름이어서 특별하게 느껴지고 더 기억에 남는 듯하다.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 한겨레

[풀꽃이름] 이팝나무 / 임소영

요즘 길가나 학교 정원에서 하얀 이팝나무 꽃을 흔히 본다. '이팝나무'는 하얀 꽃더미가 마치 사발에 소복이 담긴 쌀밥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니밥>이밥>이팝이 된 것이다. '니팝나무/ 니암나무/ 뻣나무'라고도 하고, 꽃은 '쌀밥꽃'이라고도 부른다. 이름이 이름이니만큼, 꽃 피는 모습으로 그 해 벼농사를 짐작했다. 비가 적당히 온 봄이면 꽃이 활짝 피고, 날이 가물면 잘 피지 않는데,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벼농사는 물이 많아야 하므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 성싶다. 심지어 정월 앞뒤로 큰 샘과 이팝나무에 '용왕 먹인다' 하여 치성을 드리고 풍년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영어로는 옷감의 장식 술을 뜻하는 '프린지 트리'(Fringe tree)인데, 우리말은 밥과 쌀을 바로 이름에 썼다. 전라도에서는 '밥태기', 경기도에서는 '쌀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밥이 우리에게 얼마나 일상적인지는 조팝나무/ 까치밥/ 밥티꽃/ 며느리밥풀 같은 이름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팝나무라는 이름의 유래를 두고 다른 의견도 있다. 꽃이 입하(立夏) 머리에 피는 까닭에 입하목이라고 불렀고, 이 입하가 연음되어 '이파>이팝'으로 되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입하목이라도 부르기도 한다. 이팝나무는 요새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서 청계천에서도 볼 수 있다. 가난했던 시절 이팝에 고깃국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인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이팝나무 풍성한 길을 지나며 밥 안 먹어도 배부른 5월이다.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 한겨레

[풀꽃이름] 다정큼나무 / 임소영

'다정큼나무'는 이름이 정말 정겨운데, 뭐가 그리 다정한 것일까? 바닷가 따뜻한 곳에서 늦여름에 하얀 꽃이 오밀조밀 모여 피는 모습이나, 가을에 까만 열매가 옹기종기 열린 모습을 보면, 한 가지에서 다정하게 꽃을 피우다 여러 열매를 맺는 까닭에 붙은 이름인 듯하다. '다정큼나무'라면 '다정'과 '큼'이 합쳐서 '다정하게 크는 나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많은 이들이 둥그스럼하고 윤기 나는 잎, 붙임성 있어 보이는 꽃, 많이 맺는 열매에서 전체적으로 정다운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집안으로 끌어들여 울타리 나무로 삼거나 담장 밑에 흔히 심었다. 나무 껍질은 비단실을 쪽빛으로 염색하는 데 써서 '쪽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이 살면서 다정하기는 아주 쉬운 것도 같고 무척 어려운 것도 같다. 어찌 보면 다정한 품성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어야 할 법한데,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굳이 들먹이게 만드는 척박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 이상 정을 주거나 베풀면 결국 바보 같고 손해 보는 느낌을 우리 사회가 너무 많이 겪게 해준 것은 아닌지…. 그런 풍토가 무색해지도록 부디 '다정큼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

[풀꽃이름] 꽝꽝나무 / 임소영

나무이름은 '-나무' 아니면 '-목(木)/-수(樹)'가 붙는데, 옛날부터 내려오는 나무노래를 듣노라면 우리말 '-나무'가 훨씬 정겹다. '팽나무/ 뽕나무/ 층층나무/ 물푸레나무/ 간지럼나무 …'. '꽝꽝나무'는 나무로 땔감을 하던 시절, 불 속에 넣으면 두꺼운 잎이 터지면서 '꽝꽝!' 소리가 크게 나서 이름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에 '스펀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현충사 꽝꽝나무를 실험한 적도 있다. 나뭇가지를 꺾을 때도 '딱' 회초리 소리가 나니, 소리로 한몫을 하는 나무다. 은행나무처럼 암수딴그루인데, 암나무 잎은 볼록하고 수나무 잎은 평평하다. 꽝꽝나무 타는 소리를 들으며 깜깜한 하늘의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는 일은 이제 전설이 된 듯하다. 삶과 자연은 이제 하나가 아니라, 편리한 삶과 불편한 자연으로 따로 존재한다. '나물 캐기, 텃밭 가꾸기, 밤 따기, 가재 잡기'는 먹고사는 일을 훌쩍 뛰어넘어 어쩌다 한번 하는 '체험' 상품이 됐다. 이번 설에 '세뱃돈 대신 사과나무를 선물하세요!' 하는 지방단체는 발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돈 들이고 시간 내서 배우고 지켜야 할 자연이다.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