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자유인' 김성한 (2021.04.23)

푸레택 2021. 4. 23. 19:10

♤ 오늘은 한국소설문학대계(32) 《무명로 장씨일가》에 실려있는 김성한의 단편소설『자유인』을 읽었다.

◆ 자유인 / 김성한

며칠 전에 교무 부장으로 신임한 이광래는 흰테 안경 너머로 실내를 휘둘러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시원한 놈은 하나도 없었다. 낫살 먹었다는 교감은 무골충이요, 다른 교원은 대개가 삼십 전후의 어린애들이었다. 그 중에도 여교원은 문제도 안 되었다.
이만하면 가히 이 따위들은 쥐고 흔듦직하였다.
"우선……."
하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내려도 오지 않은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고는 손목을 기점으로 뿔뿔이 헤어진 다섯 손가락을 상하로 흔들면서 "이 선생" 하고 불렀다.
수학 교사 이세기(李世基)는 일학년 교과서를 펼쳐 놓고 다음 시간에 배워 줄 연습 문제가 아무래도 풀리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볼까 말까 하고 체면과 수치를 저울질하고 있는 길이었다.
허둥지둥 교무 부장 앞에 달려간 이세기, 별칭 꼬마는 두 손을 테이블에 얹으면서 머리를 숙였다.
"네?"
"선생님 반 학생 몇 명이죠?"
"육십일 명입니다."
"아 그런 걸 난 육십 명인가 했군, 틀림없죠?"
"네, 꼭 육십일 명입니다."
이광래는 성냥을 그어 담배를 붙여 물면서 꼬마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무슨 이씨죠?"
"전 전주 이갑니다."
"허, 이거 종씨구먼."
"그러신가요? 이거 참……."
꼬마는 머리에 손이 올라갔다.
"이따 천천히 얘기합시다."
퇴근 시간이 되자 가방을 든 광래는 꼬마에게 눈짓하고 현관을 나섰다.
엉터리라 학생의 지탄이 심한 데다가 얼마 전에는 가짜 이력서까지 발각되어서 목이 떨어질락 말락 간신히 붙어 있는 꼬마는 교무 부장께서 종씨라는 바람에 눈이 번쩍 띄었다. 전 대학 교수요 교장의 간청으로 배를 내밀면서 부임한 박학다식하고 빽이 든든해 보이는 그가 바위같이 믿음직하였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시골서 어떻게 보내나아 허구 걱정했더니 참 잘 됐습니다."
교문을 나서면서 광래가 먼저 말을 건넸다.
"무엇보담두 제가 의지할 곳이 생겨서 히히…… 동생으루 아시구 히히."
"무슨 말씀이오, 이게 다 인연이거든요."
코밑의 여덟팔자 수염을 약간 옆으로 움직이면서 힐끗 꼬마를 엿보았다.
"선생님 같은 분이야 서울 계셔야 헐 걸 이 시굴서……. 참 모두들 그렇게 생각허구 있습니다."
꼬마는 온 낯이 웃음이 되었다.
"아니 낸들 여기 오구파서 왔겠소? 교장이 어떻게 공작을 했는지 학무 국장이 권하구, 안 들으니 댐엔 문교부 국장들까지 강권허지 않겠소? 그래두 난 안 간다구 뻗댔더니 하루는 국회 의원 조씨까지 내가 가야만 그 학교를 바로잡을 테니 가야 헌다구 떠밀다시피 허기에 아무리 친구지간이라두 이렇게 되구 보니 거절헐 수가 있어야죠."
"조씨까지……! 친허십니까?"
"친허다뿐이겠소?…… 에에 대학두 여기저기서 오라는 걸 귀찮다구 거절허구 집에 들어앉아서 연구에 전심헐랴구 했더니, 참 우린 정에 끌리는 성질인가 봐."
행동거지 모두가 점잖고 근사했다. 가히 상전으로 모실 인물 이광래 선생에게 우선 약주라도 대접해야 되겠다는 갸륵한 심정에서 꼬마는 안 포켓에 몇 겹으로 싸 넣은 돈 이백 원을 만져 보았다. 그러나 선술집에 모실 분은 절대 아니었다. 월급이 나오면 아내에게 사 주기로 약속한 옥색 고무신을 내달로 밀고 외상으로 대접하기로 결심하였다.
"선생님 이거 참, 약주나 한 잔씩 나눕시다."
"아―니, 종씨 난 우리 집엘 가서 서울서 판사 노릇 허는 친구가 보내 온 미국 뿌란딜(브랜디를) 대접헐라구 했는데."
"웬 말씀이십니까, 순서가 있지 않습니까?"
"허어, 그럼 뿌란딘 댐에 헐까아."
광래는 꼬마의 뒤를 따라 세칭 '맹꽁이집'으로 들어가면서 혼자 씩 웃었다.
'앞잡이로는 안성맞춤이로구나!'
구석방에서 술상이 들어오자 꼬마는 앉은 자세로 한번 전후 운동을 하면서 공손히 사과하였다.
"이런 자리에 모셔서 안됐습니다. 그저 성의뿐입니다."
"줄창 뿌란디나 위스키만 허다가 간혹 이렇게 약주를 마시면 별맛이거든요. 비루(맥주) 비슷두 허구."
광래는 한 마디 던지고 유리 컵에 가득가득한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삼가 올리고, 점잖게 받고, 다시 돌리는 사이에 시간도 흘러서 촛불이 들어올 무렵에는 기분도 어지간히 좋았다. 광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난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학교 사정이라군 통 모르는데, 저어 어느 때 봐두 말 한 마디 없는 그으 누군가? 아, 선생님 바루 옆에 앉은 사람 말이우……. 아, 그래 유영환 그 사람 어때요?"
"어떨 게 있나요, 샌님이죠, 그래도 뭣이 그리 잘났는지 이태나 같이 있어두 말두 없구, 어떤 애들은 잘헌다구두 허지마는 뭐 누가 아나요? 잘해 봤자 시굴 교원이죠."
이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치고 급사와 소사를 제한 전원이 심판대에 올랐고, 심판자 꼬마의 판결은 백 퍼센트 엄격하여 모두가 못났고 모두가 자기네들만 훨씬 떨어지는 위인이라는 데 귀결되었다. 방청객을 가장한 이광래 선생은 만족하였다. 촛불과 더불어 움직이는 두 그림자는 손바닥에 글자도 썼고, 귀에다 입도 댔고, 손가락으로 각기 자기 입을 두드리기도 하였다.

