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겨울 산수유 열매 공광규, 광야 이육사 (2021.03.12)

푸레택 2021. 3. 12. 15:40

? 겨울 산수유 열매 / 공광규

콩새 부부가
산수유나무 가지에
양말을 벗고 앉아서
빨간 열매를 찢어먹고 있다
발이 시린지
자주 가지를 옮겨다닌다

나뭇가지 하나를
가는 발 네 개가 꼭
붙잡을 때도 좋아 보이지만
열매 하나를 놓고 같이 찢을 때가
가장 보기에 좋다

하늘도 보기에 좋은지
흰 눈을 따뜻하게 뿌려주고
산수유나무 가지도
가는 몸을 흔들어 인사한다

잠시 콩새 부부는 가지를 떠나고
그 자리에 흰눈이
가는 가지를 꼭 붙잡고 앉는다

콩새 부부를 기다리는 사이
산수유나무 열매는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 광야(曠野) / 이육사 (1904~1944)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다시 오는 봄 / 도종환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