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손님 / 허재환 서천신문 칼럼위원
새벽 산책을 마치고 운동기구가 있는 뒷마당으로 갔다. 역기 운동을 하려고 등받이에 누워서 무심히 회색빛 하늘 구름을 바라보는데 구름 사이로 삼각형 모양의 대형을 이루고 북쪽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는 가창오리 떼가 보인다.
겨우 내내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낮게 날아가며 마을 앞 들판에 내려오기도 하고 때론 뒷동산을 넘어 다니며 떼창을 하기도 하고 멋진 군무를 보여주던 가창오리가 오늘은 매우 높이 떠서 한 방향으로 질서 정연하게 날아가고 있다.
‘아니 어제하고 다르게 날아가네!’ 직감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를 불러 하늘을 보라고 하니 뒷마당으로 나와 북쪽으로 날아가는 가창오리 떼를 보며 돌연 ‘미안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들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섭섭해’라고 말을 이어 받았다.
‘미안해’라고 말한 사연을 아내가 풀어놓는다.
아내도 매일 산책을 하는데 꼭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나간다. 추수가 끝난 논에 떨어진 벼 이삭을 먹이로 하는 가창오리들은 조심성이 강해 언제나 몇 마리는 경계를 선다고 한다. 그런데 산책길이 가창오리 떼가 무리 지어 먹이를 찾고 있는 들판과 가까워 멀리서 다가오는 아내와 반려견을 보면 곧 경계를 선 가창오리가 긴장을 하며 주시하고, 좀 더 가까이 가면 몇 마리의 가창오리들이 울기 시작하고, 이 소리를 들은 반려견들은 반사적으로 가창오리들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간다. 아내의 의도와 달리 조용하게 먹이를 찾던 가창오리들은 그만 사달이 나서 모두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이런 일로 그들을 쫒아버린 것 같아 ‘미안해’라고 했단다.
나는 그냥 새가 좋다. 어릴 때 물총새를 보고 어찌나 예쁘던지 냇가 절벽에 있는 물총새를 찾으러 시냇물과 모래밭 위를 뛰어다니곤 했다. 남산에 있는 직장을 다닐 때는 매일 점심 후 한 시간씩 오솔길을 따라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심조심 걸었다. 새는 소리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지저귀는 소리를 따라 덤불숲 이곳저곳을 찾아보기도 하고, 썩은 고목나무를 쪼아대는 소리를 따라 청딱따구리도 만나보며, 아름답게 울어대는 꾀꼬리를 찾으러 뒷동산 나무를 오르다가 새끼를 기르고 있는 꾀꼬리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새벽 산행을 하다 보면 조용하다고 생각했던 산이 평소에 들어보지 못하던 수많은 새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산이 들썩이고 있음도 보았다.
퇴직 후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짓다 보니 봄부터 가을까지는 바쁘다. 그러나 밤이 긴 겨울에 들어서면 산이나 들은 어두운 회색빛으로 변하고, 아이들이 없는 마을은 대부분 조용하고 삭막하여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언젠가 하얗게 쌓인 눈 사이로 쑥새 몇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는 것을 본 후로 나는 쑥새를 만나기 위하여 자주 2층 서재로 올라가 쌍안경을 들고 창가에 앉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쑥새는 참새와 비슷하나 작은 댕기 모양의 관우가 있고 검은색 머리에 흰 눈썹선이 뚜렷하여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텃새인 직박구리와 물까치는 앞마당 남천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으려고 자주 찾아오는 조용한 겨울 손님들이다.
그러나 가장 겨울을 기다리게 하는 귀한 손님은 캄차카 반도 쪽에서 머무르다 그들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가창오리이다. 지난해 10월 6일 처음 만나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동안 아침저녁으로 화려한 군무 인사를 전하고 오늘 아침 마지막 뒷모습을 남겨놓고 먼 길을 떠났다. 나는 앞으로 만날 수 없는 마음에 ‘섭섭해’라고 인사를 하였지만, 사실 겨우 내내 함께 있어주어 ‘고마워’라고 인사를 해야 했다.
ㅡ 허재환 서천신문 칼럼위원(202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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