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로 갈 것인가? / 윤세영
1.
정년 퇴임한지 몇 개월 되지 않은 한 교수가 방송에 출연할 일이 생겨서 방송국에 갔다. 낯선 분위기에 눌려 두리번거리며 수위 아저씨에게 다가 갔더니, 말도 꺼내기 전에 "어디서 왔어요?”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퇴직해서 소속이 없어진 그분은 당황한 나머지 “집에서 왔지요.”라고 대답했다 하여 한바탕 웃은 적이 있는데, 다른 한 교수도 방송국에서 똑같은 경우를 당한 모양이다.
그러나 성격이 대찬 그분은 이렇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여보시오. 어디서 왔냐고 묻지 말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시오. 나 ○○프로에서 출연해 달라고 해서 왔소.”
마침 그 프로그램 진행자인 제자가 멀리서 보고 달려와 모셔갔다. 그 제자는,
“역시 우리 교수님 말씀은 다 철학이에요. 우리의 인생에서도 어디서 왔느냐보다 어디로 갈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게 아니겠어요.”
ㅡ 윤세영의 '따뜻한 동행' 中에서
2.
지난달 경기 파주시에 있는 ‘반구정’에 가게 되었다. 황희 정승이 87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돌아가시기 전까지 3년 동안 갈매기를 벗하며 여생을 보내셨다는 유적지다. 그곳 기념관에는 황 정승의 유명한 이야기가 소개돼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김종서 장군과 관련된 일화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김 장군은 일찍부터 용맹을 떨친 호랑이 같은 장수여서 아무래도 좀 겸손함이 부족했는지 중신회의에서 삐딱하게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눈에 거슬리지만 누구 하나 아무 말을 못하고 있는데 황 정승이 아랫사람을 불러서 일렀다.
“장군께서 앉아 계신 모습이 삐딱한 걸 보니 의자가 삐뚤어진 모양이다. 빨리 가서 반듯하게 고쳐 오너라.” 장군이 깜짝 놀라 자세를 고쳐 앉았음은 물론이다.
그런 식으로 가끔 장군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자 한 중신이 유독 장군에게 더 엄격한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장군은 앞으로 나라의 큰일을 맡아서 하실 분이기 때문이오. 혹시라도 장군의 훌륭한 능력을 작은 결점 때문에 그르칠까 염려되어서 그러오.”
황 정승은 이미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은 늙어 물러갈 것이고 다음 세대가 뒤를 이어갈 것이기에 미래를 내다본 것. 마치 지금의 자리가 영원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디로 갈 것인가는 모르고 어디서 온 것만 내세우면 미래가 없다.
우리도 때때로 자문해야 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ㅡ 윤세영 / 수필가
■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가던 길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니
걸어온 길 모르듯 갈 길도 알 수가 없다
살아오며 삶을 사랑했을까
지금도 삶을 사랑하고 있을까
어느새 어느 자리 어느 모임에서
내세울 번듯한 명함 하나 없는
노년이 되어버렸다
붙잡고 싶었던 그리움의 순간들
매달리고 싶었던 욕망의 시간도
겨울 문턱에 서니
모두가 놓치고 싶지 않은 추억이다
이제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걱정하지 말자
아쉬움도 미련도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노년이 맞이 하는 겨울 앞에 서서
그저 오늘이 있으니
내일을 그렇게 믿고 가자
어디쯤 왔는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노년의 길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은 또 오늘처럼
그냥 무심코 지나가다 보면
세월이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세상에는 벗들 때문에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는 벗들 때문에
살맛 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는 벗이 있어 위안이 되고
감사해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벗은 귀한 존재이다
세상은 노력 없이는
관계가 이뤄지지 않는다
사람의 관계란 우연히 만나
관심을 가지면 인연이 되고
공을 들이면 필연이 된다
우연은 10%, 노력이 90%이다
아무리 좋은 인연도
서로의 노력 없이는 오래갈 수 없고
아무리 나쁜 인연도
서로 노력하면 좋은 인연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주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 주어야 한다
좋은 사람으로 만나
착한 사람으로 헤어져
그리운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꼭 쥐고 있어야 내 것이 되는 인연은
진짜 내 인연이 아니다
잠깐 놓았는데도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이
진짜 내 인연이다
인생은 아무리 건강해도
세월은 못 당하고 늙어지면 죽는다
예쁘다고 멋지다고 뽐내고 다녀도
60이면 봐 줄 사람 없고
돈 많다 자랑해도 80이면 소용 없고
건강하다고 자랑해도 90이면 소용 없다
치아 성할 때 맛있는 것 많이 먹고
걸을 수 있을 때 열심히 다니고
베풀 수 있을 때 베풀고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기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길이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소서
(좋은 글) ㅡ 받은 글 옮김
/ 2021.01.19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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