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새벽 / 박구경
잠자듯 말뚝이 박혀 있다
하늘이 논물에 가만히 앉아 있다
무엇이 물거울을 건드리는가
50년 전쯤엔 여기가 아버지 얼굴이었다
천천히 두 손을 집어넣으니
삽자루를 타고 논물이 흐른다
국그릇에 걸쳐진 커다란 밥숟가락 같았다
저리로 가는 두꺼비
■ 슬퍼할 수 없는 것 / 이성복
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눈이 쌓여 있다는 것
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
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끝내 못 가리라는 것
나 없이 눈은 녹고 나 없이 봄은 오리라는 것
슬퍼할 수 없는 것,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것
■ 기다림 하나쯤 품고 사는 것도 / 권경업
가버린 봄은
돌아와 다시 꽃 피운다지만
떠나간 그대는, 다시
오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두고 떠날 때
말하진 않았어도 오죽 했을 그 마음
기꺼이 멀어져 그리움 되어준
내 삶의 소중한 한 사람이여
그대와의 인연 다했다는 걸 알면서도
저 윤중로 벚꽃 봄비에 다 지도록
나는 기다립니다
기다림 하나쯤 품고 사는 것도
지는 꽃그늘의 쓸쓸함과
세상 숱한 설움의
견딜 수 있는 힘이겠기에
/ 2021.04.18 편집 택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읽기] '꺼삐딴 리' 전광용 (2021.04.20) (0) | 2021.04.20 |
---|---|
[명시감상] '얼음 풀린 봄 강물' 곽재구, '봄비' 김용택, '심을 수 있는 마당' 안태운 (2021.04.19) (0) | 2021.04.19 |
[문학산책] "탄생 100돌 기려 연세대와 '김수영 문학관' 논의 중입니다" (2021.04.14) (0) | 2021.04.14 |
[명시감상] '짝퉁 천국' 유영호 (2021.03.31) (0) | 2021.03.31 |
[명시감상] '3월은 말이 없고' 황금찬, '3월' 목필균, '3월의 마지막 날' 송여명 (2021.03.29) (0) | 2021.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