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풀꽃이름] 금낭화, 개구리밥, 나비나물, 각시취, 참꽃마리

푸레택 2022. 1. 28. 21:53

[풀꽃이름] 금낭화 / 임소영

요즘 주머니는 아주 단순하여 그저 양복주머니, 청바지주머니 등 실용적인 쓸모만 남았는데, 실상 우리 고유의 주머니는 실용적인 것에 아름다움이 더해진 지극히 미적인 물건이다. 특히 한복에는 조끼 말고는 물건을 넣을 만한 호주머니가 없어, 옛날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지녔다. 예쁜 주머니는 중요한 꾸미개였다. '금낭화'(錦囊花)는 주머니 모양으로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다. 색도 고와 비단주머니꽃이다. 금낭화로 더 많이 이르지만 우리말 '며느리주머니·며늘치'도 있다. 새로 시집온 며느리가 차는 예쁜 주머니에서 땄을 법한 이름인데, 며느리밥풀, 며느리밑씻개 등 며느리가 붙은 다른 풀꽃이름은 그야말로 며느리 수난사지만 좋은 뜻이 들어간 며느리주머니는 왜 금낭화에 밀렸는지 안타깝다. 영어로는 '블리딩 하트'(bleeding heart)인데, 꽃잎 아래로 희고 붉은 꽃잎이 늘어져 나오는 모습을 '피 흘리는 심장'이라고 매우 직설적으로 나타냈다. 달력에서 많이 본 금낭화를 이제 실제로 볼 수 있는 철이 되었다. 산과 들이 아니더라도 꽃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복주머니를 차 본 마지막 세대가 금낭화를 사면서 추억을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글=임소영 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한겨레》 자료사진 / 한겨레

[풀꽃이름] 개구리밥 / 임소영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을 한 달 남짓 넘어서니 이제 날씨가 덥다. 개구리밥도 물 위로 떠오른다. '개구리밥'은 물에서 자라는 아주 작은 풀이다. 개구리가 먹는다고 개구리밥이 아니라, 개구리가 사는 논이나 연못에 자라 개구리가 물속에서 머리를 내밀었을 때 머리에 풀이 붙은 모습이 개구리가 먹는 것처럼 보인다고 붙은 이름이다. 개구리는 주로 파리나 지렁이 등 곤충을 먹지 채식을 하지 않는다. 영어로는 '덕위드'(Duckweed)라는데, 연못이라면 떠오르는 것이 우리는 개구리이고 영어권 화자는 오리인가 보다. 개구리밥이 있는 물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운치 있게 그려졌다. 그러나 요즘은 수족관을 꾸민답시고 인터넷에서 한 컵에 만원을 주고 사는 개구리밥일 만큼 현대인은 자연도 사고팔 수 있다. 개구리밥은 바람 따라 떠다녀 '부평초'(浮萍草)라고도 하는데, 이는 덧없이 떠도는 삶에 대한 대표적인 비유다. 너무 무성해지면 벼나 다른 물풀이 자라지 못한다. 지역 일꾼을 뽑는다는 선거에서 정치적 손익 계산에 따라 갑자기 이사를 하고, 호텔 사우나 대신 동네 목욕탕을 가는 후보자를 보는 일에도 익숙해져 버렸다. 물 위를 떠도는 개구리밥 같은 분들이다.

