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육인 공화국' 류주현 (2021.04.22)

푸레택 2021. 4. 22. 18:25

♤ 오늘은 한국소설문학대계(32) 《무명로 장씨일가》에 실려있는 류주현의 단편소설『육인 공화국』을 읽었다.

◆ 육인 공화국 / 류주현 (발췌)

모터 보트는 갑자기 속력을 줄었다.
선체가 기우뚱하면서, 꼬리를 긋던 흰 물살이 옆으로 누인 활처럼 휘기 시작했다.
끽, 끽, 끼이륵 하고 갈매기 한 쌍이 숨바꼭질을 하듯 희뿌연 하늘로 치솟았다.
그놈들은 꼭 나비가 날 듯 호로리허리리 날고 있다.
"쌍쌍인 모양이지!"
목에다 노리끼리한 타월을 걸친 장(張)군이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놈들두 국적이라는 게 있을까?"
머리털이 바닷바람에 흩날렸다. 역시 장군의 말이다.
"그런 거추장스런 건 없을 거야. 아마 아나키스트들일지두 모르지."
이 역시 장군 혼자의 말이다.
"아나키스트, 살벌한 표현일까? 보헤미안! 보헤미안이 어때? 그게 시적일 거야."
그래도 여자는 입을 열지 않는다.
여자의 머리에는 노오란 밀짚모자가 얹혀져 있었다.

(중략)

모래 사장 위엔 기가 팽개치고 간 흰 캡이 발랑 자빠져 있었다.
"후후, 후후, 후후."
장군은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기분 좋게 자꾸 터뜨렸다.
아직 밤이 남아있고 내일이 또 있다.
장군은 혜련과 더불어 바다 기슭을 말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호리리 호로리, 하늘을 나는 갈매기. 너무도 한가롭다.
그들은 모두 내일의 플랜을 궁리하며 바닷가를 걸어간다.

『신의 눈초리』문리사, 1977

☆ 류주현 작가 (1921~1982)

1921년 경기도 여주 출생
1943년 와세다대학 전문부 문과 수학
1948년 단편 『번요의 거리』로 무단에 데뷔
1975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취임
1976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본상 수상
1982년 병세 악화로 홍제동 자택에서 사망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태평리 선산에 묻힘

/ 2021.04.22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