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중 조홍감이 - 박인로(朴仁老)
盤中 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柚子ㅣ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싀 글로 설워하나이다
[뜻풀이]
*반중(盤中): 소반 위에 놓인.
*조홍(早紅)감: 붉은 감.
*보이나다: ‘보인다’의 옛 말투.
*유자(柚子)ㅣ - 유자(柚子)는 왜귤 비슷하며 향기가 짙은 과일이다. ‘ㅣ’는 한문글에 쓰이는 주격(主格)의 토이다.
*없을싀: ‘없을 것이기에. ‘~ㄹ싀’를 옛말씨인 ‘~ㄹ쌔’와 ‘~ㄹ새’의 변형(變形)으로 보고서, ‘~므로, ~까닭으로’의 뜻으로 풀이하는 학자도 있다.
*글로: ‘그로 인하여,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런 까닭으로’
[풀이]
소반 위에 놓인 붉은 감이 매우 곱게도 보입니다. 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몸에 품고 돌아갈 만도 합니다만 아무리 소중히 품고 돌아 가도, 보시고서 반가와 해 주실 분이 아니 계실 것이기에 그런 까닭으로 서럽게 여기나이다.
[지은이]
박인로(朴仁老: 1561~1642): 국문학 사상(國文學史上) 많은 작품을 남긴 이로서, 호(號)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이라 불렀다. 명종(明宗)16년 영양(永州)에서 태어났으며, 임진란(壬辰亂)에 즈음해서는 수군(水軍)으로 나아가 활약하였고,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좌병사(左兵使) 성충문(成充文) 막하(幕下)에 들어 여러 차례 전공(戰功)을 세웠으며, 또한 성병사(成兵使)의 명으로 태평사(太平詞)를 지어 사졸(士卒)을 위로한 바도 있었다. 전쟁 후에는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수문장(守門將)을 비롯하여 조라포(助羅浦)의 만호(萬戶), 부산포(釜山浦)의 통단사(統丹師) 등을 지냈으나, 그도 느낀 바가 있어 무관(武官) 벼슬을 내놓고, 전원(田園)으로 내려가 학업(學業)에 잠심(潛心)하니, 이미 그의 나이 50이 가까워서 였다. 수석(水石)을 사랑하여 가까이에 초당(草堂)을 짓고 우거(愚居)하였으며, 인근에 살던 임하(林下) 정심(鄭諶)과 도의(道義)를 논(論)하며, 또같이 꽃을찾곤 했었다. 인조(仁祖)8년에 용양위부호군(龍壤衛副護軍)이라는 우로(優老)의 은전(恩典)을 받고 다시 인조(仁祖)로부터 미육(米肉)을 내린 바도 있었다. 인조(仁祖) 20년에 별세(別歲)하니, 나이 82세요 슬하에는 2남 1녀를 두었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서는 가사(歌辭)로서 태평사(太平詞), 선상탄(船上歎), 사제곡(莎提曲), 누항사(陋巷詞)등 8곡(八曲)이 있으며, 시조로서 전하는 것이 60수(首)에 이르는데, 그 중의 절반이 사친가(思親歌)와 오륜가(五倫歌)로서 수신(修身)하는 길을 강조한 것들이다.
[참고1]
이 시조는 선조 34년, 작가 나이 41세 때에 지은 것으로 <조홍시가(早紅詩歌)>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작가가 한음 이덕형을 찾아갔을 때, 한음이 조홍시를 대접하므로, 중국의 육적이 귤을 품고 돌아간 옛일에 비추어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고 이 시조를 지은 것이라 한다. 귀한 음식을 대하였을 때 그것을 부모님께 드렸으면 하는 마음은 있을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그것을 갖다 드릴수 없음을 서러워한다는 것은 평소에 효심이 두드러지지 않고서는 생각할수 없는 일이다. 작가는 몇 개의 감을 앞에 놓고 어버이를 추모하며 서러워 하고 있으니 그의 효심이 어떠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2]
육적의 고사: 중국 삼국 시대에 오나라에 육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여섯살 때 원술이라는 사람을 찾아갔다가 그가 내 놓은 귤 중에서 세 개를 몰래 품 속에 넣았다가 하직 인사를 할 때 그 귤이 굴러나와 발각이 되었다. 그 때 원술이 귤을 감춘 사연을 물었더니, 육적은 집에 가지고 가서 어머님께 드리려 하였다고 하므로, 모두 그의 효심에 감격하였다고 한다. 이 일을 회귤고사, 또는 육적회귤이라고 부르며, 부모에 대한 효성의 뜻으로 쓰인다. 이 시조에서 <유자>라 한 것은, <귤>을 가리킨 것이고, 어떤 시조집에는 <귤>이 라고 한 데도 있다.
[참고3]
해방(解放) 후 알려진<진본(珍本) 청구영언(靑丘永言)>에서, 본조(本條)에 앞서 주서(註書)하기를,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반중(盤中)의 홍시를 보고, 박인로(朴仁老)로 하여금 단가(短歌) 3장(三章)을 짓도록 일렀은즉, 아마도 그 노래가 어버이를 생각하는 지성(至誠)에서 나온 듯하다[漢陰見盤中早紅(한음견반중조홍) 使朴仁老命作三章(사박인로명작삼장) 蓋出於思親至誠(개출어사친지성)]"라 하였으며, 다시 노계선생문집(蘆溪先生文集) 권지삼장조홍시가조(卷之三章早紅柹歌條)에 이르기를, "신축년(辛丑年) 9월초(九月初)에 한음상공(漢陰相公)께서 ,박공(朴公)에게 홍시(紅枾)를 대접 하였더니, 박공은 돌아오는 길에 느낀바가 있어 이 노래를 지었다[신축(辛丑) 구월초(九月初) 한음상공(漢陰相公) 궤공조홍시(饋公早紅枾) 공회시(公回時) 유감이작(有感而作)]이라고 하였다.(신축년(辛丑年)은 서기(西紀) 1601년으로서,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이 끝난 다음이다)라고 하는 해설이 붙어 있다. 그런데 조홍시가(早紅枾歌)는 "군봉(群鳳) 몯으신데..." 까지를 넣어서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원문보기
https://blog.daum.net/thddudgh7
일소일빈
한자는 우리글이다
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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