마침내 큰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막 잔을 작은 그림자에게 나눠 부으면서 연설조로 천천히 뇌까렸다.
"선생님 얘기는 어저께 교장헌테서 잘 들었습니다. 빨리 선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든 걸 그저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머리에 올라간 손은 수없이 긁는 동작을 하였다.
"생각해 보지요."
"그저…… 선생님만 보증해 주신다면 여부 있겠습니까…… 다섯 식구에……."
손은 또 머리로 올라갔다.
"염려 마슈, 고만 거야. 그리고 만사 잘 삼가시구 당분간 내가 시키는 대루 해야 됩니다."
두 그림자는 일어섰다.
헤어지자, 아내의 꾸지람이 무서워서 시각을 다투어 포르르 달려가는 꼬마는 기뻤다. 돈은 썼어도 쇳소리 나게 썼다. 아내도 양해할 것이었다.
전등 없는 어두운 거리를 가면서 광래도 생각이 없지 않았다.
'내가 본 대로 신통한 놈은 별로 없는 모양이구나. 내 눈이 틀림은 없지. 차라리 서울보다 나을는지 모른다. 닭의 주둥이는 될망정 소꼬리는 되지 말라 했것다. 요새 학교란 것두 깔볼 건 못 돼. 잘만 하면 노다지도 될 수 있고. 못 먹는 놈이 못난 놈이지.'
집―특별 대우로 독차지한 적산집에 들어서자 그 길로 이층에 올라가 가방을 내던지고 등의자에 철썩 들어앉았다. 학교는 틀림없이 내 학교였다.
'학교란 건 지식을 위주하는 곳이다. 우선 지식으로 압도해 놓을 필요가 있다. 학식…… 내 학식…… 무슨 문화 강좌 같은 것을 해야지. 전교 학생은 물론 학교장 이하 전 교직원을 앞에 놓고……. 그렇지, 시골뜨기들이 단박 입을 짝 벌리게 해야지, 무얼 할까?'
생각은 잘 안 났으나 하여간 자기의 박학다식으로 전교를 진동시키고, 인격으로 청중을 압도할 만한 그 무엇을 해야 할 것이었다.
'학생 때 나는 웅변 부장이었것다. 언제나 현하지변(물이 거침없이 흐르듯 잘 하는 말)으로 청중의 심금을 울렸었다. 공부 안 하고 극장만 돌아다녔어도 성적은 나쁘지 않았어! 만약 내가 남처럼 파고들었다면 최우등은 문제 없었을 거야. 아니 단연 문제 없었다! 안 했으니까 그렇지. 악착스레 책에 달라붙던 놈들은 지금 다아 뭣 하는 거야. 일등 했다는 놈은 죽어 버리고, 이등 한 놈은 쌀 장수? 허, 쌀 장수 하려거든 그저 할 것이지. 그 중 잘 됐다는 녀석이 고작 신문 기자야? 난 그래도 대학하고도 교수를 지냈것다! 그 때도 정말은 내가 꼭 일등이었어. 안 했으니까 그렇지. ……지금도 학교에서는 단연…….'

