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짝퉁 천국 / 유영호
온 나라에 미친 바람이 분다
가방 하나 사기 위해 적금을 붓고
백화점 명품 세일 행사에
새벽부터 줄서는 것도 성에 안 차
신용카드 몇 개로 바다를 건넌다
명품 백 하나만 들면
짝퉁 인간도 명품될 거라는 믿음에
학생은 가방 알바로 공부를 손놓고
주부가 산 할부 명품 백은
장롱 속에서 빈둥거리면서
가족들의 허리를 졸라매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해 보이는
속이 텅 빈 물건들
저마다 잘났지만 발걸음은 무겁다
명품은 짝퉁도 명품으로 만들지만
짝퉁은 명품을 제아무리 들어봐야
결국 짝퉁일 뿐인데
■ 막막한 사막 / 박노해
나일강 동쪽에 펼쳐진 광대한 누비아 사막
피라미드는 찬란한 신비를 품고 묵언 중이고
낙타 떼는 불타는 사막을 가로질러 간다
인생의 어느 고비 길이 사막 같다고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사막은 막막하여라
그러나 막막함이 사라지고 나면 숨막힘인 것을
삶은 그 막막함을 가꿔나가는 여정인 것을
ㅡ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막막한 사막’,
사진에세이 『길』 수록 詩
/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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