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계란과 스승 / 이재무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6학년 학기 초 담임선생님이 부르셔서 갔더니 내일부터 매일 당신에게 계란을 갖다 바치라는 거였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당시는 계란이 참 귀물이어서 물물교환으로 사용이 가능했었습니다. 어느 안전인데 선생님 말씀을 어길 수 있었겠어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식구들 몰래 계란을 훔쳐 선생님께 드렸습니다. 암탉들이 알 낳는 곳을 염탐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러구러 시간이 흘러 2학기 말 무렵이었습니다. 열 마리였던 닭들이 그새 하나둘 제사용으로 손님용으로 잡아먹히게 되어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계란을 빠트리는 날이 늘어나자 선생님이 부르셨습니다. 울먹이면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가늘게 떠는 어깨를 감싸 안아주셨습니다. 괜찮다. 이제 그만 가져오너라. 그러고는 책상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내주었습니다. 통장이었습니다. 그동안 네가 가져온 계란 값이다. 나도 좀 보탰다. 그거면 중학교에 갈 수 있을 게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중학교에 갈 수 있었고 어찌어찌해서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 (천년의시작, 2017)
[감상]
내 경우 딱히 은혜를 입었다거나 기억에 남는 스승은 없다. 사소한 에피소드가 전혀 없진 않겠으나 학창시절 내내 평범하고 무난한 학생이었으므로 선생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날 다 같이 어려운 시절을 회상하면서 선생님의 각별한 배려와 도움으로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거나, 상급학교 진학도 가능했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시에서와 같은 감동적인 선생님도 여럿 계셨고, 선생님으로서도 잊지 못할 제자가 어찌 없으랴. 대구교육청에서는 매년 교원 미담사례를 발굴하여 소개해오고 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사랑과 감사의 정을 나누고 확산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갈수록 사례들이 도식적이고 평면적이어서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는 현저히 줄어드는 추세다. 그만큼 스승을 공경하는 분위기도, 참 스승을 찾기도 힘든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스승의 날은 1965년부터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자는 뜻에서 민족의 스승이신 세종대왕의 탄신일에 맞추어 정하여 실천해왔다.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진정한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승은 중을 높여 부르는 '사승(師僧)'에서 온 말이다. 사(師)의 중국 발음이 '스'란 점으로 미루어 '사승'이 변해서 '스승'이 되었고, '사(師)님'이 '스님'이 된 것이다. 그런 스승의 지위가 요즘 형편없이 추락되었다. 제 자식을 위해 일시적으로 고용계약관계에 놓인 존재쯤으로 인식하는 부모들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카톡으로 아이들 준비물과 숙제 내용을 확인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니 당장 체육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학교 업무는 학교 대표 번호를 통하도록 되어있는데 폰 번호를 왜 알려주느냐고 그러겠지만 교사와 적극적인 소통을 원하는 일부 부모들의 성화에 번호를 알려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승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도 예전 같지 않다. 매년 스승의 날이라며 설레발이 치지만 이래저래 선생님들의 심기는 편치 않다. 오죽하면 현직 초등교사가 스승의 날을 폐지해달라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을까. 김영란법 이후 생화는 안 되고 종이 카네이션은 되는 그런 식이다. 그렇다면 길에서 꺾은 민들레 한 송이를 갖다 바쳐도 처벌된다는 말인가. 스승의 날이 학생과 학부모에겐 부담으로, 스승에겐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좌불안석이 된다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없애기 뭐하면 5월1일 근로자의 날로 이동하여 하루 그냥 쉬도록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물론 매일 계란 하나씩을 사들여 목돈으로 등록금을 마련해주신 스승의 이야기는 아득디 아득한 전설이 되고 말겠지만.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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