글=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 한겨레

[풀꽃이름] 나비나물 / 임소영

풀꽃 이름을 지을 때 그 모양이나 습성이 닮았을 때 흔히 동물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데, 보통 동물 이름이 붙을 경우 '닭/범/꿩/노루' 등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거나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붙는다. 곤충 이름 중에서는 '파리/모기' 등을 붙이지만 모양을 본딴 것은 아닌데, 나비는 하늘거리는 모양이 예뻐서 '풍접초'(風蝶草)처럼 한자말 이름에도 자주 붙는다. '나비나물'은 봄·여름에 산과 들에 나는 어린잎을 나물로 해 먹는다. 여름·가을에 붉은자주색 꽃이 피는데, 봉오리가 벌어졌을 때 두 장씩 마주 나는 꽃잎이 나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꽃에 꿀이 많아서 나비나물이라는 이름이 무색지 않다. 한약이름으로도 '왜두채'(歪頭菜)라 하여 현기증 등을 치료하고, 피로를 없애는 등 몸이 허한 사람의 기력을 회복하게 하는 효능을 지닌 귀한 산나물이다. 잎이 큰 '큰나비나물', 크기가 작은 '애기나비나물', 잎이 좁고 긴 '긴잎나비나물',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백운산 골짜기에서 자라는, 한국 특산 푸른자주색 '광양나비나물' 등의 종류가 있다. 나비나물은 동물 이름으로 식물을 일컬은 예쁘고도 달콤한 이름이다.

글=임소영 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

[풀꽃이름] 각시취 / 임소영

'각시취'는 양지 바른 가을 들판에 자라는 국화과 풀꽃이다. 신부의 상징색이 붉은 계열이다 보니, 짙은 분홍·자주·보랏빛 예쁜 꽃을 보고 각시를 붙였나 보다. 흔히 '각시'는 '각시수련·각시붓꽃·각시원추리' 등의 쓰임을 볼 때 작고 연약하고 예쁜 풀꽃에 붙이는데, 각시취는 키도 크고 튼튼해 보이는 점이 좀 다르다. '각시'는 아내의 다른 말로서 주로 갓 시집 온 새색시를 이른다. 이는 옛말 '가시'에서 '갓시>갇시>각시'로 바뀐 것이다. 흔히 우리말 퀴즈에도 자주 나오는 '가시버시'를 국어사전들에서 대부분 '신랑신부'의 낮춤말로 풀이했는데, '버시'는 '벗+이'로 '각시를 벗 삼아' 정다운 부부 모습을 가리키는 어찌씨로 보는 견해도 있다. '취'는 나물을 뜻하는데, '채'(菜)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린 순은 봄에 나물로 해 먹는다. 잎에 털이 있어서 '참솜나물'이라고도 한다. '우렁각시'는 있어도 '우렁신랑'이 없는 현실은 새색시한테도 상당한 기대가 깃들어 있음을 본다. 힘든 티 내지 않으면서 살림도 잘 하고, 애도 잘 기르고, 돈도 잘 버는(효도도 잘 하는) 우렁각시는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의 바람인 모양이다.

글=임소영 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

 

[풀꽃이름] 참꽃마리 / 임소영

'꽃'은 풀꽃 아닌 다른 어떤 말에 쓰여도 예쁘다. 꽃동산, 꽃주머니, 꽃미남 등 붙이기만 하면 예쁜 느낌이 살아난다. '꽃마리'라는 풀꽃이름도 무척 예쁘다. '꽃마리'는 꽃이 피기 전에 꽃줄기가 달팽이 모양으로 도르르 말리는 것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꽃대가 펴지고 올라가면서 꽃이 핀다. '꽃+말+이'에서 연철되어 '꽃마리'가 되었다. 이는 두루말이가 두루마리로 바뀐 것과 같다. 하지만, 달걀말이는 아직 '달걀마리'가 되지는 않았다. '참꽃마리'는 꽃마리처럼 말려 있지는 않은데, 연하늘색 꽃이 이름처럼 예쁘다. 대개 '참-'이라는 앞가지가 붙으면 모양·품질 등이 더 좋은 것임을 뜻한다. '참나리/참미나리/참깨'가 그렇다. 반면에 '개-'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덜 좋은 품종임을 뜻하는데, '개나리/개미나리/개살구'가 그렇다. '참'일꾼을 뽑는 선거일이다. 앞의 이야기대로 '품질 좋은' 대통령이 뽑히길 바란다. '참사랑'을 꿈꾸었으나 그렇지 못한 적도 있었고, '참교육'과 '참사회'를 꿈꾸었으나 현실 앞에서 절망한 경험이 많은 우리 국민에게 계속 '거짓말'과 '참이슬'만 먹게 해서 되겠는가.

글=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