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열대야 / 김신용
그 반딧불이가 찾아온 날은, 캄캄한 밤이었다
창문 다 열어놓고, 간신히 걸친 등거리도 벗고
거실 마루에 누워 잠 청하던 밤이었다
처음 나는 그것이 어디서 반사된, 아니, 내 비문증 때문인 줄 알았다
먼 곳에서 켜진 성냥불처럼 반짝이던 것
어두운 풀숲 속의 작은 달개비 꽃잎같이 피어 있던 그것
나는 그 飛蚊을 지우려고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살아 있는 빛이었다
창문 위에서 천정으로, 그곳에서 다시 벽으로 옮겨가며 반짝이는 것
저것이 무엇일까? 잠결에, 어렴풋이 뜬 눈으로
그 빛의 움직임을 한참이나 지켜본 후, 비로소 나는 알아차렸다
반딧불이라는 것을― . 내가 곤충도감이나 형설지공이라는 故事에서나 들어본
그 반딧불이라는 것을― .
세상에, 반딧불이라니! 태어나 처음 본 반딧불이가 집안으로 들어와,
저렇게 맑고 은은한 빛을 켜놓고 있다니!
살아 있는, 살아 있는 빛을 머금고 있다니!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망막에 오로라가 일렁이는 시선으로
이 세상의 빛이 아닌 것 같은, 그 빛을 지켜보았었다
암호 같은, 무슨 상형의 기호 같은, 그 빛을 지켜보았었다
캄캄한 밤, 이 세상과 절연한 듯한 숲 속의 집
불이란 불 다 끄고, 별마저 지워진 이 깊은 밤에
반딧불이가 나타나, 저렇게 어두운 허공에 맑은 형광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니!
한 줄기 맑은 물줄기의 길이, 숲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너무도 시원히 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였다
그러나 내 몸 속에 켜진 불로 밤새 잠 못 이룬 밤이었다
너무도 무더운 여름날의 밤이었다
- 시집 『도장골 시편』(천년의시작, 2007)
[감상]
오래 전 한 텔레비전 퀴즈 프로에 “개똥벌레와 반딧불이는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라는 1단계 문제가 출제되었다. 상금을 타면 부모님 유럽여행 가는데 여비로 보태드리겠다며 호언한 한 대학원생 청년이 진행자의 다시 생각해보라는 거듭된 권고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다른 것이라고 답하여 주위의 안타까움을 산 일이 있었다. 아마도 그 청년은 ‘맑고 은은한’ ‘살아있는 빛을 머금고 있는’ 반딧불이가 개똥벌레라는 찝찝한 다른 이름을 갖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공부는 많이 했지만 책에서는 배우지 못했고 누가 똑바로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반딧불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반딧불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7년 전 말레이시아 셀랑고르 강가에서다. 안내원이 동력을 끈 보트의 노를 느리게 저어 맹그로브 숲 깊숙이 다다르자 엄청난 반딧불이 무리가 밤하늘에 깜박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발광하는 저 빛들이 모두 하나하나 살아있었다. 가히 반딧불이로 별을 대적하는 형국이었다. 여기서는 큰소리를 내지르지 못하게 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안내원이 낮은 목소리로 "Kelip Kelip"이라고 했다. 이 말은 “반짝반짝”이란 뜻의 말레이어로 반딧불이를 지칭한다. 수컷의 발광은 짝을 찾기 위한 구애의 빛이며, 그 화답으로 암컷도 사랑을 허락한다는 신호를 보낸다니 그들의 아름답고 처절한 사랑의 향연에 숨이 멎었다.
반딧불이는 암컷 하나에 수컷 4~50 정도로 성 개체 비율이 엄청난 불균형을 이룬다. 그런 형편이라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수컷은 누구보다 밝게 빛을 내며 온 힘을 다해 구애할 수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것은 보름 남짓 시한부 삶을 산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서둘러 천생연분을 찾아야 하고 자손을 남겨야만 한다. 암수 모두 단 한 번의 사랑을 위해 생을 바치는 셈이니 그 보다 강렬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동물들의 구애는 사람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본능적이지만 때론 더 적극적인 희생을 동반한다. 시인의 경탄은 이해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거실에 기습적으로 날아든 반딧불이는 사랑에 실패하고 방황한 수컷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편으론 집안에서 반딧불이를 보았다는 사실은 둘레의 환경이 괜찮다는 반증이다. 반딧불이는 물과 공기가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의 상징이다. 오늘날 환경의 변화와 무분별한 개발로 점차 서식지가 파괴되어 추억처럼 여름밤에 흔히 볼 수 있는 곤충이 아니다. 반딧불이가 사라져가는 만큼 우리의 가슴은 삭막해지고 마음은 옹졸해지고 있다. 그들의 영역을 빼앗고 몰아내는 만큼 우리의 가슴은 공허해진다. 사라져가는 반딧불이는 우리가 살만한 환경을 지표해주는 정신적 육체적 파수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반딧불 같은 작은 빛으로 세상을 밝히고자 애쓰는 많은 삶들도 기억한다.
반딧불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바로 소박한 불빛 때문이듯이 우리도 세상을 따스하게 밝힐 ‘몸속에 켜진 불’ 하나씩을 들여놓아야겠다. 지금도 공기 맑은 지역의 밤하늘에선 유성우인 별똥별을 볼 수 있다. 윤동주의 동시 「반딧불」에선 반딧불을 ‘달조각’이라고 했다.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고 한다. 우리는 아무리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다 해도 ‘어두운 허공에 맑은 형광의 궤적을 그리고’ 다니는 저 반딧불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면 ‘한 줄기 맑은 물줄기의 길이, 숲을 훑고 지나가는’ 시원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열대야쯤은 얼마든지 이겨내리라.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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