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레박 / 김소운(金巢雲)
12월 28일―, 피란 열차가 영등포를 떠나 사흘째 되는 날 첫 새벽에 경북 왜관역에 닿았다. 이미 그 전날 내 옆에 앉았던 어느 어머니의 품에서 난 지 백일 남짓한 어린아기 하나가 얼어죽었다.
왜관에 닿은 기차는 두 시간이 가고 세 시간이 지나도 떠날 생각을 않는다.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려서 솥과 남비에다 쌀을 담아 밥들을 짓는다. 먹어야 산다는 이 절실한 상식이 에누리없이 전개되는 장면이다. 해가 지도록까지 진종일을 기차가 거기 머무는 동안에 밥을 지은 솥과 남비의 수효는 아마 5, 6백으로 못다 헤었을 것이다.
역전에 우물 하나가 있었다. 별로 크지 않으나 깊이는 서너길 남짓― 워낙 많은 사람들이 길어 내는 통에 그래도 처음에는 맑던 물이 나중엔 시뻘건 황토물이 되었다. 그 시뻘건 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그러나 내 이야기는 그런 피란 스케치가 아니다. 그날 이후 우물가에서 내가 본 슬픈 광경 하나가 염두를 떠나지 않는다.
처음 물을 길을 때 역 부근 민가에서 두레박을 빌려서 썼다. 얼마 안 되어서 서로 먼저 쓰겠다고 다투던 끝에 어느 사나이 손에 쥐어졌던 두레박줄이 미끄러져서 물 속에 떨어졌다. 그 사내는 “줄이 있어야 건지겠는데―” 하고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나더니 차가 움직일 때까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까짓 책임 추궁보다는 사람마다 물쓰기가 바쁜지라 두레박을 제 손으로 만들어 쓰게 되었다.
바케쯔에 줄을 단 것, 깡통에 구멍을 뚫어서 급조(急造)한 것, 남비 손잡이에다 끈을 맨 것, 별의별 두레박이 다 나왔다. 피란 가는 이들의 짐 속에서 웬 끈들은 그렇게 나오는 것인지, 승마줄, 보자기를 싸매었던 헝겊끈, 가다가는 어디서 생긴 것인지 전등에 쓰는 코우드며 철사들이 두레박 끈으로 등장했다.
한 가지 특색은, 제가 만든 두레박은 절대로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레박 없는 이들이 열 번 스무 번 애걸복걸해도 물 한 바가지를 얻어 볼 수 없다. 할 수 없이 단념하거나, 제 손으로 두레박을 새로 만들거나―, 그러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두레박도 역시 그 한 사람이 쓰고는 가져가 버린다.
나는 넋 잃은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그 광경을 어이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두레박 하나만 있으면 만 사람이 쓰고도 남을 것이다. 떨어뜨릴 염려가 있다면 우물가에 있는 기둥에다 끈을 매어 두면 될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두레박 하나를 그 기둥에 매어 두고 “자, 마음대로 쓰시오. 기차가 떠날 때면 내가 가져갑니다”고 한다면 이렇게 고생스럽게 수백 개의 두레박이 필요치 않을 것이요, 쓰는 이마다 속마음으로 ‘고마와라… 어느 분의 정성인고’ 하고 서로 감사하고 치사할 것이 아닌가. 비록 피란해 가는 암담한 고난 속에서라도 이 하루를 즐거운 피크닉처럼 지낼 수도 있으련마는―, 그러나 기적은 마침내 나타나지 않았고, 해가 저물도록 시뻘건 황토물을 저마다 제 두레박으로 길어가는 슬픈 광경만이 질서 정연(?)하게 계속되었을 뿐이다.
뚜껑 없는 화물차에 실려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그 수많은 사람들― 대개는 남의 신세를 입어야만 할 의지없는 피란민들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 사정과 정곡이 비슷비슷하니 평소에 없던 인정도 이럴 때는 더한층 돈독해지는 것이 이를테면 상식이다. 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절벽 같은 심정들―, 원수끼리 길을 가도 5, 6일을 두고 동고동락(同苦同樂)한다면 정이 통하련마는, 이 족속들은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진 인종들일까?… 그날 그 우물가에서 느낀 내 절망과 비애를 나는 일생이 다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부산서, 대구서, 피란 온 이들의 불평과 호소를 수없이 듣는다. 사실 인심도 야박하려니와 그러면 그 인심을 나무라는 이들의 심정 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앉았는지, 이런 소리를 응당 꺼려하는 이가 있으리라마는 그러나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이리오, 영남 사람이 서울로, 평양으로 피난을 갔다는 경우를 생각해 보아, 거기서는 이보다 더 나았으리라는 단정을 감히 나는 내리지 못한다. - 끝 -
◇ 김소운(金巢雲, 1907~1981): 본명은 김교중(金敎重). 호는 삼오당(三誤堂), 소운(巢雲). 부산 영도 출생. 1923년 도쿄 가세중학[開成中學] 중퇴 1923년 『시대일보』에 시 「신조(信條)」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24년에 우리말 시집 『출첩(出帖)』을 발행했다. 1929년 『매일신보』 학예부원으로 근무하였다. 이 무렵 「눈」, 「호심(湖心)」, 「침통의장(沈痛儀仗)」의 시를 발표하는가 하면, 우리의 민요, 신시를 번역한 『조선민요선』(東京 岩波書店, 1933)과 『언문조선구전민요집』(東京 第一書房, 1933)을 내기도 했다. 이 저서들은 한국의 우수한 문화를 일본인들에게 인식시키고자한 것인데 한국의 문화, 풍속, 역사에 대한 애정과 긍지를 담고 있다. 이들은 한국 민요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권영민)
소설가 정비석 선생의 合評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비평함)
“글 쓴 당사자는 왜 보고만 있었는가, 두레박 하나를 만들어 기둥에 매어두지는 못했던가?”
김소운 선생의 附記 (원문에 덧붙이어 적음. 또는 그런 기록)
“실은 민가에서 두레박을 빌려온 것은 이 작자의 동행이었고, 피란민들이 빠뜨린 두레박을 간신히 건져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나 그것을 도로 우물가에 매어 둘 권리는 없었다.”
/ 2021.11.24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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