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작수필] '친구의 정(情)' 조연현 (2021.11.24)

푸레택 2021. 11. 24. 19:51

■ 친구의 정(情) / 조연현

새로 이사 온 집의 뜰은 나무 한 그루도 없는 삭막한 공간(空間)이었다. 40평 전후의 그 마당을 바라볼 때마다 사막과 같은 처참한 정경(情景)을 느끼곤 했다. 찾아온 친구들은 빚을 내서라도 나무를 사다 심으라고 했지만 돈으로 나무를 사다 심고 돈으로 정원을 급조(急造)하는 일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물론 그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긴 했지만 설사 그만한 경제적 여력(餘力)이 있었다 해도 화원(花園)에 가서 한꺼번에 수십 그루의 나무를 사다 심는 일은 내 취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묘목(苗木)부터 자기가 가꾸어야만 나무를 기르는 맛이 드는 것이며, 정원 역시 세월(歲月)과 함께 자연스럽게 정돈이 되어야 제 맛이 나는 것이 아닐까.


서서히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 정원을 꾸밀 작정으로 있는 어느 날 내 사촌 여동생이 이사한 집을 구경하러 오면서 향나무 한 그루와 단풍나무 한 그루를 가져왔다. 그것을 심고 보니 별안간 나무를 더 심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제 나무 한 그루 없었을 때는 없는 대로의 마당을 그냥 보고 넘길 수 있었지만 빈 땅에 두 그루의 나무만이 심어져 있는 모습은 아무래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그 부자연스러운 뜰을 어떻게 메울까 궁리하고 있는 나의 머리 속에 묘한 착상(着想)이 떠올랐다. 그것은 넓은 정원에 많은 나무를 심고 있는 친구들로부터 몇 그루씩의 나무를 얻어 오는 일이었다. 이것이 뜻대로 된다면 돈들이지 않고 그럴 듯한 정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4, 5백 평의 정원을 가진 박용구(朴容九), 방기환(方基煥), 이종환(李鍾桓), 김규동(金奎東), 이런 몇몇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보고 모두가 나의 강요에 응해 줄 것같이 느껴졌다. 이것은 물론 나의 염치없는 강요이지만 그만한 강요가 통할 수 있는 친구들이라고 혼자 작정을 했다. 나의 이 계획을 듣고 아내는 그분들이 아무리 응해 준다 해도 당신은 너무 뻔뻔스럽지 않느냐고 나를 나무랬다.


정원을 가꾸는 나의 이 일방적인 계획을 친구들에게 전화로 말할 때 나는 좋은 나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할 나무들이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하잘 것 없는 것이라 해도 그런 것으로 족하다고 부탁을 했다. 사실 나는 값비싼 나무나 희귀한 나무같은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거나 마당에 심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았다. 나는 개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어서 언제나 3, 4마리의 개를 기르고 있지만 한 번도 족보(族譜)에 있는 좋은 개를 길러 본 일은 없다. 좋은 개든 나쁜 개든 기르는 재미는 다 마찬가지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정들은 개가 가장 귀중한 개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무에 대해서도 나는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들처럼 값비싼 나무나 희귀한 나무를 자랑하고 싶은 취미는 나에게는 전혀 없다. 무슨 나무든 그것을 심어놓고 그것이 성장(成長)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그저 나는 즐거울 뿐이다. 정원도 규모 있게 완전히 정돈된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갖가지 나무가 무성해 있는 무질서(無秩序)해 보이는 그러한 정원이 나는 오히려 마음에 맞는 편이었다. 비싼 향나무만 예쁘게 심어진 정원을 보면 우리는 이렇게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하고 공식적인 사업 보고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오히려 정이 들지 않는 편이었다. 나무도 나무 나름으로 다 기르는 맛이 있는 것인데 향나무만 심어진 정원엔 곧 싫증이 날 것이 아닌가.


처음부터 좋은 나무는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보내 준 나무 속에는 의외에도 값비싼 나무들도 많이 섞여 있었다. 이왕 보낼 바에는 좋은 나무를 골라 보내겠다는 친구들의 마음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박용구 형이 보낸 나무 속에는 10만원짜리도 더 되는 게라 주목(朱木)이라는 나무도 있었고, 방기환 형이 보낸 나무 속에는 방형이 오랫동안 아끼던 멋진 향나무도 끼여 있었고, 이종환 형이 보낸 나무는 내가 이형 댁에 갔을 때 좋다고 했던 바로 그 나무였다. 김규동 형이 손수 갖다 심어 준 나무는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처럼 사색(思索)에 잠겨 있는 모습을 한 향나무였다. “이 나무는 생각이 많은 나무입니다.” 김형이 그 나무를 심으면서 붙인 주석(註釋)이었다. 아마 나도 그 나무처럼 사색을 깊이 하라는 뜻이 아닌가 싶었다.

특히 박용구 형은 10여 종류의 나무를 보내 주었는데, 나무를 싣고 온 인부편에 나무 하나 하나의 품목과 수량을 적어 보냈다. 그 품목 속에는 흔한 사철나무도 있고, 게라와 같은 값비싼 나무도 있고, 복숭아나 앵두나무와 같은 과수(果樹)도 끼여 있었다. 여러 가지 나무를 가리지 말고 다 골고루 심어 보라는 뜻이었겠지만 그 품목을 적은 노트 쪽지를 보고 나는 흡사 자기 딸을 시집보낼 때 혼수감 속에 넣은 품목록(品目錄)을 보는 것 같았다. 자기 딸을 시집보내는 그러한 마음으로 박형은 나에게 나무를 보낸 것일까.

나무로 인하여 각박한 인정을 보기도 했지만 나무로 인하여 친구의 알뜰한 우정(友情)을 더욱 새롭게 느끼게 된 것은 나무를 얻은 것보다도 더 큰 나의 소득(所得)이었다.

◇ 조연현(趙演鉉, 1920~1981): 경상남도 함안에서 출생했다. 1933년 함안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에 입학했다가 중퇴했다. 1934년 중동학교에 편입했다가 1935년 그만두고 배재중학(培材中學) 3학년에 편입, 1938년 배재중학을 졸업했다. 1937년 시 동인지 『아 』(1938)·『시림 』(1939)에 참여하면서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40년 만주 하얼빈에 잠시 있다가 귀국하여 혜화전문학교()에 입학했다.

/ 2021.11.24(수)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