(중략)

그 후에도 그가 서울 출입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번은 서울서 큰 상처를 이마에 붙여 가지고 왔었다. 그러나 떠도는 소문과는 달리 학교를 떠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일설에는 그 상처는 중간에 나섰던 자와 최후 담판을 하다가 대폿잔으로 격투한 끝에 얻은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의 설에 의할진대, 이것은 서울 무슨 고명한 교수와 술을 나누고 돌아오던 길에 돌에 걸려 넘어진 탓이라 하였다. 하여튼 상처는 한 달도 더 갔다.
하루는 애린회 발기 취지서라는 제목하에, 우리 전재(전쟁으로 인한 재난) 동포를 구함과 아울러 최근 이 곳에 물밀 듯이 밀려드는 중국 재민을 양국이 협심육력(여럿이 힘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다)하여 구제하자는 취지가 신문 삼단 전 페이지에 게재되었다. 특히 국경을 초월한 사해동포의 거룩한 정신에 입각하여 금액의 다과를 막론하고 한 술의 밥, 한 치의 천일망정 성심성의 구원의 손을 펴자는 감동적 결론은 읽는 사람의 동정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과반수를 중국인이 차지한 십여 명 발기인 중에는 이광래 선생의 이름이 셋째번에 들어 있었다.
이 때부터 광래는 시내 이곳 저곳 다니면서 기부를 받았고, 학교에 와서도 교직원과 학생에게 이 숭고한 취지를 설명하고 원조를 청하였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 참상은 실로 '목불인견'이었다.
동정은 사방에서 일어났다. 각 학교에서도 응분의 거금을 하였고, 일반 사회에서도 상당한 반향이 있었다. 광래는 매우 분주한 모양으로 가끔 택시를 타고 돌아다녔고 학교도 결근하기가 일쑤였다.
이십 일쯤 지난 어느 날, 새 양복, 새 구두, 새 모자를 말쑥하게 차리고 출근한 그는 선망과 시기를 섞은 동료의 축사에 대답하였다.
"역시 큰일하는 덴 이것이 필요하거든."
점잖게 자기 옷을 어루만졌다.
한 달이 지난 후에 그가 서울에 집을 샀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이 거룩한 사업을 위해서 먹을 것을 못 먹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발분망식하고 다닌다."는 그의 소감의 일단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따위 중상을 일삼는 무리들의 허무한 낭설일 염려도 있었다.
이광래 선생이 말도 없이 결근한 지 사흘째였다. 자진해서 댁에 찾아갔던 꼬마의 보고에 의하면 어찌 된 판국인지 집은 자물쇠를 잠가 놓고 아무 기척도 없기에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았더니, 집 안은 텅 비어서 접시 조각 하나 없고 종이 나부랭이가 이리저리 굴러다닐 뿐이라는 것이었다.
교무실은 온통 떠들썩하였다.
떠들썩하다가 잠잠해질 무렵에 중국 사람 6, 7명이 몽둥이 하나씩 들고 마구 몰려들었다.
"리쾅라이쌍나―ㄹ취(이광래 어디 갔소)?"
"둔러첸왕날취라(돈 먹고 어딜 뺀 거야)?"
"훈단(개자식)."
"나추라이(내놔)!"
저희말로 떠들썩하다가 우리말에 능한 사람이 나서서 사유를 설명하였다.
이광래는 애린회 간사로 있으면서 전부터 돈을 물 쓰듯 하더니, 며칠 전에는 이재민에게 먹일 쌀을 산다고 있는 돈을 죄다 갖고 나간 채 감쪽같이 사라져서 굶어 죽게 되었으니 학교에서라도 이 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배짱 있는 체조 선생이 나서서 응대하였다.
"못난 소리 마라, 학교가 무슨 상관이야?"
"사람 살린다 해 가지구 사람 잡아먹기야? 더―럽다, 더―러워."
옥신각신한 끝에 교장까지 나서서 사리를 따진 결과 그들도 하는 수 없이 돌아섰다.
나가던 길에 그 중 한 자가 몽둥이로 이광래 선생의 테이블을 힘껏 내리갈기고 침을 퉤퉤 뱉었다.
그 후 일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광래 선생의 행방은 묘연하고 테이블의 몽둥이 자리만은 지금도 남아 있다.(1950년 作)

(《바비도》, 책세상, 1990)
 
[해설]

소설 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다가 결국은 좌절하고 마는 이광래의 모습을 통해, 현실에서의 인간의 부정적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만에 빠져 있는 이광래는 자신의 지적인 허영을 위해 문화 강연을 준비하고, 그런 그의 허영심은 다른 선생들의 무지로 인해 더욱 과장되어 나타난다.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부정직한 삶의 모습들을 통해 교단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과 부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지나친 자만이 가져오는 실패를 통해 이광래 개인만이 아닌 허영에 가득한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광래는 결국 공금 횡령 후에 도망하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은 그의 과도한 욕심과 자만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 김성한 작가 (1919~2010)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출생
1940년 함남중학교 졸업, 일본 야마구치고 입학
1943년 일본 동경대학 법과 입학
1946년 서울대 문리대, 사범대, 한국외대 강사
1950년 단편 '무명로'로 문단 데뷔, '김가성로', '자유인' 발표
1956년 단편 '바비도' 발표
1958년 '오분 간'으로 제5회 아세아 자유문학상 수상

/ 2021.04.23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