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풀꽃이름] 꿩의바람꽃, 봄맞이꽃, 우산나물, 자주꽃방망이, 참나리

푸레택 2022. 1. 29. 11:12

[풀꽃이름] 꿩의바람꽃 / 임소영

꿩은 가까운 산기슭에서도 자주 보지만, '꿩의다리, 꿩의비름' 등 풀꽃이름에까지 쓰이는 것을 보면 예부터 친근한 새임을 알 수 있다. 북녘에서는 꿩고기로 육수를 내거나 만두 소를 만들기도 한다. '바람꽃'은 주로 높은 곳에서 자라서 가늘고 여린 풀꽃이 바람에 많이 흔들리기에 붙은 이름이다. 바람은 '국화바람꽃, 외대바람꽃, 들바람꽃, 숲바람꽃' 등 어떤 말과 어울려도 운치가 있다. 어떤 이는 '꿩의바람꽃'을 가늘고 긴 꽃줄기가 연약해 보이는 꿩 다리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하기도 하나, 꽃을 달고 있는 줄기가 연약한 풀꽃은 많다. 그래서 쉽게 추정하기로는 꿩이 사는 산 높은 곳에 피기에 붙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토씨 '의'는 쓰임이 다양하지만 특히 일본어 'の'의 영향으로 많이 쓰이게 되었다. 정확한 우리말 표현은 '내가 살던 고향'이지만, '나의(の) 살던 고향'으로 쓰인 사례도 그렇다. 우리말은 물건+수량 구조이므로 '커피 한 잔'이 자연스러운데 '한 잔의 커피'(a cup of coffee)처럼 번역투를 흔히 쓴다. '꿩바람꽃'만으로도 동물·자연·식물이 녹아든 멋진 이름이다.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

[풀꽃이름] 봄맞이꽃 / 임소영

흔히 봄이 여인의 옷자락에서부터 시작된다고들 하는데, 진정한 봄은 산과 들의 풀과 나무에서 시작된다. 노루귀·복수초·개나리·산수유 등이 봄의 전령이다. '봄맞이꽃'은 3월에 논둑·밭둑에서 하얗게 피어나며, 봄을 맞는다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예전에는 어린순으로 국을 끓여 먹었다. 크기가 작아 그다지 먹음직한 먹거리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 아마도 봄의 땅기운을 마셨을 터이다. 《쉽게 찾는 우리 나물》(김태정)에서는 우리가 먹는 나물만도 200가지 넘게 꼽는다. 봄맞이꽃은 가장자리가 톱니꼴인 동그란 잎이 퍼져 나가며 구릿빛을 띠어 '동전초', 땅에 점점이 흩어진 매화꽃 같다고 '점지매'(點地梅)라고도 한다.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뜻에서 '보춘화'로 이르기도 하나, 보춘화는 실제로 '춘란'을 가리킬 때가 많다. 긴장이나 고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얘기가 있다. 새로운 모습과 기대를 갖게 하는 봄 스트레스를 살짝 반길 일이다. 봄맞이 대청소도 있고, 봄맞이 세일도 있지만 봄맞이 꽃구경 한번 나서는 것이 어떠실지…. 봄은 들판으로 오지만, 도시에서는 꽃시장에 먼저 온다.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한겨레》 자료사진 / 한겨레

[풀꽃이름] 우산나물 / 임소영

물건 모양을 풀꽃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는 '초롱꽃·붓꽃·은방울꽃·장구채·촛대승마·톱풀·투구꽃 …' 등 꽤 많다. 우산나물은 누구나 보자마자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야 말 것이다. '우산나물'은 새순이 우산을 접어놓은 것처럼 생겼으며, 잎이 자라면 우산을 펴놓은 것처럼 보인다. 나물은 사람이 먹기 때문에 붙이는데, 봄철에 '애기우산나물' 어린순을 삶아서 먹었다. 한자말로도 '토아산'(兎兒傘)이라 하여 새끼토끼가 쓰는 우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그 모양을 삿갓으로 여겨 '삿갓나물'이라고도 하나, 삿갓나물은 또다른 종류의 풀이름이다. 백합과인 삿갓나물은 독성이 있는데, 독은 곧 약이 되기도 하여 암을 치료하는 민간요법에 쓴다. 우산나물은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숲속 응달에서 하얀 솜우산을 펼쳐들지만, 요즘은 야생화 전시회에서 생긴 모양 덕분에 인기가 높다. '우산잔디' 또한 바랭이와 마찬가지로 꽃줄기를 우산 모양으로 만들어 놀았던 데서 붙은 이름으로 짐작된다. 닌텐도에 열광하는 아이들을 보니, 아카시아 꽃잎으로 숫자를 익히고 바랭이 우산을 접었다 폈다 했던 때가 아득한 옛날로 느껴진다.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

[풀꽃이름] 자주꽃방망이 / 임소영


방망이는 치거나 두드리는 데 쓰는 물건이어서 별로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꽃방망이라고 하면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예전에 아이들이 진달래, 싸리꽃 꽃가지를 여럿 꺾어 긴 막대기에 둥글게 묶어서 놀던 것을 꽃방망이라고 했는데, 어르신들이나 아는 추억속 놀잇감이다. 40대의 갤러그, 30대의 테트리스, 20대의 스타크래프트, 10대의 닌텐도 …. 50년 안쪽 사이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확연히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자주꽃방망이'는 방망이 같이 쭉쭉 뻗은 단단한 줄기에 자주보라 꽃이 층층이 달려 있어 붙은 이름이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는 그야말로 꽃으로 만든 아름다운 방망이다. 백두산에서 피는 하얀 '흰자주꽃방망이'는 희면서 자줏빛이라니 모순된 이름이다. 그냥 '흰꽃방망이'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 화관이나 꽃방망이 등 자연 장식이야말로 최고의 꾸밈이지만,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을 따서 꽂아두고,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지켜본다고 한다. 우리에겐 아름다운 이름 '꽃방망이'지만, 먹을 힘도 없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쓴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김혜자)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 한겨레

[풀꽃이름] 참나리 / 임소영

사람이름 중에 풀꽃이름으로 지은 이름들이 최근 눈에 띈다. 강풀·백장미·채송화·진달래…. 그중 '나리'도 가끔 볼 수 있는데, 나리꽃의 신선함과 튼튼함을 떠올릴 때 괜찮은 이름인 듯싶다. 나리는 한자말로 곧 백합(百合)이나 사람들이 보통 백합을 하얀색 원예종만을 따로 이르기에 현재 구분하여 쓰고 있다. 백합은 비늘 일백 개가 합해져 하나의 알뿌리를 만들었다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사실 나리는 종 전체의 일반적인 이름이고, 하늘을 향해 피는 '하늘나리', 땅을 보고 고개를 푹 숙인 '땅나리', 키가 작아 '애기나리', 울릉도에서 피는 '섬말나리' 등 품종이 아주 많다. 나리 중 대표격인 참나리꽃은 주황색 바탕에 진한 점들이 많은데, 그래선지 영어로는 타이거 릴리(tiger lily)라고 하고, 한자말로도 '호피백합'이라고 하나 그냥 '참나리'가 정겹다. 대개 '참-'이 붙으면 품질이 좋거나 자생식물임을 나타내고, 반대로 '개-'가 붙으면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드러낸다. '참나리'는 크고 화려하지만, 개나리나무가 아닌 '개나리'는 나리처럼 생겼으나 작고 보잘것없다고 '개-'를 붙였다. 참나리 같은 당당함과 씩씩함을 배우고 싶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