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홍어' 손택수, '시래기를 위하여' 복효근, '어머니의 감성돔' 정일근 (2021.01.17)

푸레택 2021. 1. 17. 13:46

 

 

■ 홍어 / 손택수

어느 날인가는 시큼한 홍어가 들어왔다
마을에 잔치가 있던 날이었다
김희수씨네 마당 한가운데선
김나는 돼지가 설겅설겅 썰어지고
국솥이 자꾸 들썩거렸다
파란 도장이 찍히지 않은 걸로다가
나는 고기가 한 점 먹고 싶고

김치 한 점 척 걸쳐서 오물거려보고 싶은데
웬일로 어머니 눈엔 시큼한 홍어만 보이는 것이었다
홍어를 먹으면 아이의 살갗이 홍어처럼 붉어지느니라
지엄하신 할머니 몰래 삼킨 홍어
불그죽죽한 등을 타고 나는 무자맥질이라도 쳤던지
영산강 끝 바닷물이 밀려와서
흑산도 등대까지 실어다줄 것만 같았다
죄스런 마음에 몇 번이고 망설이다, 어머니
채 소화도 시키지 못한 것을 토해내고 말았다는데
나는 문득문득 그 홍어란 놈이 생각나는 것이다
세상에 나서 처음 먹는 음식인데
언젠가 맛본 기억이 나고
무슨 곡절인지 울컥 서러움이 치솟으면
어머니 뱃속에 있던 열 달이 생각나곤 하는 것이다

■ 시래기를 위하여 / 복효근

고집스레 시래깃국을 먹지 않던 날들이 있었다
배추나 무의 쓸데없는 겉잎을 말린 것이 시래기라면
쓰레기와 시래기가 다른 게 무엇인가
노오란 배춧속을 감싸고 있던
너펄너펄 그 퍼런 잎들
짐승 주기는 아깝고 있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것
그 중간 아래 영하의 바람 속에서
늘 빳빳하게 언 채 널려있던 추레한 빨래처럼
궁색의 상징물로 처마에 걸려있던 시래깃두름이
부끄러워서였는지도 모른다
난 시래기로나 엮일 겉잎보다는
속노란 배춧속이거나 매끈한 무 뿌리이기만을 꿈꾸었을 것이다
세상에 되는 일 많지 않고 어느새
진입해보지도 않은 중심에서 밀려나 술을 마실 때
술국으로 시래기만한 것이 없음을 안다
내가 자꾸 중심을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뛰고 있을 때
묵묵히 시래기를 그러모아
한 춤 한 춤 묶는 이 있었으리라
허물어가는 흙벽 무너지는 서까래 밑을 오롯이 지키며
스스로 시래기가 된 사람들 있었으리라
알찬 배춧속을 위해 탄탄한 무 뿌리를 위해서
시래기를 배운다
시래기는 쓰레기가 아닌 것이다

■ 어머니의 감성돔

진해 어머니 감성돔 두 마리 보내셨다
아마 중앙시장 어물전에서 물 좋은 그놈들 보시고
산골에 엎드려 시 쓰는 내 생각 났을 것이다

크고 튼실한 놈이라 값도 만만찮을 것인데
어머니 망설이지 않고
용돈 주머니 다 터셨을 것이다

마흔 중반을 살면서도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어린 새끼다
집 떠난 지 스무 해가 지났어도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 새끼다

그 스무 해 혼자 헤엄치며
어머니의 바다 멀리 떠나왔나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언제나 어머니의 손바닥 안이다

어머니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알지 못하고
어머니의 밥상에는 무엇이 오르는지 모르는
불효한 내 식탁으로 내일 아침
감성돔 구이가 오를 것이다

늘 혼자 드시는 어머니의 밥상으로
살진 감성돔 되어 회향하고 싶은 밤

...... 어머니

/ 2021.01.17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