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극옹은 긔 뉘런고 - 김수장(金壽長)
無極翁은 그 뉘런고 하늘땅 임자런가
언제 어느 때에 어디로서 난 것인고
처음도 나중도 모르니 無極일시 옳도다
[뜻풀이]
*무극옹(無極翁): 천지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상태를 무극(無極)이라 하며, 무극옹은 조물주를 가리키는 말로 추측된다.
*긔: ‘그것이’의 줄임말로 옛말에서 쓰이는 지시대명사이다.
*무극(無極)일시: ‘무극(無極)인 것이’. ‘~ㄹ시’는 옛스러운 표현인데, 추측한 내용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분명하다’ 따위의 말의 주어가 되게 하는 연결 어미. ‘-ㄹ것이’나, ‘-ㄴ것이’에 가까운 뜻이다.
[풀이]
조물주가 그 누구인고 하늘과 땅의 임자인가? 언제 어느 때에 어디에서부터 난 것인가? 처음도 나중도 모르니 무극이라고 하는 것이 옳도다.
[지은이]
김수장[金壽長: 1690~?]: 조선의 문인. 자는 자평(子平), 호는 노가재(老歌齋). 벼슬은 기성서리(騎省書吏)를 지냈으며, 김천택(金天澤)과 아울러 영조 때 국문학 문인의 중진으로 그 이름을 떨쳤다. 만년에는 서울 화개동(花開洞)의 자기 집을 노가재라 부르고 제자들을 모아 작가법·가곡의 창법·악기의 연주법등을 가르쳤다고 하며 시조의 창작과 가창으로도 유명하였다. 1763년(영조39) 그의 시조 117수가 들어있는 《해동가요》를 편찬하였다.
[참고]
김수장(金壽長)은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으로 호는 노가재. 김천택과 더불어 숙종, 영조기를 대표하는 쌍벽의 가인이다. 그의 공적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1755년에 3대 시조집의 하나인 를 편찬하였다. 둘째: 가단의 지도자로서 가악의 발전과 후배양성을 위해 힘썼다는 점이다. 1760년에는 서울 화개동에 노가재를 짓고 가악활동을 주도해 나갔다. 노가재 경을 전후하여 노가재가단을 결성한 듯하다. 셋째: 시조작가로서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해동가요'의 서문에서 자작 장단가가 149수라 했다.
그의 작품 내용은 대체로 세 계열로 구분된다. 첫째: 양반·사대부들의 작품 경향을 그대로 답습한 것. 둘째: 감정의 솔직한 노출은 서민 의식과 결부되어 서민들의 생활감정을 적나라하게 나타낸 작품이 많다는 사실. 셋째: 가악 생활과 관련 있는 작품이 많다는 점. 숙종·영조 대의 가객으로서, 김천택과 더불어 시조를 중흥시킨 쌍벽으로서 작품으로는 그가 직접 편찬한 《해동가요》에 117수가 전하고 있다. 양작으로는 전례가 없을만큼 방대하나, 질적으로는 그다지 빼어난 작품이라곤 볼 수 없고, 다만 기출시조를 모방한 것이 많다. 그러나 그는 가창에 있어 명수요, 가집을 편찬했으며 또 노가재(老家齋)라는 음악연구기관을 설치해서 후진을 지도하는 등 그의 업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일소일빈
한자는 우리글이다
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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