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가누가 잘하나 / 권순진
연구수업, 혹은 전시수업이라 했을라나.
몇 십 년 거슬러 추억의 실타래가 조금 감겼을 무렵
지방 도회 국민학교 교실 안
너풀너풀 학부모 가득 뒤편에 가로줄 세워두고
칠판에 산수 문제 하나 판서하신 선생님
이거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저요! 저요! 저요!
엉덩이 방댕이 죄다 풀썩 들썩
그 틈에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간신히 오른팔 관절만 꺾어 올린
주먹의 높이 고작 입술과 나란한
고아원 출신 영철이가 맨 먼저 지목받았지
영철이 부진한 산수
반 아이들이 알고 선생님이 더 잘 아시는데
불려나간 영철이 무릎 꿇고
걸상 치켜든 채 벌서는 동안
뒤편 치맛자락 넓은 예쁜 아줌마의
금쪽같은 아들이며 우리 반 반장 세일이가
이거쯤이야 나가서 척 문제 풀고
가슴 내밀며 모든 이의 박수세례 받을 때
함께 손뼉 칠 수 없었던
교실 안 단 한사람 영철이 눈엔
반짝 작은 별 하나 매달렸는데
그 축축한 별 훔쳐낼 수 없어
찔끔 힘주어 바닥에 떨어뜨리는 걸
별이 쨍그랑 깨어지는 순간을
나는 보았네
푹 고개 숙이고 깨어 문 입술에 번진
새파란 윤기까지
- 시집 『낙법』 (문학공원, 2011)
[감상]
‘누가누가 잘하나’는 지금도 방송되고 있는 전통의 동요 경연 TV프로그램이다. 이 프로의 명칭은 1954년에 시작된 같은 이름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이은 것으로 한동안 중단되기도 했고, 다른 명칭으로 부활했다가 몇 년 전 다시 옛 이름으로 환원되어 아동대상프로그램으로 정착되었다. 아이들의 ‘정서함양’에 아주 유익한 방송으로 이를 두고 시비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승자독식의 무한경쟁교육, 차별교육, 한 줄 세우기식 교육 등을 망라하여 집약된 말 같아서 거북하게 들릴 뿐이다. 최고의 포식자 티라노사우루스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약육강식 시대의 찌꺼기가 아직 남아있는 건 아닐까 우려되는 것이다.
무한경쟁교육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우수한 인재가 나온다는 당연한 논리로 ‘경쟁만이 살길’이라는 불가피성을 내세우고는 있으나, 바로 그 때문에 ‘실패는 곧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었다. 최근 발간된 ‘2018 자살예방백서’에 의하면 전체 자살률은 5년 전에 비해 19%나 감소한데 비해 유독 10대와 20대의 자살자는 2016년 이후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가까이가 학업 성적으로 인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한다. 이틀에 한 명꼴로 꽃 같은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기막힌 현실의 진원이 교육현장이라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더구나 그 경쟁이 공정하지 않거나 누군가를 깔아뭉개고 그 바탕 위에서 벌어지는 것이라면 저 영철이는 누가 위로해줄 것이며 그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수 있단 말인가. 국내 대표적 진보경제학자이며 독보적 마르크스 학파인 고 김수행 교수도 막 전쟁을 겪은 초등학생 시절 이 시에서와 비슷한 분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 강연에서 술회한 바 있다. 김수행 교수는 대구중앙초등학교 10년 선배다. 우리 때만 해도 한 반에 대여섯 명 정도는 나이가 많은 고아원 출신들이 있었지만 대구의 한 복판에 위치한 탓에 상대적으로 학생들의 ‘수준’이 높은 편이고 선생님들도 선호하는 근무지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리라 짐작하지만 이십여 년 전만 해도 대구외곽 k2군비행장에 근무하는 파일럿과 장교의 자녀들은 스쿨버스를 태워 중앙초등에 다니게 하고 하사관 자녀들은 인근의 아양초등에 다니게 한 희한한 차별이 버젓이 자행되었다. 몇 년 전 '상속자들'이란 드라마에 등장했던 학교처럼 '불가촉천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탈옥수 신창원이 이해인 수녀님에게 보낸 옥중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으로부터 “돈 안 가져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악마가 태어났음을 느꼈다; 그때 선생님이 머리 한번 쓸어줬다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제는 그런 몰상식한 선생님도, 영철이란 '도구'를 이용해 ‘전시수업’의 연출효과를 높여보려는 못된 선생님도 안 계실 것이다. 즐겁고 자유로워야할 학교에서 학생들 모두가 서로 적이 되어 경쟁하면 인간관계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건 물론이고 인성교육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한번 가난하면 영원히 가난하게 억눌리며 살아야하는 걸까. 다원화 시대에 각자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열린 교육의 시행이 그토록 어려운걸까. 지나친 경쟁과 한줄 세우기로는 사교육비를 절대 줄일 수 없으며 스승에 대한 존경심도 옅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차별 없는 협동과 조화 중심의 핀란드식 교육이 우리 형편에 맞지 않는다고 마냥 외면만 할 일인가.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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