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은 말이 없고 / 황금찬
얼음이 풀린 논둑길에
소리쟁이가 두 치나 솟아올랐다
이런 봄
어머님은 소녀였던 내 누님을 데리고
냉이랑 꽃다지
그리고 소리쟁이를 캐며
봄 이야기를 하셨다
논갈이의 물이 오른 이웃집
건아 애비는
산골 물소리보다도 더 맑은 음성으로
메나리*를 부르고
산수유가 꽃잎 여는 양지 자락엔
산꿩이
3월을 줍고 있었다
흰 연기를 뿜어 울리며 방금
서울행 기차가 지나가고
대문 앞에서 서성이며
도시에서 올 편지를 기다리는
정순이의 마음은
3월 아지랑이처럼 타고 있었다
이 3월이
두고온 고향에도
찾아왔을까
천 년 잠이 드신 어머님의 뜰에도
이제 곧 고향 3월을
뜸북새가 울겠구나
고향을 잃어버리면
봄도 잊고 마느니
우리들 마음의 봄을 더 잃기 전
고향 3월로 돌아가리라
고향의 봄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 3월 / 홍일표
수암사 오르는 길은
갈참나무, 병꽃나무, 오리나무가
모두 입 다물고 묵상 중이었다
가장 먼저
산수유 노랗게 허공에 떠 있었다
쉬임없이 소곤소곤 종알대고 있었으나
골짜기의 물들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하산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좁은 산길 울퉁불퉁 박혀 있는 돌들이
툭툭 발목을 잡았다
줄레줄레 따라오던 잡념들은
그만 슬그머니 나를 놓아버리고,
수암사 가까이 다가갈수록
깊어지는 고요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비로소 맑게 빛나는
바람소리, 새소리
고요 속에서 뭉클 내가 만져지는 순간
꿩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올랐다
■ 3월 / 목필균
햇살 한 짐 지어다가
고향 밭에 콩이라도 심어 볼까
죽어도 팔지 말라는 아버지 목소리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매지구름 한 조각 끌어다가
고운 채로 쳐서 비 내림 할까
황토밭 뿌리 번진 냉이꽃
저 혼자 피다 질텐데
늘어지는 한나절
고향에 머물다 돌아가는
어느 날 연둣빛 꿈
■ 3월의 마지막 날 / 송여명
3월과 함께
봄을 손잡고 온 자목련
그 자목련이
이제 땅위에
누운 시체로 남아 있다
봄이 채 가도 전인데
자목련이 죽은
그 자리엔
붉은 정열의 피를
한바탕 쏟아 놓고
분홍빛 벚꽃들이
사열을 한다
3월의 감격스런 첫날이
어제 같았는데
벌써 잔인한 4월의 문턱에서
노란 아픔을 삼키고
연분홍 설레임을
가슴으로 담고있다
/ 2021.03.29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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