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신발의 이름」 이해인 (2021.01.17)

푸레택 2021. 1. 17. 15:08

 

신발의 이름 / 이해인 수녀

내가 신고 다니는 신발의 다른 이름은
그리움 1호다
나의 은밀한 슬픔과 기쁨과 부끄러움을
모두 알아버린 신발을
꿈속에서도 찾아 헤매다 보면
반가운 한숨소리가 들린다
나를 부르는 기침소리가 들린다
신발을 신는 것은
삶을 신는 것이겠지
나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건너간 내 친구는
얼마나 신발이 신고 싶을까
살아서 다시 신는 나의 신발은
오늘도 희망을 재촉한다

ㅡ 글 모음집 『기쁨이 열리는 창』에서

엊그제는 먼 곳에서 온 손님과 광안리 바닷가로 향하는데 길에서 어느 부부가 여러 종류의 신발을 팔고 있기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습니다. 한 켤레는 3900원, 두 켤레는 6000원이라며 이것저것 골라보라고 했지요. 마침 실내화로 신으면 좋을 것 같은 신발이 있어 검은색, 회색 두 켤레를 사들고 오는데 갑자기 부자가 된 듯 즐겁고 흐뭇한 웃음이 피어올랐습니다.

부드러운 털과 리본이 달려 있어서 나는 신발의 이름을 ‘포근이’라고 지었습니다.

여기에 소개하는「신발의 이름」이란 시는 오랜 기간 암으로 투병하던 후배 수녀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을 치른 뒤, 그의 방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신발 한 켤레를 보고 떠올려본 생각입니다. 지난 십수년간 몇번이나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나는 신발의 의미를 더욱 새롭게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병원 입원 중엔 늘 슬리퍼를 신고 다니니 신발을 신고 문병 오는 이들이 어찌나 부럽던지요! 그래서 그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신발을 신는 것은 삶을 신는 것’이니 신을 적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예식이라도 치르듯이 경건하게 신으라고. 살아서 신발을 신는 것은 사랑과 희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며칠 전 우리 수녀원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서로 용서를 청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과 전기를 좀 더 아껴 쓰지 못했다고, 맡은 청소구역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선배에게 불손하게 대했다고, 사소한 일에 흥분하고 언성을 높였다고, 공동체의 날질서를 충실히 지키지 못했다고 겸손되이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하도 친숙해서 평소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장점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며 마음 찡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함께 사는 일이 아름답고 평화롭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인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다른 이의 먼지 묻은 신발을 깨끗이 닦아주는 맘으로 상대의 약점을 참아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새해에는 더욱 새로운 마음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신발을 신고 길을 가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주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신발을 바꾸어 신어보자’는 말도 종종 기억하면서,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서로서로 너그럽게 감내하는 덕을 조금씩 쌓으면서 삶의 순례를 계속하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ㅡ 이해인

/ 2021.01.17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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